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의 작은 혁명…실리콘 대신 ‘유리 기판’

기존 유기인터포저나 실리콘 기판 대체할 소재로 ‘각광’ 고르고 반듯한 표면, 낮은 열팽창계수와 열도율, 유연한 강도 “한정된 표면에 더 많은 반도체 회로 실장 가능”

2024-04-23     전윤미 기자
사진은 웨이퍼센스 오토 레지스턴스 센서로서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사이버옵틱스)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반도체 산업에서 실리콘을 대체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특히 AI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기판을 대체할 수 있는 ‘유리기판’(Glass substrate)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실리콘 기판처럼 고르고 반듯한 표면을 유지하면서, 열팽창계수와 열도율이 낮고, 강도가 유연하다는게 장점이다.

또한 AI반도체가 중요해지면서 그 소재인 기존 플라스틱 반도체 기판보다 안정성과 전력 효율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실리콘기판이나 플라스틱 기판, 유기 소재(유기 인터포저) 등을 대체할 만한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국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인텔이나 AMD 등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유리기판을 도입할 계획이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앱솔릭스 등도 국내 업체들도 반도체 기업에 유리기판을 납품하기로 하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판 위, 칩과 MLCC 등 효율적으로 배치”

이는 고성능 반도체를 위해 갈수록 미세 반도체 회로 기술이 중요해지는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엔 반도체 회로를 미세화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한계에 처하고 있다. 이에 기판 위에 칩과 다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패키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의 ‘유기 인터포저’나 플라스틱 기판은 각기 문제점이 적지 않다. 유기 인터포저는 기판 위에 OLED를 인터포저로 증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칩과 MLCC를 많이 배치하면 공정 중 발생하는 고온 때문에 플라스틱 기판이 휘어지고 패키징 공정의 불량률도 올라간다. 그렇다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실리콘 인터포저를 채택하면 가격이 비싸진다.

특히 플라스틱 기판은 표면이 고르지 못해 CPU나 GPU, 메모리 등 여러 반도체와 MLCC를 하나의 기판 위에 패키징하기 위해 중간에 실리콘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애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체 패키징이 두꺼워질 수 밖에 없다는게 문제다.

이에 비해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OLED) 소재보다 딱딱해서 세밀한 회로를 배열할 수 있다. 열과 휘어짐에도 강해 큰 표면적에 적합하다. 그 덕분에 MLCC를 내부에 심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기판보다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배열할 수 있다. 이에 “칩 밀집도를 높일 수 있어 반도체 공정의 차세대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이투자증권은 “표면이 고르고 반듯하면, 미세한 회로를 작업하기가 수월하고 기판 두께 자체를 얇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장점을 강조하면서 기존 유기 기판과 비교하기도 했다. 즉 “현재의 유기기판은 표면이 거칠기 때문에 중심축인 코어 표면에서 굵은 회로부터 시작하고 층을 쌓으면서 얇은 회로를 쌓아가는 형태”다. 그래서 “고르고 반듯한 표면에 곧바로 초미세 회로를 새김으로써 중간층을 제거할 수 있어 두께가 매우 얇아질 것”이란 예상이다.

유리기판은 또한 물체의 단단한 정도를 볼 수 있는 ‘영률’ 지표도 높다. 그 만큼 단단하다는 얘기다. 즉, 실리콘이 165GPa인 반면 유리는 50~90GPa이며, 유연성도 적당하다는 것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너무 단단하면 오히려 공정 중 기판 소재가 깨질 확률이 높으며 유리처럼 적당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다양한 층을 붙여도 한층 움직임이 유연하고, 수월하게 결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유리의 열전도율(Thermal conductivity)도 실리콘에 비해 150분의 1 밖에 안 된다. 그로 인해 열이 가해지면 실리콘은 전체 부위에 뜨겁거나 차가운 온도가 퍼지진다. 그러나 유리는 열이 전달되는 특정 부분만 잘 처리하면 된다는 얘기다.

기판 소재의 변화 그래프. (출처=하이투자증권)

국내외 반도체 관련 기업들, 도입·개발 서둘러

인텔과 AMD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이미 본격적으로 유리기판을 도입하고 있다. 인텔은 유리기판에 10억 달러를 투자, 2030년까지 상용화할 방침이다. AMD도 반도체 기판 제조사와 함께 유리기판 성능 평가를 진행하는 등 공급사를 물색 중이다. 전문가들은 “빠르면 2026년부터는 인텔과 엔비디아, AMD 등의 AI가속기와 서버용 CPU 제품에 유리 기판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기가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유리기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2025년 시제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또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 그룹 주요 전자 계열사들과 유리기판에 대한 공동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앱솔릭스도 유리기판을 생산하기 위해 2억 4,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 미국 조지아주에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올해 2·4분기부터 생산을 시작, 2025년에 대량 양산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LG이노텍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이 유리기판에 관심이 많은 만큼 유리기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주요 고객사인 북미 반도체 회사를 통해 유리기판 사업에 돌입할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한국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유리기판 양산용 장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광학장비 제조업체인 필옵틱스는 지난 3월 “유리기판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기 위한 글래스관통전극(TGV)을 구현하는 장비를 출하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레이저 가공 기술을 유리기판 제조에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장비 전문업체인 HB테크놀러지도 유리기판 양산용 검사 및 리페어 장비를 개발, 납품하고 있다. 도 지난해 반도체용 유리기판 핵심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반도체 소재 기업 ‘와이씨켐’도 고객사의 연구개발(R&D) 평가를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이 제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SKC에 인수된 테스트 소켓 기업 ISC도 앱솔릭스가 유리기판을 생산하면 성능을 검증하는 테스트 솔루션을 도입할 것을 검토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