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대만 추월 “반도체 강국” 도약?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이어, 美 마이크론 자국 내 투자 유치 최고급 반도체 칩 생산…미․중 갈등, 한국 ‘방심’ 노려 큰 ‘반사이익’
[애플경제 박문석 기자] 일본이 다시 반도체 강국으로 부활할 것인가. 대만의 TSMC가 일본 정부의 지원하에 무려 80억 달러 규모의 생산시설을 건설하는가 하면, 삼성전자도 일본 정부의 일부 지원을 받고 약 3천억원 규모의 생산시설을 현지에 짓기로 했다.
최근에는 다시 대중 수출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일본에서 최첨단 메모리 칩을 생산하기 위해 약 36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상당 부분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조건이다
이같은 결정은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 지도자들의 정상회담에 하루 앞서 일본측이 먼저 발표했다. 이에 마이크론도 “2025년부터 최첨단 메모리 칩을 만들겠다”고 호응했다.
이 소식은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통신’, ‘워싱턴 포스트’ 등 대부분의 유력한 외신들이 비중있게 다룰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 칩 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 와중에서 일본이 ‘어부지리’를 얻으며, 한국과 대만을 제치고, 다시 미국에 이어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일은 람 에마누엘 주일 미국 대사 등 미국측이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번 G7 회담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이 반사 이익을 크게 얻고 있는 셈이다.
에마누엘 미국 대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부문의 중요한 공정과 핵심 요소를 확보하고, 명확한 (대중) 억제력을 구축하기 위한 이번 투자는 미․일의 전략적 파트너십의 모범 사례”라고 밝혔다.
이에 ‘뉴욕타임즈’는 “마이크론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의 와중에 서게 되었다”면서 “이 회사는 최근 연매출의 약 11%를 공급했던 중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시급히 대안을 찾아야 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나서, 일본 히로시마에 새로운 생산설비를 구축키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마이크론은 “히로시마 공장에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칩 제조 기계 중 일부를 구입하여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EUV 리소그래피 장비’다.
이 장비는 초소형 트랜지스터를 칩으로 만들어진 실리콘의 슬래프에 매핑하는 것을 도와준다. 네덜란드 회사 ASML에 의해 독점적으로 만들어진 이 기계들은 각각 수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칩을 생산하는 기계로 인정받고 있다.
마이크론은 또 “최고급 칩을 일본과 대만에서 생산할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세계 최대의 비메모리 칩 제조업체인 대만의 TSMC는 작년에 일본에서 생산설비를 확장하는데 8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후 일본은 다시 메모리 제조업체인 키오시아와 웨스턴 디지털의 합작으로 가동되는 일본 최대의 칩 생산설비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일본은 또한 작년에 국내 주요 기술 회사들의 컨소시엄의 지원을 받아 ‘라피더스’(Rapidus)라고 불리는 새로운 칩 회사를 설립했다. 특히 일본은 이미 마이크론의 생산설비에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마이크론 히로시마 공장에서 고급 칩을 만들기 위해 약 3억 3천 8백만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당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방문 직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 가운데 1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 마크 리우 TSMC 사장 등 글로벌 반도체 최고경영자들을 집무실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기류는 일본이 과거 1980년대 ‘반도체 최강국’의 영화를 다시 살리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삼성전자나 대만 TSMC를 뛰어넘는 수준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