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경력 우대’ 채용…신입사원 설자리 없어

AI 도입, 즉시 현장 투입 인재 선호, "Z세대 신입보다 AI선호" 반복 업무 넘어 금융·투자 업계도 경력 중심 채용 가속화 성과 중심 채용, AI로 성과 내야 경력직도 명맥 유지해

2025-05-28     김예지 기자
'2025 월드IT쇼'에서 선보인 물류 AI 로봇으로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사진:애플경제)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AI가 빠르게 채용 문화를 바꾸고 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곳은 예상대로 신입 채용 시장이다. 기업들이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 기조는 예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이 경향은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기존에 신입이 담당하던 역할들이 줄어들고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 인재가 더욱 우선시되고 있다.

AI 도입 후 채용 방식 빠르게 변화

AI가 도입된 이후 기업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력’을 더욱 선호하는 추세다. 단순한 데이터 정리나 기초적인 코드 작업을 맡았던 기존 신입 포지션은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주의 40%가 AI 도입으로 인력을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술이 인력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국내 IT업계 일각에서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 빅테크나 스타트업들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만큼 뚜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실제 채용 실태 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빅테크 기업들의 신입 채용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고, 스타트업도 11% 줄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2~5년 차 경력직 채용은 같은 기간 27% 늘었다.

AI는 일부 업무 자동화를 넘어서 기업들의 채용 전략 자체를 바꾸고 있다. 시그널파이어는 “AI가 특정 직무를 대체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신입을 뽑아 키우는 대신 경력직 위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입 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술 변화가 빠르고 팀 규모가 줄면서, 신입을 뽑아 천천히 육성하는 전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AI가 코딩, 문서 분석, 보고서 작성 등 반복 업무를 맡으면서 신입에게 주던 ‘학습의 기회’도 줄어든 것이다.

금융과 투자 업계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 AI 기반 재무 분석 스타트업 대표는 “우리가 사용하는 분석 도구가 과거 투자은행에서 내가 하던 업무 대부분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글로벌 금융기관은 주니어 인력을 줄이거나 급여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겉으로는 신입 채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경력자를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신입 채용 공고에 적힌 우대 사항이나 실무 요건을 보면 경력자 중심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AIoT 2024'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모습으로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사진:애플경제)

Z세대와 AI의 경쟁…“결국 AI 잘 다루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것”

지금의 신입 세대, 특히 Z세대는 AI와 경쟁하는 첫 세대다. 그러나 경험 부족을 이유로 기회 자체를 얻기 힘들다. 시그널파이어 조사에서 관리자 37%는 “AI를 활용하는 것이 Z세대를 채용하는 것보다 낫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은 신입 대신 경력자를 주니어 역할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경험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Z세대는 학위나 교육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국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AI 영향으로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AI가 고용 구조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꾸고 있다.

기업들이 경력직만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즉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채용 구조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경력직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신입이 없으면 경력을 쌓을 기회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그널파이어 인재 전략 파트너 헤더 도셰이는 “AI가 직접 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니지만, AI를 더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신입에게 필요한 역량은 ‘잠재력’이 아니라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AI는 신입이 하던 일자리를 줄였고, 기업은 효율성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지금이 인재 육성의 사다리를 다시 세울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