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미국․EU의 ‘AI 패권’에 저항?
자체 ‘AI 윤리 및 거버넌스’ 가이드, AI기술 개발 폭넓게 허용 기업친화적, “각국 문화적 특성 맞는 AI 개발” 등 기술발전에 무게 AI규제 앞장 선 EU, “원칙 두고 함께 뭉쳐야” 아세안 압박 나서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EU가 엄격한 AI규제에 나서는가 하면, 미국도 이를 법제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기술이 뒤떨어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선진국들의 AI규제에 반발한 나머지. 최근 매우 기업 친화적이고 자유방임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의 ‘AI 윤리 및 거버넌스 가이드’의 기밀서류 초안을 소개했다.
‘내년 1월말 공식적으로 최종 확정’
이 매체는 현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기밀 초안이 피드백을 위해 동남아 현지에 진출한 메타, IBM, 구들 등에 배포되고 있으며, ‘아세안 디지털 장관 회의’에서 2024년 1월 말에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서방 국가들의 AI규제 움직임은 물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의 기류와도 상반되는 모습이다.
앞서 올해 초 EU는 ‘저작권 보호 및 AI 생성 콘텐츠 공개’를 기술 기업들에게 의무화한 새로운 AI 규칙을 채택했다.
그러나 EU의 AI법과 달리 아세안의 미공개 ‘AI 가이드’는 기업들에게 ‘국가마다 각기 다른 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것을 요청했다. 또 허용할 수 없는 AI의 위험 범주를 규정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각국이 자발적이며 자국 내 규정을 따를 것”만을 명시했다.
아세안은 인도를 제외해도 거의 7억 명의 인구와 1천개가 넘는 인종 그룹 및 문화권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렇다보니 각 국가들마다 AI 규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검열이나, 잘못된 정보, 공개 콘텐츠 및 혐오나 증오심 표현을 관리하는 매우 다양한 규칙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군주제를 비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둔 태국 같은 나라가 그런 경우다.
그래서 현지에 진출한 기술기업들은 “아세안은 상대적으로 불간섭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면서 “이미 기존 현지 법률이 나라마다 각기 다르고, 복잡하며 (AI규제와 같은) 규정을 강제하기보단, 비즈니스 친화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아세안의 ‘AI 윤리 가이드’는 AI개발과 관련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인도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들의 AI기술 수준이 낙후된 현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앞으로 공식화되기까지 지속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알려진 ‘AI 윤리 가이드’는 정부가 연구 개발 자금을 통해 기업을 지원하고, AI 구현에 관한 ‘아세안 디지털 장관 실무 그룹’을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세안 “EU, AI규제 너무 성급”
특히 아세안 주요국 당국자들은 “동남아시아의 AI 잠재력에 대해 낙관한다”면서 “EU가 기술의 해로움과 이점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규제를 너무 성급하게 추진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에 아세안의 ‘가이드’는 기업에 AI 위험 평가 구조와 AI 거버넌스 교육을 마련하도록 권고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기업과 현지 규제 기관에 맡긴다. 아세안 당국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이 ‘가이드’야말로 보다 안전한 AI를 위한 ‘가드레일’을 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혁신을 원한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가이드’는 또 AI가 잘못된 정보, '딥페이크', 명의 도용에 사용될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최선의 대응 방법은 개별 국가에 맡긴다”고 명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런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과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AI 규제에 대해 유사하게 완화된 접근 방식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아세안과 (한국,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은 EU가 27개 회원국에 적용될 규칙을 기반으로 AI 거버넌스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수립하려는 ‘야심’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해석했다.
로이터통신의 그런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시각을 일정 부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로이터 통신의 시각은 AI패권을 장악하려는 서방국가와, AI기술 발전을 통해 이에 저항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대립구도를 그린 것이다.
EU는 일종의 국가연합으로, 브뤼셀 EU의회와 집행부가 AI의 빠른 기술 발전이 시민권 및 보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감안, 전체 회원국 대상의 통일된 법규로 제정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아세안은 그런 단일 권역의 통일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으며, 회원국들이 스스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이번 AI규제에 대한 태도와 방식 역시 그런 점에서 EU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EU로선 자신이 만든 AI규제와 데이터 보호법(DSA)이 전세계의 모델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이에 EU는 아세안측과 AI규제를 위한 타협과 논의를 벌이고 있다.
EU집행위원회 대변인은 “(AI규제에서) 중요한 것은 비슷한 원칙을 갖는 것”이라며 “우리는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완전한 조화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기본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아세안을 압박했다.
EU 당국자들과 의회 의원들은 “EU가 더 광범위한 원칙에 대해 조율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계속 회담을 가질 것”이라며 “"AI가 선한 용도로 사용되려면 기본 원칙에 대해 함께 뭉쳐야 한다”고 로이터통신에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