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거리’ 첫 측정 성공, 양자컴퓨팅 오류 잡아내

큐비트 오류 조기 감지… 연산 신뢰도 높인다 양자 상태 유사성, 세계 최초로 실험 측정 양자칩 연결부터 신소재 연구까지 활용 기대

2025-06-10     김예지 기자
양자 이미지.(사진:미드저니)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은 기술적 제약이 뚜렷하다. 계산 도중 큐비트 상태가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얽힘이 풀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큐비트는 워낙 예민해서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계산 결과가 크게 틀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자컴퓨터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면 큐비트의 상태를 정확하게 추적하고 오류를 조기에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기부에 따르면 국내 연구진이 전자의 '양자거리'를 고체 물질 속에서 세계 최초로 직접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양자거리는 양자 상태 간 유사도를 수치로 표현하는 물리량이다.

이 물리량을 실제로 측정할 수 있게 되면 큐비트 상태 변화나 오류 발생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양자컴퓨팅의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번 성과는 양자컴퓨팅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분석하고 잡아내는 데 결정적인 기초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자 상태 간 유사성을 측정하는 거리 '양자거리'

양자거리(quantum distance)는 서로 다른 두 양자 상태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숫자로 나타낸 값이다. 완전히 같으면 0, 전혀 다르면 1에 가까워진다. 단순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양자컴퓨팅에서는 이 수치가 연산 과정에서 상태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큐비트들이 얼마나 잘 얽혀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문제는 이 값을 실험적으로 직접 측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일부 요소만 추정하거나 근사값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양자 상태 간 유사성을 실험을 통해 직접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 양범정 교수의 이론팀과 연세대 김근수 교수의 실험팀이 협력해, 대칭 구조가 뚜렷한 흑린(black phosphorus)을 활용해 양자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을 구현한 것이다.

양자컴퓨팅의 오류 보정, 현실화 가까워져

양자거리 기술은 양자컴퓨팅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큐비트 상태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감지하고, 그 변화가 정상 범위인지 아닌지를 수치로 판단할 수 있어 오류를 조기에 포착하고 연산 정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술은 양자컴퓨터의 근본적인 한계로 꼽히는 '오류 보정'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양자거리 측정 개념도. 두 개의 노란 공은 전자를 나타내며, 아래 흰색 눈금은 전자 간의 양자거리를 측정하는 자를 상징한다. 양자거리는 실제 거리와는 다른 개념으로, 전자 상태 간 유사성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사진:과기부, 연세대학교 김근수 교수)

양자거리는 단순히 개별 큐비트 상태를 감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큐비트들이 얽혀 있는 양자 얽힘 상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연산의 정확도뿐 아니라 확장 가능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큐비트 수를 늘려도 얽힘 상태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정확한 연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자거리를 통해 큐비트 간 상호작용의 신뢰도를 측정함으로써 기존 양자컴퓨터가 겪는 스케일 확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멀티코어 양자칩이나 양자 네트워크처럼 여러 양자칩 간의 동기화가 중요한 기술에서는, 양자거리가 칩 간 연결 품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양자 측량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차세대 양자 기술 개발에서도 칩 간 연결의 신뢰도 확보는 필수인데, 양자거리는 이 문제를 풀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센서부터 신소재 연구까지… 응용 분야도 넓다

양자거리 측정 기술은 양자컴퓨터의 연산 정확도만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큐비트 상태의 특성을 수치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회로 설계나 제어 시스템의 정밀도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양자센서나 초전도체처럼 다른 양자기술 분야에서도 실시간 상태 분석이 필요한 영역에서 응용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체물리나 신소재 연구 분야에서도 활용 범위가 넓다. 특정 물질의 양자 상태를 수치화해 분석할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정밀한 방식으로 물질의 특성을 예측하고 실험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이론과 실험이 긴밀하게 맞물려야만 가능한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양자과학의 다른 분야로 확장되는 흐름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