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크립토’ 바람…대중화 움직임 본격화
20~50대 투자자, 단순 매매 넘은 정보 분석과 분산 투자 대형 투자자 진입, 미국 현물 ETF 출시로 제도권 접점 확대 국내 금융사들, 안정성·신뢰성 강화에 집중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최근 금융업계에서는 기존 예적금과 주식 중심이던 투자 플랫폼들이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포함한 자산관리 서비스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배경에는 20~50대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 변화가 있다. 이들은 단순 투자 대신 직접 정보를 분석하고 분산 투자하며 금융 시장에 새 흐름을 만든다.
최근 공개된 하나금융연구소의 ‘2050 세대 가상자산 투자 트렌드’ 보고서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 변화를 “투자자 요구에 맞춘 금융 서비스의 자연스러운 진화”로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금융 플랫폼은 예금과 주식 거래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가상자산까지 아우르는 통합 자산관리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투자자 행동과 인식이 바뀌면서 금융산업 일부가 반응하는 결과다. 특히 20~50대 투자자들은 금융 자산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투자 플랫폼, 가상자산 기능 잇따라 강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은 최근 앱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단순히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기능에서 벗어나 전체 자산 현황 요약, 자동매매 서비스, 수익률 분석 등 다양한 투자 지원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과거 주식 거래 앱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투자자 편의를 높이기 위해 UI(사용자 환경)와 UX(사용자 경험)를 개선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빅테크 금융 앱인 토스, 카카오페이도 가상자산 관련 기능을 시험 도입하며 움직임에 동참했다. 디지털 자산 시세 연동, 정보 제공 기능을 부분적으로 선보이며 시장 반응을 살피는 단계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확대되면서 가상자산까지 포함한 모든 자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 조회 서비스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이는 투자자에게 더 넓고 깊은 자산 관리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유행이나 기술 트렌드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투자자들의 인식과 행동 방식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대 투자자들은 단순히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산 구성과 관리에 큰 관심을 둔다.
특히 30~40대는 과거 투자 경험을 토대로 시장에 다시 적극 참여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들은 단순 투기를 넘어서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을 운용한다.
보고서에 나타난 투자 행태를 보면, 투자자들은 정보 수집 방식과 접근 태도에 따라 직접형, 추천형, 분산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직접형은 투자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해 판단하는 유형이고, 추천형은 플랫폼이나 전문가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참고하는 경우다. 분산형은 여러 종목에 소액으로 나눠 투자하며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방식이다. 이 유형들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투자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정보 생산자로 진화하는 투자자
과거에는 유튜브 영상이나 지인 조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구조나 프로젝트 팀의 경력 등 핵심 정보를 직접 살핀다.
텔레그램, 디스코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보 공유의 중심이 되면서 투자자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교류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거짓 정보나 과장된 홍보를 판별하는 능력도 키우고 있다. 실제로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백서와 기술 문서, 개발 진행 상황 등을 비교 분석하며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는 투자자 성숙도를 높이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투자자들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테마성 코인에서 점차 기술력과 실사용 가능성을 갖춘 프로젝트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 블록체인 인프라(기반 기술), 게임과 연동되는 코인,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중앙 권한 없이 운영되는 금융 서비스) 토큰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과 솔라나는 확장성과 실사용 사례가 풍부한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단순 화폐 기능을 넘어 스마트 계약, 디앱(DApp)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런 기술적 배경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또한, 스테이킹(암호화폐를 일정 기간 묶어 보유하며 보상을 받는 방식)과 디파이 예치 상품 활용도 크게 늘었다. 투자자들은 단순히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데서 나아가 능동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며 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움직임은 전통 금융의 예금, 펀드 운용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스테이킹 규모는 꾸준히 증가 중이며 수익률과 보유 기간을 함께 고려하는 투자자도 많아졌다.
대형 투자자 움직임과 제도권 진입 신호
시장 내 일부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패턴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빗썸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시장가 매수 주문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테이커 매수량’이라는 온체인(블록체인 거래 기록) 지표로 확인된다. 보통 기관이나 대규모 자금이 확신을 갖고 매수에 나설 때 나타나는 신호다.
또한 대형 지갑 수와 거래당 금액도 늘면서 구조적인 매수세가 시장에 유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가상자산 시장이 점차 안정화되고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가 출시된 이후 자금 유입이 지속되고 있다. 솔라나, 이더리움 등 주요 코인에 대한 ETF 승인 가능성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흐름은 가상자산이 단순 투기 대상에서 벗어나 제도권 금융시장에 편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사들도 가상자산에 눈길을 돌리며 플랫폼 운영 방식과 금융 상품 설계, 자산 통합 전략 등에서 변화 조짐을 보인다. 가상자산이 단순 투자 수단을 넘어서 자산관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단순 시세 확인을 넘어 자산 구성과 관리, 투자 구조 분석에도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에 금융시장도 변화하는 투자자 수요에 맞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금융사들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한편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과 정보 소비 방식 일부가 바뀌면서 금융산업이 이에 맞춰 변하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MZ세대 투자자들은 기존 금융 언어를 넘어서 새로운 투자 문법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금융사들은 이러한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며 서비스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