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프로’ 퇴장에 ‘메타버스’ 비전도 실종?
애플, ‘비전프로’ 부진, 제작 중단, 업계 일제히 ‘MR’ 개발 포기 지나친 고가, ‘가성비’ 미흡…메타․삼성․LG도 중단 후 새 전략 모색 “XR․MR 기반 ‘메타버스 부활’ 위해선 보급형 모델, 기술혁신 필요”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글로벌 빅테크들을 중심으로 최근 고가의 MR 기기 개발을 중단하는 등 관련 시장이 침체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렇잖아도 침체된 메타버스 기술과 시장 전반에 주름살을 드리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처럼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지양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과, 기술혁신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공들인 야심작 ‘비전프로’ 극도로 판매 부진
실제로 최근 이 분야를 주도하던 애플은 고급형 MR 헤드셋 제작을 중단하면서 다른 기업들도 일단 숨고르기를 하면 전략을 새로 짜는 모습들이다.
특히 애플의 ‘비전 프로’가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을 아우르는 XR 기기 시장이 정체 내지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분석기관 IDC 집계에 의하면 비전 프로의 분기별 판매량은 처음 30~40만 대를 기대했으나 10만 대에 그쳤다. 더욱이 최근 3분기에는 75%나 하락한 2~3만 대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리미엄 MR 시장이 침체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고가 대신 보급형 모델 등을 통한 대중화를 모색하고 있다.
애초 ‘비전 프로’(Vision Pro)는 그야말로 애플이 미래 ‘비전’의 하나로 내건 야심작이다. 아이폰 기능을 헤드셋으로 구현한다는 개념하에서 무려 1천여 명의 개발자가 투입되고, 개발 기간만 7년 이상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iOS, iPadOS와 호환되는 자체 운영체제인 비전OS를 기반으로 구동, 100만 개 이상의 앱 사용이 가능하다. 또하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사용자의 눈과 손, 목소리로 제어할 수 있다. ‘비전 프로’를 통해 ‘페이스타임’ 영상통화를 하면, 이용자의 모습이 실물 크기로 재현된다. 이에 화상회의, 원격 근무, 협업 등에도 적합하다. 또한 ‘비전 프로’ 착용자 근처에 다가가면 기기가 투명화되는 ‘아이 사이트’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애플은 애초 “하드웨어 디자인과 이용자 친화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만큼, VR·AR·MR 대중화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무산된 셈이다.
뛰어난 기술력 불구, 비싼 가격, 탑재 앱 부족 등 한계
‘비전 프로’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얼리 어댑터’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3,500달러(한화 약 450만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과 콘텐츠의 제한, 무게 등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아이패드나 아이폰과 비교된다. 아이패드는 출시 몇 개월 뒤인 2010년 중반에 2만여 개의 앱에 달했고, 아이폰용 앱은 앱스토어 출시 해인 2008년 말 기준 1만 개 가량이나 되었다. 그러나 비전프로는 미국 내에서 출시 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여전히 2천개 남짓의 앱에 불과했다.
특히, “아이폰에서 매년 1천만 회 이상 다운로드되는 앱을 보유한 구글·메타 등 상위 300개 가량 업체 가운데, ‘비전 프로’ 전용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출시한 곳도 소수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IDC는 “2025년에는 현재의 ‘비전프로’의 반값 수준의 MR 헤드셋이 출시되어야 고객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애플은 더 저렴한 버전의 MR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는데, 빠르면 2025년 출시될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선 “‘아이사이트’ 기능에 따라 프리미엄과 보급형이 구분될 것”이라거나, “카메라나 센서의 수도 달라질 것”이라는 등의 예측이 오간다.
메타도 MR 헤드셋 ‘라 호야’ 개발 중단
이런 추세는 비단 애플 뿐 아니다. 고가의 MR 기기 시장이 침체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보급형 모델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메타가 대표적이다. 메타는 자사의 ‘리얼리티 랩’(Reality Labs) 부문 직원들에게 애플의 ‘비전 프로’와 경쟁할 하이엔드 MR 헤드셋 ‘라 호야(La Jolla)’ 개발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리얼리티 랩’은 메타버스 기기 개발을 위한 사업부이며, 고성능 MR 헤드셋 ‘라 호야’를 개발하던 중이다. ‘라 호야’는 2027년 출시 예정이었다. 애플 ‘비전 프로’처럼 고화질 해상도를 구현하는 마이크로 OLED를 탑재, 1,000달러 미만의 제품을 양산한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일단 개발을 중단 결정하기로 하고, 대신 중저가형 소비자 제품 중심으로 기조를 변경했다. 일단 오는 25일 개최할 자체 쇼케이스 ‘커넥트 2024’에서 VR 헤드셋 ‘퀘스트3’의 ‘퀘스트3S’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퀘스트3’는 소비자 가격 기준 최저 499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현재 상용화된 VR 헤드셋 중 가장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기기 개발 앞서 OS가 먼저’ 전략 수정
삼성전자도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연내 XR 기기를 출시하려던 계획을 일단 중단했다. 대신에 구글, 퀄컴 등과 손잡고 XR SW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며, XR 플랫폼을 우선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XR 디바이스 개발에 앞서 XR 하드웨어와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연동 시스템을 구축, 공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XR과 같은 새로운 기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기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더 좋은 경험을 하고 많은 서비스·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생태계 확보에 중점을 둔다”는 얘기다.
즉, ‘소비자 취향’을 등한시했다고 평가받는 애플 ‘비전 프로’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 키트(SDK) 플랫폼을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즉, 게임이나, 스트리밍, 콘텐츠, 서비스 등 IT 회사가 XR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므로, 이에 필요한 OS 등의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구글·퀄컴과 협업, XR 폼팩터를 개발하되, 퀄컴의 칩셋, 구글의 OS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 “당분간 기기보다 콘텐츠, OS에 중점”
LG전자는 지난 2월 말 메타 최고경영자(CEO)와의 만남을 통해 양사가 XR헤드셋 개발을 위해 협력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감안, 역시 XR 헤드셋 개발 계획을 중단, XR 사업화 속도를 늦추기로 한 것이다. 대신 “XR 사업의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며, “또한 메타와의 XR 관련 협업도 시장 환경 변화나 성숙도를 예의주시하며 검토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XR 사업의 핵심은 기기보다는 콘텐츠에 두기로 했다. 또 OS가 필수적 요소라고 판단, 자체 OS 개발 쪽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LG전자는 TV용 자체 OS를 이용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대규모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격대로 현재보다 나은 편의성과 성능을 제공해야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분석하며, “제조업체와 개발자는 사용자가 혼합현실(MR)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하드웨어와 경험을 개발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향후 몇 년 내에 VR 전용 헤드셋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