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메타버스의 ‘실종’

실험 단계의 과대포장, 과잉기대, ‘엔데믹’ 이후 ‘물거품’ 초기 고비용 인프라 비해 “교육용 빼놓곤, 써먹는 경우 별로…” 전문가들 “도입 앞서 워크플로우 재설계 등 조건 충족 먼저”

2023-05-21     전윤미 기자
'2022 메타버스 페스티벌'에서 한 참가업체가 메타버스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한때 메타버스 붐이 일면서, 페이스북은 사명(社名) 자체를 ‘메타’로 바꾼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현재 메타란 이름은 더 이상 옛 페이스북을 떠올리지 않을 만큼 낯익은 글로벌 ‘빅테그’의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XR을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는 갈수록 관심이 줄어들다못해, 이젠 마치 사양산업의 하나처럼 산업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글로벌 시장분석기관인 ‘포레스터’(Forrester)는 이에 대해 “확장된 현실(메타버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직 그것을 배제하지는 말자”라고 평가했다.

‘포레스터’ 설문조사, 메타버스 ‘침몰’ 입증

20일 포레스터는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심지어는 “메타버스가 2021년과 2022년에 큰 화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포레스터는 보고서에서 XR(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의 CEO들은 “여전히 디지털 혁신 이니셔티브를 위해 이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토록 요란했던 메타버스가 왜 이렇게 자취를 감춘 듯, 침체된 것일까. 포레스터의 보고서에도 지적되고 있지만, 이는 무엇보다 실험 단계에서의 ‘과대 광고’ 혹은 ‘과장된 인식’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흔히 메타버스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기업과 전체 조직의 생산성과, 구성원들의 업무 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그 실상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홍보한 것”이라고 포레스터는 꼬집었다.

이는 실제 포레스터의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사용자들과 함께 메타버스 기술 관련 업체 20개사를 대상으로 “XR 및 메타버스 기술이 업무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 어떻게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메타버스는 그 이점이나 기회비용 등이 여러 이유로 인해 조사 대상자들에게 별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체 구성원들, XR 유용성 등 공감 못해”

특히 조사 대상 기업의 경영자들은 “이론적으로 메타버스는 직원들에게 핸즈프리(AR/MR) 작업을 하거나 깊이 몰입된 경험(VR)에 액세스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장치를 사내에 도입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 사용하는 경우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회사 업무에 어떤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6%가 노트북 컴퓨터를 꼽았고, 45%는 데스크톱 컴퓨터, 41%는 스마트폰을 꼽았다. 오직 4%만이 VR 헤드 마운트 장치를 꼽았고, 2%만이 AR 또는 메타버스 기기라고 했다.

메타버스 관련 비용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애초 2020년을 전후해 XR이나 메타버스를 도입할 경우 하드웨어 등 많은 초기 비용이 들었으나, 날이 갈수록 비용은 줄어들긴 했다. XR기술이 보급된 2016년 당시, 항공기 조종사들의 훈련용으로 도입되었던 XR 프로젝트는 당시 수 십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오늘날 유사한 프로젝트는 무료 평가판이 제공되거나, 아예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메타버스 실행을 위한 3D 구현 장치, 시각적 공간 데이터 도입, 스캔 작업, 워크플로우나 인력 교육에 따른 맞춤형 컨텐츠 제작 등 다양한 명목의 초기 비용은 여전히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더욱이 문제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체의 경우 이같은 새로운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이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익히고, 취향이나 신념, 공감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툴을 잘 알지 못하며, (메타버스 도입에 따른) 이점이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 조직을 위한 것인지 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메타버스 기술에 대한 투자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22 메타버스 엑스포'에 참가한 업체의 기술이 전시된 부스.

“아예 투자않거나, 과도한 비전 제시, 둘 중 하나”

또 메타버스 활용률이 저조한 것은 기업들의 전혀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메타버스를 아예 외면하거나,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았는가 하면, 반대로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메타버스 기술에 대해 미리 원대한 계획을 발표,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킨 기업들도 많다.

일각에선 또 기업체 임원들의 전통기술에 대한 맹신이나 타성이 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은행 임원은 “VR과 메타버스는 애초 음습한 웹3와 암호화폐에 묶여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게다가 거추장스런 헤드셋을 착용하고 싶어하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기술매체 ‘IT프로포탈’에 털어놓기도 했다.

포레스터는 이에 미국의 업무용 스마트 안경 공급업체 리얼웨어(RealWear)의 사례를 꼽기도 했다. 이 회사는 일찍부터 가상기술과 증강현실 기술을 선도하며, 이를 스마트 안경을 통해 실용화해온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메타버스의 침체로 이 회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웨어’는 최근에도 AR, XR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안경 7만여대를 생산, 재고로 관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이 회사 직원들조차 “아무도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장치로 가득 찬 옷장을 보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다른 캐나다의 한 소비자 대상은 ‘코로나19’ 당시 사무실 폐쇄로 VR 헤드셋을 활용, 메타버스 기술로 원격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엔데믹’이 도래하면서, 이는 다시 무용지물이 되다시피했다.

“VR이 여행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게 당연해 보인다”는 은행측 얘기다. 아직 이 은행은 XR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최근엔 가상공간의 협업보다는 교육이나 온보드에 XR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2022 메타버스 페스티벌'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메타버스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포레스터 “앞으로 10년 간 ‘메타버스 겨울’”

그 때문에 포레스터가 인용한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도입의 전제조건이나 성공요건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XR을 도입하려면, 실용적인 수준에서 기업이 전체 워크플로우를 재설계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위한 로드맵이나 파일럿과 교육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흔히 이를 위험한 시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포레스터 조사에선 “디지털 혁신 노력의 일환으로 XR 및 메타버스에 다른 신흥 기술과 함께 투자할 계획”이라는 응답도 31%에 달했다. 다만 사물인터넷(47%)이나, AI/ML(45%), 5G(40%)에 비해선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XR과 메타버스 기술은 VR 기반 교육이나, 온보딩, 학습, 또는 현장 근로자를 위한 AR 기반 원격 지원 수단으로 주로 이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포레스터는 “특히 2023년은 (메타버스에 대한) 과열된 기대감을 식히는 ‘메타버스 겨울’이 될 것이며, 메타버스의 ‘약속’이 실현되기까지는 10년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