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 된 GPU 시장, 질서 다시 바로잡아야”
엔비디아 ‘50’ 시리즈 등 매점매석, 재고 조작 등 시장왜곡 하청 생산업체, 전자소매상 “바가지”, 구버전보다 성능개선 없어 엔비디아·AMD 등은 무관심…업계 일각 “유통 개혁 필요”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많은 국내외 언론은 젠슨 황과 엔비디아의 ‘GeForce 50 시리즈’나 AMD의 RX 신제품 등이 갖는 산업적 의미와 기술적 의미에 초점을 둔채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켠에선 재고난과 품귀현상(사실 여부와는 별개로)으로 ‘부르는게 값’이 되고 있다. 더욱이 극소수 사례인지 모르나, 발열과 게임 성능 등을 저해할 만한 결함도 아직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엔비디아 ‘50’ 시리즈는 수 천 대 일의 경매를 거쳐 신제품을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다. 그 와정에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고, 구하기도 힘들다.
일부 전문가들, 언론의 단편적 제품 리뷰에 ‘비판’
이에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GPU시장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3월 들어서도, “엔비디아 GeForce RTX 5070과 GeForce RTX 5070 Ti 중 어느 것이 게임 장비에 더 적합한가”, 혹은 “AMD 라데온 RX9070은 엔비디아 5070의 대안이 될까” 따위의 단편적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시장의 관행에 대해 분별있는 전문가와 저널리스트들은 일침을 가하고 있다. ‘엔가젯’의 수석기자이자 테크 전문 저널리스트인 이고르 보니파치는 “CES 2025에서 공개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엔비디아의 50 시리즈 RTX GPU는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며 이들 제품에 대한 호평 일색의 보도를 무색케하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5070’에 대한 (매점매석이나 재고 장난 등으로 오해할 만큼) 납득키 힘든 마케팅, 구 버전인 40 시리즈보다 그다지 나을 것 없는 성능 등을 꼬집었다. 그래서 “엔비디아의 그간 행보에서 볼 수 없었던 최악의 릴리스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문제는 이런 최악의 사례가 앞으로도 줄곧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라며 전면적인 시장 개혁 내지 엔비디아 등의 과점 현상을 해소할 지각 변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제품 출시때마다 물량과 가격 조작 반복
비단 보니파치 뿐 아니다. 시사 및 기술매체 ‘기즈모도’ 역시 “지난 몇 주를 돌이켜보니 과거 (엔비디아의) 행태가 다시 떠오르게 한다”며 같은 맥락의 지적을 이어갔다. 지난 2022년 8월 당시 많은 사용자들은 RTX 3070을 앞다퉈 구매했다. 그로부터 2년도 채 안되어 엔비디아는 다시 GeForce 40 시리즈를 출시했다.
당시 사용자들 중엔 “엔비디아의 새로운 GPU(40 시리즈)가 30 시리즈보다 크게 비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40이 출시되더라도 적절한 가격으로 새로운 카드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냥 3070을 구매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예상대로 ‘40 시리즈’는 출시 직후 이를 구매하는게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이에 사용자들은 “설마하니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결국 그런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냥 3070 구버전을 구매한 게 현명했다는 결론이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요즘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새로운 ‘5070’이 나왔지만 ‘40’시리즈가 출시되었을때와 똑같은 일이 펼쳐진 것이다. 게임용 PC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보통의 사용자들은 과연 어디서 50 시리즈 GPU를 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재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찾아낸다 해도 거의 모든 모델이 애초 엔비디아가 출시한 소비자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앞서 보니파치 기자는 “문제는 COVID 기간의 추세가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팬데믹 시절인 2020년 이래로 적잖은 사용자들은 갓 출시된 새로운 엔비디아 카드를 사기 위해선 가격이 얼마든 감수하곤 했다. 다만 당시엔 사적인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엔비디아의 협력사(AIB)들이 그런 매점매석 술수와 바가지 요금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이젠 사용자들이 더 이상 감내하거나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재고난 속에 공급이 왜곡되는 한 터무니없는 가격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청 생산업체 AIB, 유통사이트 등이 시장 왜곡 앞장
이같은 모순된 현실은 이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의해 일부나마 그 실체가 밝혀진 바 있다. 현재 엔비디아나 AMD의 물량 대부분은 ASUS, 기가바이트, XFX 및 조탁(Zotac) 등의 AIB(또는 추가 보드 파트너)가 생산해낸다.
과거에는 그나마 사용자들이 모델 간에 대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에는 엔비디아가 권장한 512GB 대신 1GB VRAM이 있는 GeForce 8800 GT를 대신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최신 AIB의 GPU는 약간의 오버클럭(과잉 기능 추가)이나 추가 팬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모두 동일한 제품이다. 예컨대 5070의 경우 엔비디아에서 사든, AIB 중 한 곳에서 사든, 품질은 똑같다. 오버클럭이나 추가 냉각 기능을 덧붙일 경우 미미하게나마 성능 차이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그 정도 성능 차이에 같은 제품이라도 AIB에서 매기는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기술업체 ‘Digital Foundry’ 관계자는 ‘PC맥’ 리뷰 과정에서 “AIB들은 소비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이상한 중개인’”이라며 “가격 인상을 설명할 만한 어떠한 타당한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5070 Ti’의 예를 들었다. 엔비디아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는 749달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소매업체 웹사이트는 딴 얘기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인 ‘뉴에그’(Newegg)에선 정작 749달러에 나온 5070 Ti는 하나도 없다. 가장 저렴한 제품이라고 해도 799달러이며, 다른 대부분의 제품들은 830달러 이상이다. 심지어 920달러에 나온 경우도 있다. 5070 Ti는 그야말로 750달러에서 900달러를 엿가락처럼 오르내리며, ‘부르는게 값’이다.
“망가진 비즈니스 모델, 속히 수선해야” 목소리 증폭
정작 ‘뉴에그’ 측은 “엔비디아 50 시리즈 GPU 가격이 부풀려진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때문”이라고 사이트에서 공지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대 중국 관세 인상폭인 10%만 올랐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궁색한 핑계일뿐”이란 지적이다.
정작 당사자인 엔비디아나 AMD는 이런 왜곡된 시장 현실에 무관심한 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제시한 해결책이라고 해봐야 불특정 다수의 미국 고객에게 본사에서 직접 5090 또는 5080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성능만 보장된다면, AMD의 49달러짜리 새 라데온 9070이나 9070 XT 카드가, 엔비디아 5070 및 5070 Ti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럴 경우 엔비디아 가격을 보다 공격적으로 책정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AMD 역시 ‘양심껏’ 충분한 물량을 재고로 유지하며, 정직한 소매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출시 후 시간이 오래되면 GPU 가격은 결국 정상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런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 모든 일이 늘 반복될 것이란 우려다. 특히 매년 또는 2년 주기로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이런 악습이 되풀이될 때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란 비판이다. 그래서 “GPU 산업의 핵심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급히 수선해야 할 때”라는 보니파치 기자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