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에이전틱 AI’, "인격갖춘 동료나 경쟁자"

에이전틱 AI, 기존 NPC와 달리 ‘능독적 판단, 유저와 협력 내지 경쟁' 멀티모달 인식, 장기 기억 및 초고속 연산 기술이 핵심 메타버스 기반, 에이전틱 AI가 '인간과 AI' 협력 생태계 유도

2025-04-15     김예지 기자
크래프톤은 3월 신작 '인조이'에서 유저와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AI 캐릭터 '스마트조이'를 선보였다.(사진:엔비디아 유튜브)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게임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기존 게임에서 NPC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제한된 반응만 보이는 수동적인 존재였지만,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유저와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능동적 주체로 발전하고 있다.

CES 2025와 GDC 등 주요 글로벌 게임 전시회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해 게임 플레이 방식 자체를 바꾸는 사례들이 소개됐다. 단순히 AI가 대화만 잘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AI는 플레이어의 동료가 되어 전투를 지원하고, 임무를 공유하며, 게임 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캐릭터의 반응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게임 설계 구조와 개발 환경, 운영 방식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에이전틱 AI는 결국 게임이라는 공간을 인간과 AI가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공동의 무대로 재편하고 있다.

반응형을 넘어선 능동형 AI…'함께 싸우는 동료'가 된다

에이전틱 AI는 유저의 지시를 기다리는 기존 반응형 NPC와 달리, 유저의 행동을 분석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독립적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특징을 가진다. 플레이 도중 전황이 바뀌면 AI가 이를 인지하고 스스로 목표를 재설정하거나, 미션의 흐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유저에게 협업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때 AI는 단순히 미리 정해진 대사를 읊는 것이 아니라, 유저의 발언과 게임 내 맥락을 해석해 대화를 이어간다.

예를 들어 유저가 “우리 지금 위험한 지역으로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 에이전틱 AI는 유저의 위치, 주변 적군 수, 보유 아이템 상황 등을 고려해 “우회 경로가 있지만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어. 어떻게 할까?”와 같은 반응을 실시간으로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나 대화가 아닌, 실제로 임무 수행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이다.

또한 에이전틱 AI는 유저와 함께 전투에 참여하고,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지원을 요청하거나 경고를 보내는 능력을 갖춘다. 일종의 ‘게임 속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플레이 경험 자체가 변하고, 혼자 하는 게임이라도 협동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에이전틱 AI 기술 구성.(사진:엔비디아 블로그)

에이전틱 AI가 작동하려면 단순한 언어 모델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AI는 실제 환경을 인지하고, 게임 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며, 과거의 경험을 축적해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반에는 세 가지 핵심 기술 요소가 있다.

먼저 멀티모달 인식 및 추론 능력이다. 에이전틱 AI는 유저의 음성이나 텍스트 입력뿐 아니라 게임 속 상황 전반을 인식해야 한다. 유저의 체력, 적의 위치, 보유 아이템, 시간 제한, 날씨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한꺼번에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각 정보, 오디오, 위치 데이터, 게임 메타데이터 등을 통합 분석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는 장기 기억 및 학습 구조다. 일반적인 AI는 수초 전 대화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에이전틱 AI는 유저와의 과거 상호작용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유저가 자주 사용하는 무기나 전투 스타일을 기억해 그에 맞는 전술을 제안하거나, 특정 미션을 반복 수행할 경우 이전 실패 원인을 학습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벡터 DB 기반의 기억 저장소, 사용자별 행동 로그 분석, 강화 학습 기반의 자기 조정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셋째는 초고속 연산 인프라다. 에이전틱 AI는 수십 가지 상황 변수를 동시에 판단하고 실시간으로 말하거나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실시간 다중 추론과 적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고성능 GPU의 연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엔비디아가 공개한 GDC 2025 기술 자료에 따르면, 게임 특화 GPU는 기존 그래픽 연산 외에도 AI 추론 속도를 크게 개선한 구조를 도입했다. 게임 내 100개 이상의 AI 캐릭터가 동시에 반응하더라도 병목 현상이 생기지 않는 수준의 처리 능력을 요구한다.

즉, 에이전틱 AI가 작동하려면 AI 모델뿐 아니라, 게임 엔진과 하드웨어, 네트워크 구조까지 전체적인 기술 스택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메이드의 출시 예정작 '미르 5'에 등장하는 AI 보스 '아스테리온'은 플레이어의 실력과 전술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한다.(사진:위메이드)

주요 게임사들, 실제 게임에 에이전틱 AI 도입 시작

에이전틱 AI는 이제 실험실을 넘어 상용 게임 환경으로 진입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게임사들은 이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도입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크래프톤은 CES 2025에서 ‘CPC(Co-Playable Character)’라는 이름의 AI 동료 캐릭터를 공개했다. CPC는 전투 상황에서 유저가 명령하지 않아도 적의 움직임을 분석해 회피하거나, 아군의 전력을 평가해 먼저 지원을 제안한다. 유저가 위험한 위치에 있으면 “포지션을 바꿔야 할 것 같아”라며 작전 변경을 제안하거나, 상황이 불리해지면 “잠시 후퇴하고 회복하자”고 의견을 내는 구조다.

넥슨은 자사 MMORPG ‘프록시마’의 일부 인스턴스 던전에 에이전틱 AI를 테스트 도입하고 있다. 이 AI는 전투 중 실시간 버프 제공, 탱커와 딜러의 포지션 조정, 유저의 체력 상황에 따른 전술 변화 등 다양한 협업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유저의 성향을 분석해 방어 중심으로 움직일지, 돌격을 선호할지 전략을 바꾸는 기능도 실험 중이다.

EA는 FIFA 시리즈 차기작에서 AI 선수에게 감정 상태를 부여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연속된 패배로 인한 스트레스로 AI가 소극적으로 플레이하거나, 라이벌 팀에 맞서면 경쟁심이 고조돼 과감한 패스를 시도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기반 반응이 아니라, AI가 맥락과 감정을 인식해 반응하도록 하는 시도다.

MMO와 메타버스, 'AI가 움직이는 세계'로 재편된다

에이전틱 AI의 확장은 단순히 캐릭터 변화에 그치지 않고, 게임 구조와 메타버스 플랫폼 전체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규모 멀티플레이 게임(MMO)과 메타버스 환경에서 AI의 도입은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기존 MMO에서는 퀘스트를 주는 NPC, 상점 주인, 이벤트 캐릭터 등이 고정된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에이전틱 AI가 이 자리를 대신하면, 유저의 행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임무가 바뀌고, 콘텐츠가 동적으로 생성된다. 예를 들어 유저가 퀘스트를 거절하면 AI가 다른 유저에게 전달하거나, 스스로 임무를 수행하는 식이다. 이는 게임 내 이벤트가 사람 없이도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AI는 게임 경제와 생태계에도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 AI 상점 운영자는 유저의 구매 패턴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고, AI 장인 캐릭터는 유저가 만든 재료를 분석해 효율적인 제작법을 제안한다. 심지어 AI가 길드를 조직하고, 유저를 모집해 전략적인 콘텐츠를 기획하는 실험도 가능해진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소셜형 메타버스에 에이전틱 AI가 도입되면, AI는 단순한 운영 봇이 아니라 가상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신규 유저를 안내하고, 문제 상황을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결국 에이전틱 AI는 게임과 메타버스를 인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과 AI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생태계로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