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반정(反正)의 역사, ‘디지털시대’였다면?
나라가 어수선하다. 디지털 강국이자 AI 로봇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한민국의 위상과 동떨어진 비상계엄령을 발포하고 나서 벌어지는 혼란이 수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정도를 잃은 왕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는 일”을 반정(反正)이라고 했다. 비슷한 말로, “무력에 의해 정권을 빼앗는 일”로 프랑스어에 어원을 둔 ‘쿠테타(coup ď État)가 있다. 쿠테타 든 친위쿠데타든 간에 당대 정권을 몰아내거나, 권력 구도를 파괴한다는 명분에선 반정과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발생한 반정은 어떠한가? 대표적인 것이 ‘연산왕’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광해왕’을 몰아낸 ‘인조반정’이다. 반정의 명분은 폭군이자 혼군인 왕이, “백성으로부터 민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명분을 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하기사 12.12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도 ‘정의사회 구현’이란 탈을 쓰고 등장했지 않은가.
반정의 역사가 오늘날과 같은 AI 기반 디지털시대였다면 조선의 역사가 어느방향으로 흘러갔을까를 가상해서 생각해 봤다. 부질없어 보이겠지만 오늘날의 AI기반 디지털 사회를 그 시절에 비춰 ‘현존하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반상이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 사회였다. 두 반정이 일어났던 16~17세기는 신분제 사회의 극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대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한문을 사용했으며, 그들이 사용한 문자는 10%에도 못 미치는 소수 기득권의 문자였다. 좀 더 넓은 층에서 사용됐던 한글은 기득권층에 의해 무시되고 존중받지 못했다. 남존여비 사상의 팽배로 낮은 계층에 머물렀던 부녀자들과, 보다 낮은 신분의 언어였다.
정보를 독점한 똑똑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 사대부 양반계급이었다. 지금 디지털시대는 대다수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8세 이상 문맹률이 지금은 0%에 가깝지만 반정의 시대엔 한문을 읽지못하는 사람이 90%가 넘었다.
그러므로 ‘반정’은 정보를 독점한 소수 기득권 계층인 그들만의 리그를 통한 경쟁의 산물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반정의 시대가 오늘날과 같은 AI기반 디지털 사회였다면 80~90%를 차지했던 대다수의 서민대중이 기득권의 정보 독점을 두고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민중이 피폐했는지 연산이나 광해가 정말 혼군이었는지 디지털기기를 통해 민중들이 폭넓게 공유했을 것이다.
연산왕의 시대는 세종대왕이 이룩한 태평성대의 기운이 남아있었고 민중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피폐했지만 그래도 전임 왕조에 비해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대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혁파의지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민중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였다면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 연산 말기 폭정에 빠지는 일을 막고 그의 개혁의지를 북돋울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조반정은 소위 ‘광해군의 폭정’에 반발한 서인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정이다. 이때도 역시 반정을 일으킨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받들고 청나라를 경시하는데 몰두했다. 균형 외교로 나라를 지키는데 혼신을 다했던 광해군은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혼군이란 업보를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만약 오늘과 같은 디지털시대였다면 어땠을까. 민중들은 나라의 이익과 전쟁의 위기를 막아낸 광해 편에서 반정을 막았을 것이다.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는 당시 기득권(서인)이었던 사대부들의 명분론에 빠진 친명파에 둘러싸였다. 이게 화근이 되어 결국 청나라의 침범을 받고 백성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도탄에 빠진다. 그는 광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리석고 잔인한 자다. 아들인 소현세자를 죽이고 며느리에 손자까지 죽인 혼군이었다. 이를 디지털로 무장한 민중이라면 그냥 두고만 보았을까 의문이다.
디지털시대였다면 우리 민족 특유의 강한 회복력을 보여줬을 것이다. 정권이나 사회가 위기에 빠졌더라도 그들이 잘했던 외교와 국방, 그리고 부패한 기득권 혁파가 폭넓은 소통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반정 세력들이 발을 못 붙이도록 했을 것이다.
반면에 정보를 독점한 소수 기득권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알고리즘에 세뇌된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을 양산하여 혹세무민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극단주의적 유튜브의 폐해와도 같다. 모든 이치가 그렇듯 순기능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디지털은 양날의 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첨단 디지털 역기능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알고리즘으로 편향되거나 세뇌되는 디지털의 역기능”을 해결해야 하는게 지금이 과제다. 반정이 일어났던 15~16세기에도 이는 똑같이 유효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