(분석) 美, 대중 ‘AI패권’ 전략 바뀌나?

무조건 ‘봉쇄’보단, 美산 구형 칩 대량 공급으로 전환 엔비디아 H20 금지완화 등, “中기업, 美 주도 AI생태계로 포획” 中 자국 주도 ‘글로벌 협력기구’로 되받아쳐, 새로운 ‘AI지정학’ 전개

2025-07-30     엄정원 기자
엔비디아의 RTX5090 GPU. (출처=엔비디아)

[애플경제 엄정원 기자] 미국이 중국과의 AI 주도권 다툼에서 전략을 바꿀 것인가. 최근 이같은 기류를 반영할 만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기존 H20 칩을 중국에 합법적으로 판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중국이 지난 주 상하이에서 이른바 ‘세계 인공지능 대회’를 열고, 자국 기업은 물론, 미국과 서방 기업들도 함께할 ‘글로벌 AI 협력 기구’를 제안하고 나서 미묘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美,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

그러나 중국의 기술혁신을 저지하고 AI패권을 유지한다는 미국의 기본 입장은 변화가 없다. 다만 ‘대중 봉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미국산 구형 칩이나 제품을 중국에도 허용, 일정한 격차를 유지하는게 효과적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분석은 ‘파이낸셜 타임즈’나 ‘톰즈하드웨어’ 등의 전문매체와 전문가들에 의해 뒷받침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아예 쏟아부음으로써 중국의 기술혁신 수준을 더욱 통제할 계획이다. 특히 중국 내로 어떤 칩이 들어가는지 통제함으로써 첨단 칩 기술이 확산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하는 격”이다.

그 동안 미국은 첨단 엔비디아 칩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접근을 차단하고자 했다. 급속한 기술혁신을 억제하고, 중국의 AI 생태계를 마비시키며,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금지 조치는 미국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실제로 수출 통제 조치가 발효된 이후 3개월 동안 엔비디아의 대중 수출 금지 품목인 첨단 B200 칩 약 10억 달러 상당이 중국으로 밀수되었다. 아예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이달 초 “기존 H20 칩을 중국에 합법적으로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강경하게 제동을 거것으로 보였던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예상 밖이었다. 예상 외로 기존의 강경한 입장으로부터 ‘조용히 후퇴’하는 듯 했다.

이처럼 H2O에 대한 금지 조치가 사실상 완화되면서, 중국 암시장에서 B200 밀수품에 대한 수요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중국 기업들로서도 최첨단 기술(B200)못지않게 구형 칩(H20)이라도 합법적으로 손에 넣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즉, 밀수된 칩을 구매해서 자사 데이터센터에 설치할 경우엔 고객에게 제공하는 엔비디아측의 지원(AS 포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셔터스톡)

美·中, 서로 다른 ‘속내’ 감춰

중국 역시 모호한 타협책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소위 ‘모두를 위한 AI’를 천명하며, 이번 ‘세계 인공지능 대회’에서 ‘글로벌 AI 협력 기구’를 제안하며, 미국과 서방기업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중국 외교부는 특히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공동 연구를 통한 AI 분야 국제 협력”을 촉구하는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주말 열린 이 행사엔 화웨이, 테슬라, 아마존 등 중국과 미국의 거대 기술 기업들이 참석했다. ‘AI 시대의 글로벌 연대’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건 이번 대회에서 리창 중국 총리는 상하이에 본부를 두는 ‘글로벌 AI 협력 기구’를 제안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AI기업들의 협업을 위한 기구를 만든다는 취지다.

그렇다고 중국이 순수한 선의에서 AI 개발에 대한 세계적인 연대를 제안할리는 없다. 만약 개방적인 협력과 공동 연구가 이뤄진다면 중국의 AI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이 목표한 ‘소프트 파워’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베이징은 이러한 국제적 연대의 중심을 상하이에 둔다는 계획이다. 물론 중국의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처럼 자신의 환경과 가치에 맞게 국제 AI생태계를 운영함으로써 글로벌 AI 무역에서 자국의 입지를 굳건히 하려는 의도를 감추지않고 있다. 궁극적으론 미국에 맞서 글로벌 AI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 이런 중국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최근엔 이처럼 겉으로나마 ‘모두를 위한 AI’를 내건 중국의 태도에 약간은 혼란스런 입장이다. 기존의 강경 전략을 고수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고립주의적인 무역 정책을 고수해온 트럼프 행정부로선 새로운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된 셈이다.

백악권과 행정부 내에서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연대 요구에 동참할 것인지를 두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 듯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美 ‘AI 행동계획’ 행간의 의미도 ‘주목’

미국은 AI 개발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자체 경쟁력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올 초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획기적인 저비용으로 고성능 모델 ‘R1’을 개발, 실리콘밸리에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더욱 강경하게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수출을 금지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이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 주에도 ‘AI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미국은 AI 경쟁의 시발점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켠에선 미국의 대중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시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 중국의 AI 산업은 엔비디아와 같은 미국 칩 제조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전면적인 대중 수출 금지 조치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만약 중국이 미국의 첨단 AI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면 자체 기술 개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중국이 엔비디아의 ‘진정한 경쟁자’가 되어 AI 하드웨어를 자급자족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란 얘기다. 그러면 미국은 세계 AI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우려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화웨이가 엔비디아의 최첨단 제품에 필적하는 AI 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구형 엔비디아 칩 모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일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중국은 나름의 ‘결실’을 맺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사진=아이스톡)

‘기술 민족주의’ 대결, 더욱 치열해져

그렇다고 미국이 기존 강경 전략을 전면 수정할 리는 없다. 중국으로의 칩 수출 규정을 완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에 발표된 ‘AI 행동 계획’에서 보듯, 기존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I 행동계획’의 선언문 행간엔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읽힌다. “외국의 적대 세력이 AI 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지정학적 경쟁과 국가 안보 모두의 문제”라면서도 “우리는 수출 통제 시행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주목된다. 즉 대중 제재는 유지하되, 그 방법에 있어서 첨단 제품을 제외한 미국산 칩을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뜻도 된다. 이를 통해 중국 AI 기업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AI생태계에 가두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딥시크와 알리바바가 지원하는 ‘Kimi K2’를 최근 출시하며 (엔비디아 등) 글로벌 벤치마크를 능가하는 AI를 개발하는 데 최신 하드웨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신 칩은 중국에서 판매되지 않고 구형 칩이 칩 판매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만으로 미국산 칩에 필적하거나, 심지어 능가하는 최첨단 AI 모델을 개발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나름대로 대중 AI패권 전략의 방법론을 약간 수정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로써 세계 AI 패권을 둘러싼 전쟁은 다시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탐즈하드웨어는 이를 두고 “중국의 AI 협력 비전을 지지해 달라는 베이징의 제안은 ‘AI 지정학’의 판도가 새롭게 전개될 조짐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