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과 AI 시대

2024-08-08     김건주 서강출판포럼회장

옛것을 본받아(法古)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법고이지변 창신이능전[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되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영・정조시대의 대문장가인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이 박제가의 문집 ‘초정집서’(楚亭集序)의 서문에서 밝힌 말이다.

옛것(전통)을 이어가려면 일정한 형식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온 고등종교나 제사문화도 교회법이나 제례법이라는 형식이 반드시 수반되었다. 충・효 사상에 기반한 유교의 전통 의례도 마찬가지로 독특한 형식에 의해 전승되었다. 율법이나 예의범절, 제례 준칙이라는 형식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 국가나 사회를 유지하는데 이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형식에 의존해서 전통을 잇다 보니 형식이라는 그릇 안에 들어있는 내용(콘텐츠)은 도외시되고 박제화된 형식만 남은 경우도 다반사인 것 같다.

연암 박지원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실사구시의 정신을 주창한 실학자다. 그가 주창한 요체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은 당대의 문체나 문장에 그치지 않고 AI 기반의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전통적 가치나 문화자산, 즉 옛것을 지켜가는데도 훌륭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무쌍한 AI 기반 디지털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보니 전통적 가치에 토대를 두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전통가치와 문화자산이 사라져간다고 한탄만 하진 않았던가. “왜 옛것을 덮어버리고 새것만 판치는 세상이 되었는가.”라고 말이다. 전통적 가치체계가 무너지는 현상만을 바라볼뿐, 정작 당연히 해야 할 질문과, 법도에 맞는 새것을 창조하는데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일례로 전통적 가치의 중심인 제례문화를 살펴보자. 오늘날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조상을 기억하고 그 얼을 본받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제례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이라는 시대의 조류를 무시한 채 그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감히 제안하건데 쇄신해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류에 영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쇄신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지배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혁명이라는 시대적 조류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디지털을 지배’해야만 한다. 생성형 AI라는 디지털 괴물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다 죽음에 이르는 공상영화가 현실로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디지털 제사”나 조상의 훌륭한 얼을 가상공간에서 재현하는 “메타버스 시제”는 어떤가. 시대를 무시하고 옛것만 고집해서는 그나마 남아있는 전통적 가치마저 매몰되고 말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