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요금 인상, ‘묘책’ 될까
[애플경제 김남주 대기자]도깨비 세상이다. ‘옷 나와라’뚝딱 하면 옷이 나오고, ‘밥 나와라’하면 밥이 나온다. 모바일로 주문만 하면 하루가 머다 하고 내 앞에 대령해 준다. 카드에 잔고만 있으면 언제든지 오케이다. 장 보러 갈 필요도 없고, 가격 비교를 위해 발품 팔 일도 없다. 가격 순으로 제품을 열람할 수 있고, 제품 사양도 일견에 파악할 수 있다. 가히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세상이다. 어젯밤 로켓프레시로 주문한 계란이 문 앞에 놓여 있다. 달걀찜을 후딱 해 조반을 맛있게 먹는다. 쿠팡의 도전이 일궈낸 후생(welfare)의 한 단면이다. 어찌 보면 쿠팡에 묶여 사는 셈이다.
쿠팡이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들의 공습에 고전하고 있다. 무료 배송의 혜택을 주는 와우 멤버십 월 요금을 종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이 회사는 근래 들어 초저가 상품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알리)와 테무의 공세에 맞춰 멤버십 요금을 올린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누적적자 6조원 이상을 내며 소비자 후생을 끊임없이 확대해온 쿠팡이 막다른 골목에서 요금 인상에 나선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1.9%에 그쳤다. 언발에 그저 오줌을 뿌린 정도였다. 그것도 잠시다. 조금 상황이 호전되나 싶었는데 엄청난 악재가 출현했다. 알리·테무가 무차별 공격에 나선 것이다. 휴대폰을 켜기가 무섭게 이들 중국 업체 광고가 뜬다. 저가 공세 홍보 문구가 시야를 압도한다. 쿠팡이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모습이다.
쿠팡은 지난 12일 와우 멤버십 요금을 종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21년 말 멤버십 요금을 4990원으로 올린 지 약 2년 4개월 만이다. 월 요금 7890원은 지난 13일부터 멤버십에 신규 가입하는 회원에 적용됐다. 기존에 월 요금 4990원을 내던 회원들은 오는 8월부터 새로운 요금으로 바뀐다. 요금 인상과 관련, 쿠팡 관계자는 “현재 와우 멤버십은 신선식품 무료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 각종 무료 서비스 외에도 와우 회원 전용 상품 할인 등을 포함해 10가지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고객은 한 달에 3번만 로켓배송을 주문(3000원×3회=9000원)해도 월 요금 이상의 이득을 본다”고 소명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고정지출이 늘어났으니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1400만 유료 회원들 중 이를 반길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뻔한 회원들의 반발에도 쿠팡이 요금 인상에 나선 건 왜일까. 알리·테무 등 차이나 커머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쿠팡에 따르면 와우 멤버십 회원(1400만명) 월 요금으로 본 연간 구독료 총합은 8383억원 수준이다. 앞으로 7890원으로 오르게 된다면, 연 구독료 총합 추정치는 1조3255억원으로 나온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중국 업체 공세에 맞설 예정인데 앞으로의 험난한 경쟁 구도에서 이 자금이 뒷심을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쿠팡은 알리의 국내 1조5000억원 투자에 맞서 앞으로 3년간 3조원 이상 투자해 전국 5000만 인구에게 무료 로켓배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른바‘전국민 5000만명 로켓배송 추진’ 목표다. 현재 전국 182개 시군구(전체 260곳)에 로켓배송을 시행하는 쿠팡은 오는 2027년엔 고령화와 저출산 여파가 큰 인구감소지역을 포함한 230여개 시군구로 무료배송 혜택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쿠팡의 요금 인상은 과연 ‘신의 한 수’가 될까. 무엇보다도 요금 인상에 따른 소비자 이탈이 우려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실제 이탈하는 소비자가 그리 많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쿠팡이 2021년 12월 유료 멤버십 회비를 2000원 인상했을 때 유료 회원 수는 외려 이듬해 200만명 늘었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쿠팡은 한차례 가격 올린 후에도 가입자가 유지되는 록인(lock-in)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일상을 파고든 쿠팡의 뚜렷한 대체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가입자 이탈 폭이 크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알리와 테무의 대진격으로 혼돈 상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 쿠팡에게는 커다란 과제일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업체들의 투자여력은 쿠팡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쿠팡의 이번 요금 인상은 확보된 실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쓰느냐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