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 "4세대 BESS 선점"에 사활 걸어
4세대 BESS 기술 도입, 전고체·나트륨이온 배터리로 시장 경쟁력 강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기업들, 상용화 전략 본격화 제주 중심으로 한 실증 사업, BESS 기술 상용화 위한 중요 기반 마련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4세대 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 장치)' 기술 상용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일시적인 조정기에 들어선 가운데, BESS는 다음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고체·나트륨이온 같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적용한 ‘4세대 BESS’가 주목받으며, 기술 개발과 실증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기업들이 기존 리튬인산철(LFP) 기반의 한계를 넘기 위해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검토하고,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인증과 상용화 전략에 본격 나서고 있다. 제주를 중심으로 한 국내 실증 사업도 본격화되면서, BESS는 이제 단순한 전력 저장 장치를 넘어 미래 전력망을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전고체·나트륨이온 배터리, 4세대 BESS의 미래를 연다
BESS 기술은 이제 단순히 저장만 하는 장비가 아니라, 전력망의 품질과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운데 업계는 기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넘어선 4세대 기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BESS는 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했지만, 에너지 밀도와 장기 내구성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는 전고체나 나트륨이온 같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고체 배터리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구조로, 화재 위험을 대폭 낮추고 충전 효율은 높인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가 전고체 BESS B샘플을 제조사에 납품하며 대량 생산 준비에 들어갔고, 연간 20GWh 규모 생산까지 추진 중이다. 기존 리튬이온보다 에너지 밀도와 내구성이 뛰어나 ‘꿈의 배터리’로 불릴 만큼 주목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아직 상용화된 제품은 없지만, ESS 분야에 4세대 배터리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실증과 상업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인증을 획득하기 위한 테스트 및 안전성 검증도 병행 중이다. 북미 시장을 겨냥하려면 UL 9540, UL 9540A, NFPA 855 등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3사, 4세대 기술 경쟁에 본격 가세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시장 정체에 대응해 ESS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통합 에너지 솔루션 수요가 확대되면서, BESS는 전기차 다음 수익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에 연 16GWh 규모의 BESS용 LFP 셀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배터리 셀뿐 아니라 시스템 통합을 맡는 ‘버텍’ 부문을 통해 에너지 관리 시스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함께 공급하며 ‘통합 플랫폼’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SDI는 최근 한국전기안전공사와 함께 -40℃~80℃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고신뢰성 BESS 시스템을 공동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 386억 원 규모의 국가 과제로 진행되며, 향후 다양한 환경에서의 운용 안정성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린다.
SK온은 지난해 일본 IHI 테라썬과 손잡고 북미 완제품 BESS 시장을 공략 중이다. 배터리만 공급하는 단순 구조를 넘어서, 변압기·BMS·인버터까지 결합된 통합 시스템 공급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북미 화재 안전 인증도 확보해 ESS 관련 기술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도 상용화 발판 마련…제주부터 실증 시작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는 실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를 중심으로 대용량 BESS 시스템 실증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고 있다.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고, 잉여 전력 발생 시 출력 제어가 반복되는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동서발전은 140MWh급 BESS를 제주 북촌 지역에 구축하고 상업 운전을 준비 중이다. 전력이 남을 때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시간에 꺼내 쓰는 구조로, 계통 안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LS일렉트릭도 제주 한림 지역에 40MWh 규모의 장주기 ESS를 착공했다. 이 장비는 4시간 이상 전력 저장·방전이 가능해 전력망 유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실증 사업들은 향후 4세대 BESS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한 기반으로 기능하게 된다.
배터리로 바꾸는 전력망, BESS가 핵심 인프라
이처럼 전기를 저장하고 제어하는 배터리 기반 시스템, BESS가 전력망 운영의 중심 기술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배터리를 활용해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BESS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핵심 장치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 ESS는 피크 시간대 전력 공급이나 비상 전원 역할에 국한됐다면, 지금의 BESS는 하루를 넘어 계절 단위로도 전력을 저장·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전력은 생산 즉시 소비돼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BESS는 에너지 소비 패턴에 맞춰 전력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리튬 기반 BESS는 설치 유연성, 경제성, 안전성을 고루 갖추며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여기에 더해 전고체나 나트륨이온 같은 4세대 배터리 기술이 도입되면, 저장 용량과 안정성이 더욱 향상된 BESS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BESS는 단순한 보조 장비를 넘어, 전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생태계를 배터리 기반으로 재편하는 작업의 출발점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가깝다. 누가 먼저 상용화 모델을 완성하고 글로벌 기준을 충족하느냐에 따라 향후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시장 이후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인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BESS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지금은 그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