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윤 정부’ 1년…풀어야 할 ‘매듭’ 몇 가지

DNA․클라우드 진흥, RE100 참여, IRA 대응, ‘소부장’산업, ESS․배터리 “국가산업과 경제의 존망이 걸린 문제, 국정 동력 모두 쏟아부어야”

2023-05-10     박경만 주필
미래산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마곡지구 산업단지 전경으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IT와 디지털 분야를 포함한 산업 분야에서 적어도 4~5개의 큰 현안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으로 DNA(Data Network Ai)와 클라우드 진흥, RE100 참여, 미국의 IRA와 ‘반도체법’ 대응, 그리고 ‘소․부․장’산업의 대일의존 탈피, 배터리 및 ESS산업 진흥 등이다.

‘말’과 달리, DNA, 클라우드 예산 대폭 줄여

대체로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바에 따르면 윤 정부 역시 지난 정부처럼 DNA와 클라우드를 강조하는 맥락은 같다. 그러나 실제 내년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일단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부처간 칸막이 철폐, AI시장 경쟁력 제고, 공공데이터 사용 활성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2023년 정부예산의 경우 공공클라우드 예산은 무려 50%나 감액되었다. 그 결과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불과 340억원 밖에 안 된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한 두 곳의 클라우드 구축비용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세계적으로 초대형 생성AI 태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AI 기술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금년 예산에선 AI학습용 데이터 비용이 무려 40억원이나 깎였다. 일부 전문가들 간에는 “(정부와 대통령의) ‘구두선’을 통해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를 하도록 촉구한 셈”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美 IRA, 반도체법 대책 절실

이와 함께 2023년 들어 사실상 한미 간의 역학관계를 상징한다고 할 만한 미국의 IRA와 ‘반도체법’ 등도 가장 큰 현안으로 꼽힌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직후 바이든 미 대통령은 현대차 관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 고마움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직후 IRA법이 모습을 드러냈고, 현대차는 결국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반도체법’ 등에서도 한미 간의 이런 이율배반적 모습은 계속되었다. 중국산 광물과 부품을 배제하다보니, 정작 삼성전자 등 한국의 반도체기업들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일본은 약삭빠르게 위기 국면을 돌파했다. 끈질긴 물밑 협상을 통해 일본은 중국산 광물 사용에 대한 유예기간을 얻어냄으로써 예외가 된 것이다.

더욱 절박한 과제, ‘RE100’과 재생에너지

이들 현안보다 더 치명적인 위험요인은 RE100이다. 이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연간 100GWh 이상 사용하는 전력 다소비 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미 2021년말 기준으로 애플, TSMC, 인텔 등 전 세계 350여개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은 이미 전체 사용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 기업은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나, 이를 생산하는 기업들과는 무역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 중엔 그 때문에 판로가 막히거나, 타격을 입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재생에너지 현실은 국제 기류와는 정반대다. 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국내 기업 10곳 중 3곳이 해외의 거래기업들로부터 RE100 준수를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기업 중 RE100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는 미미한 수준이며, 실제로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불과 1.6%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 대기업 중에서 RE100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는 삼성 등 5곳 뿐이다.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해외공장 중심으로 ‘RE100’에 적극 동참하며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왔다. 그러나 국내에선 사정이 다르다. 국내 생산시설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IT 및 미래산업 전문가인 한빛미디어 박태웅 의장은 한 방송에 출연, “삼성은 그 때문에 해외에 공장 증설이나 신설을 늘려갈 계획”이라며 “반면에 재생에너지 비율이 미미한 국내에선 더 이상 생산시설이나 공장을 안 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전자 해외 법인들과 공장들은 이미 RE100을 100% 충족한 상태다.

서해상의 풍력발전 모습.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지만, 정작 국내에선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 해외 ‘엑소더스’ 속출” 예상도

그러나 국내에선 지난 2021년 이전까지 활발했던 태양광 발전마저, 정권이 바뀌면서 크게 위축되었다. 풍력 발전의 경우 우리 기업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국내에선 정치․사회적 이유로 홀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풍부한 태양광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산업 현장에 적극 권장하지 못하는 광역지자체의 사례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 역시 재생에너지 비율을 지난해 전체 사용전력의 30.2%였던 것을 금년에는 21%로 대폭 낮추었다. 대신에 반(反)‘탈원전’을 명분으로, 원자력 발전량을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국제적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보니 삼성전자가 국내에 공장을 신․증설하는 사례는 앞으로 극히 드물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당연히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도 치명적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최근 용인에 향후 5년 간 300조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했지만,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확보되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의미가 없는 ‘반쪽 짜리’ 계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로 생산한 반도체 제품은 국제시장에 거의 내다팔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엄격하게 RE100 기준을 들이대는 애플과 구글 등에 제품을 팔고 있다. 당연히 국내에서 화석연료 전력으로 생산한 제품은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정부 발표가 나온 후에도 삼성전자는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한 바가 없다”는 뒷얘기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문제는 국내 산업시설 ‘공동화’ 현상이다. 삼성과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살기 위해서’ 해외에 공장이나 생산기지를 둘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는 해외 현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자연스레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전문가는 “현 정권 임기 말쯤 되면 대부분 국가들은 RE100을 완수했거나, 엄청난 속도로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세계적 경제 전쟁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 다시 ‘소.부.장’ 산업 대일의존 부추겨

또 한 가지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소재, 부품, 장비, 즉 ‘소부장’ 산업이다. 이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지속되어온 대일적자(누적 약 500조원)의 원흉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로 국면 전환을 할 ‘호기’를 포착했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의 적극적인 소부장 산업 지원책에 힘입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난해 소부장 자급률이 급속히 높아졌다. 정작 피해를 본 기업들은 일본의 소부장 업체들이다. 그 중엔 생존책으로 우리나라에 현지 공장을 지은 업체들도 여럿이다. 그 때문에 “만약 3~4년만 더 국산화가 진행된다면, 완전히 대일 의존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란게 뜻있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윤 정부 들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일본이 선심이나 쓰듯, ‘수출 규제’를 해제하면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대한 수출에 적극 나섰고, 그나마 독자적 기술과 생산능력을 키워왔던 우리 소부장 기업들은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윤 정부가 최근 “일본 소부장 기업들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적극 유치하겠다”고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대일 의존을 탈피, 독자적인 소부장 기술입국을 실현할 소중한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는 일본에겐 ‘약’이 될지언정, 우리에겐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2차전지, ESS 분야 경쟁력도 중요

2차전지나 전기차 폐배터리 분야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ESS(에너지 저장장치) 부문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너무나 미약하다는 지적도 높다. 앞서 박태웅 의장은 “진정한 배터리 시스템과 생태계 완성은 ESS 기술력에 달려있는데, 우린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면서 “반면에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엄청난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세계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아직 세계 배터리 시장에선 LG엔솔 등 우리기업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CATL을 필두로 한 중국기업들의 추격 속도가 매우 빠르다. 특히 2차전지와 ESS 기술이 그 동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IT․ICT와 재생에너지 산업, IRA, 배터리와 ESS 등의 ‘꼬인 매듭’을 푸는 것이 향후 윤 정부 정책 드라이브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 중엔 “한국 핵심산업의 잠재적 경쟁력을 임기 중에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작심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눈앞의 절실한 현안에 국정 동력을 모두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쏟아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