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기본법’ 재시동(2-2)-‘윤리․신뢰’보다 ‘사후규제’?

논의 시작단계, 업계․정부 ‘규제보다 진흥’ 원칙, 강력 전파 ‘고위험 인공지능’이나 ‘금지된 인공지능’ 규제도 부정적 EU벤치마킹, ‘규제 병행’ 시민사회 주장과 대립

2024-08-02     전윤미 기자
'AI 엑스포코리아 2024' 전시장 모습.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인공지능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기업과 정부는 주로 ‘진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 일각에선 “EU의 ‘AI법’을 벤치마킹하는 수준에서 충실한 ‘규제’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막 해당 입법 논의가 시작된 즈음, 업계와 정부는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업계 스스로 입법 관련 연구보고서를 공개하며, 규제보단 진흥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적극 전파하고 있다.

이들은 일단 “‘우선허용 사후규제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던 취지처럼, 기본법 제정을 논의할 경우,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의 발전도 관심을 두어야하며, 의무를 부과하고 권리를 제한하는 규제로서만 인식되어서는 안된다“고 입법의 대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시장 성숙 후 점차 규제 보완”

업계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 및 산업은 다른 기술·산업보다 발전방향이나 파급력 등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면서 “정부 주도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정하고 민간의 자율성에 맡기되, 향후 시장이 성숙되고 문제가 심화될 때 관련 규제를 점차 보완해나가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 김성원 의원이나 권칠승 의원 등의 발의안이 ‘우선허용 사후규제’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들어 사실상 지지를 표명했다. 나아가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인공지능 분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역시 ‘실증 규제특례’ 운영을 위한 근거를 명시적으로 반영한 국회 조인철 의원 발의안을 추천하기도 했다. 즉 “신기술 개발 과정의 원활한 실증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게 혁신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이유다.

‘의무부과·벌칙’등 지양해야

업계는 또 AI윤리와 신뢰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유화적이다. 이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이 초기 단계인데다, 주요국과의 기술경쟁을 이유로 “국내기업이 뒤처지지 않을 수 있도록 산업계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는 ‘의무부과·벌칙’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안전’뿐 아니라 ‘혁신’·‘포용’까지 포함한 균형적인 AI 거버넌스 취지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 원칙, 사회 공공선 원칙, 기술 합목적성 원칙 등 3대 원칙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업계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기술 자체의 위험성이 아닌 활용방식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윤리에 앞선 기술 우선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런 기술 친화적 입장은 ‘고위험 인공지능’이나 ‘금지된 인공지능’에 대한 입장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즉,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의무 규정의 필요성을 불가피하게 인정한다 하더라도 최소 필요한 수준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면서 “특히 ‘금지된 인공지능’에 대한 섣부른 규제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기술·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AI엑스포코리아 2024'에 참석한 업체의 부스.

고위험AI ‘검·인증’, ‘비상 정지기능 적용’에도 큰 거부감

즉,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검·인증 의무’, ‘비상 정지기능 적용 의무’가 가장 큰 부담이란 주장이다. 이런 업계 이익을 우선한 입장은 또 ‘위험관리체계, 이용자보호방안’ 등과 같은 비교적 강도가 약한 ‘고위험 인공지능 사업자의 책무’나, ‘고위험 인공지능의 확인 및 고지의무’ 등도 업계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런 고위험 인공지능은 아예 당국의 검․인증을 의무화하거나, 필요한 경우 그 배포와 사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벌칙’ 규정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검·인증 미준수’나 ‘고지의무 위반’ 등으로도 징역형을 포함한 형벌을 규정한 발의안을 문제삼고 있다. 이는 “선의의 전과자들을 양산하고 인공지능 생태계 전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반발이다. 그래서 ‘의무이행’의 담보력 확보 측면에서도 징역형이나 낮은 금액의 벌금으로 규정된 형벌에 반대하고 있다. 그 보다는 형벌이 아닌, 더 높은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의무 부과’에 대해선 조건부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즉 “시행 시기를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하고,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협·단체 등을 통한 적극적인 안내·홍보를 진행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법안 ‘윤리‧ 신뢰성 측면 강화’” 불만도

업계는 또 ‘인공지능기본법’은 “기본법이자 일반법 성격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타법과의 관계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즉, 국외행위에 적용하거나, 민간자율위원회 관련 내용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공지능기본법을 따르도록 정하며, 인공지능에 관한 다른 법률을 제‧개정할 경우에도 이 법의 목적과 이념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그러나 “제22대 국회 발의안들은 21대 발의된 법안들보다 기존에 포함된 ‘의무’에 더해 윤리‧ 신뢰성 측면을 강화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불만을 표하며,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선허용 사후규제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던 또 다른 법안의 취지처럼, 기술 및 산업의 발전도 관심을 두어야하며, 의무를 부과하고 권리를 제한하는 규제 측면만 인식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