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사회적 갈등과 민원의 ‘불씨’로 떠올라

수도권에 전국 데이터센터의 80% 집중, ‘데이터센터 갈등’ 격화 주민들, 대규모 전력수요, 특고압 전자파, 소음, 열섬현상 등 우려 고양․안양․용인 등 지역민들, “당장 철회하라” 현수막과 항의집회 등 “초등학교, 주거밀집 지역 인근 웬말?”, 일부 기업 건설계획 철회도

2024-03-13     전윤미 기자
고양시 사리현동 데이터센터 건립 예정지 주민들이 인근 초등학교 담벽에 반대 현수막을 내걸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초등학교 바로 옆에 특고압선이 있는 데이터센터가 말이 됩니까?”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 B초등학교 근처엔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라는 대형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다. 바로 인근에 설치되는 데이터센터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건 것이다.

최근 고양시, 안양시, 용인시 등 수도권 일원에 데이터센터 설치를 둘러싼 주민들의 반발과 갈등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가급적 본사와 가까운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려는 기업체와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갈등이 증폭되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IT산업의 필수적인 시설이지만, 주민들 입장에선 일종의 유해시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각종 디지털 장비와 초고압선, 그로부터 발생하는 소음과 열을 방출하는 냉각탑 소음 등은 물론, 심지어 전자파 논란까지 일고 있다.

특히 2023년 기준으로 국내 데이터센터의 76%가 수도권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규모 전력수요, 특고압 전자파, 소음, 열섬현상 등에 대한 우려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더욱이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생성AI 시대로 접어들면서, 데이터센터도 대형화되고 있어 더욱 문제를 키우고 있다.

생성AI 시대, 데이터센터 대형화, 막대한 전력소모

많은 언론에선 이같은 주민들의 반발을 ‘님비현상’이나 ‘전자파 괴담’으로 몰아붙이지만, 정작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의 주거공간 인근에 거대한 전자시설이 들어서는 자체가 평온한 삶을 해치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 주민들의 반발이 가장 격렬한 고양시 사리현동의 경우 특히 초등학교로부터 100m도 안 되는 공터에 모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상황이다. 이에 고양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데이터센터를 성토하고 반대하는 댓글이 포화상태를 이룰 정도다.

이들은 “바로 옆! 몇 발자국만 가면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 생활인 곳에 데이터 센터를 짓는다니 말도 안된다”거나,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길가에 그걸 짓는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이곳 데이터센터 부지 주변에는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등 주거공간이 밀집해있고, 초등학교가 가깝다. 특히 “인근 주민들은 물론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게 특고압선 전자파는 치명적”이라며 전자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또 고양시와 기업체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강행하지말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

“성장기 학생들에게 특고압선 전자파 치명적”

주민들에 의하면 문제의 데이터센터는 지난 2022년 2월 건축위원회 심의에서 ‘위치 부적정’ 판정이 내려졌다가, 다시 그해 10월에는 조건부 의결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특히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상황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주민 편의 시설 하나 없는 열악한 동네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은 시민의 기본권인 행복 추구권을 말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사리현동의 데이터 센터 허가 조건에 대한 주민의 여론의 수렴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 중 상당수는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 허가가 났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인근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1만5천 볼트가 넘는 전력이 소비되는 건축물이 아파트 담장과 붙어서 지어진다니, 주변 주민들의 건강은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소수이긴 하나, 찬성하는 주민들도 없지 않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주민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면서 “데이터센터는 열처리나 소음 등을 모두 내부 시설로 다 소화할 수 있다. 최근 반대 목소리는 또 다른 정치세력까지 끼어들어, 불필요하게 부풀린 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전력 소모나 고압선 등에 대해서도 “실제로 주변에 해를 끼칠만큼 영향이 큰게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체로 찬성보다는 반대 목소리가 더 높은 편이다.

일부 ‘찬성’, 그러나 대부분 지역민들은 ‘반대’

비단 이 지역뿐 아니다. 고양시만 해도 외곽의 덕이동, 탄현동, 그리고 아파트 밀집 지구가 인접한 식사동 등에도 데이터센터 건립이 예정되어있다. 덕이동의 경우 GS건설 계열사인 마크나PFV가 지난 1월부터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지난해 말 건축 인·허가를 받은 데이터센터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연면적 1만6천㎡에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역시 현수막을 내걸거나, 집회를 갖는 등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그 중엔 “주민자치회도 반대하는 데이터센터 허가 취소하라”며 허가를 내준 고양시청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같은 갈등은 안양시, 용인시 등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자 계획을 철회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초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데이터센터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을 내걸며,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에 나섰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곳이 아파트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다.

이들은 “데이터센터 옥상에서 24시간 돌아가는 냉각탑 소음도 그렇고, 일조권 침해, 전자파 피해도 큰 문제”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모 대기업이 1만㎡ 규모의 계열사 창고 부지인 이곳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하면서 사달이 났다. 이 회사는 지난 2021년 안양시에 높이 62m,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만들며 격렬하게 반대하자, 결국 해당 기업은 계획을 철회했다. 그 후 데이터센터 부지를 매각하고 철수해버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도네시아에 설치한 데이터센터로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기업 스스로가 데이터센터의 유해요소를 제거하는 등의 노력을 보인 사례도 있다. 역시 안양시 관양동에 제2데이터센터를 신축한 LG유플러스가 그런 경우다. 이 회사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지자, 장시간의 협상 끝에 특고압선 차폐판을 설치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LG유플러스는 2025년까지 특고압선 지중선로 구간에 차폐판을 설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 특고압선 차례판 설치로 주민과 합의

차폐판 설치 이후에도 주민들이 모니터링이 이어진다. 즉 지역 시민단체 등과 합의된 공인 측정기관을 통해 2026년말까지 전자파를 7차례 측정하기로 했다. 만약 서로 합의한 전자파 기준(10mG)을 초과하면 다시 차폐판을 보수하기로 했다.

안양시도 “특고압선의 전자파 차폐판이 계획대로 설치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고 철저하게 관리 감독을 하겠다”면서 이같은 계획에 힘을 보탰다.

이같은 갈등 국면에서 해당 지자체의 역할도 크다. 앞서 고양시의 경우 사실상 주민의사를 무시하고 허가를 내줬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애초 고양시는 “적법한 절차 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제 와서 승인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데이터센터의 안전성을 검증하거나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할 경우 사업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자체, “중앙정부 차원 기준과 컨트롤 타워” 주문도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나 심해지자, 이동환 경기 고양시장은 뒤늦게 “데이터센터 설립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명확한 기준과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며 중앙정부에 부담을 떠넘기기도 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것도 갈등이 씨앗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데이터센터 93개 중 76%인 71개가 수도권에 있다. 더욱이 올해 준공될 예정인 데이터센터 중에선 그 비율이 85%나 된다.

이처럼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집중되면서 인구 밀집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은 물론, 막대한 전력소모로 인한 인근 지역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IT사업을 위해 편리한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절실한 해당 기업의 입장이 맞물리면서, 데이터센터는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불씨도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