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쟁점 3가지
CBDC 제외 명시할 지 여부·한은 자료제출권 두고 의견 대립 용어·법제명 통일 접근, 가상자산 ‘증권’으로 인정하느냐도 논란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국회에서 가상자산 이용자의 보호와 관련된 좀더 세부적인 논의가 오가고 있다. 그간 의원들이 이름을 달리하는 비슷한 내용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법안들을 제출했지만 통합되지 않아 계속 시간을 끌던 터였다. 특히 CBDC를 가상자산으로 명시할지 여부, 한국은행의 가상자산 시장 개입 수준, 그리고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인정할 것인지 등 3가지 가량의 쟁점이 입법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404회 제2차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정무위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얼개를 잡았다.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1단계 입법을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 정의한 용어와 차이가 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해 입법이 지연될 수 있어 용어를 '가상자산'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디지털자산', '암호자산', '가상통화' 등 용어가 난립했었다. 법률안 제명 또한 주요 내용을 명확히 반영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가상자산의 정의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할 것인지 ▲한국은행이 가상사잔 사업자에 대해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지 ▲증권 성격의 가상자산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또 금융을 관장하는 기관들 사이에서의 역할 분담과 관계 부처와의 협의 미숙 탓에 실효성 있는 이용자 보호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비판도 오갔다.
우선 'CBDC를 가상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상자산 이용자 법안에 명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측은 "현재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가상자산에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 지 개별적으로 얘기해달라는 요구가 많다"는 상황을 우선 짚었다. 'CBDC를 제외한다'는 문구를 법안에 넣으면 다른 비슷한 성격의 자산도 함께 논의해야 하고 결국 입법이 한없이 지연될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한국은행 쪽에서는 명시적 제외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규 의원 또한 "최근 한국은행 총재가 얘기했듯이 CBDC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이번 정부가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가상자산에 관한 종합적인 법률을 새롭게 만드는 지금은 CBDC를 배제해도 혼란이 없을 것 같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의원들은 이같은 입법 기술 및 표현의 문제는 법제처에게 자문을 추가적으로 받아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이 사안을 마무리지었다.
김한규 의원의 안은 한국은행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할 지에 대한 여부도 엇갈렸다. 한국은행 측은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통화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한규 의원도 "(자료 제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 스테이블 코인등 가상자산이 우리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며 "다만 규율을 한국은행법에 둘 것인지, 아니면 가상자산법에 근거를 둘 것인지에 대한 차이다"고 논쟁 주제를 분명히 했다.
금융위 측은 "현 법이 가상자산 이용자의 자산보호, 불공정거래 금지 등임을 고려할 때 통화신용정책 수행에 관련된 법은 한국은행법에서 따로 규율하는 게 법체계상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한규 의원은 "굳이 한국은행법을 또 고치는 것보다 가상자산법의 범위 내에서 규정하는 것이 낫다"고 응수했다.
이와 함께 증권 성격의 가상자산을 법안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의 중심이 됐다. 권도형의 테라·루나 사태 당시에도 미국의 SEC는 루나·테라가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기소한 반면, 국내에서는 증권성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해 사법 처리에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그만큼 개별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 판단 및 명시는 이용자 보호에 있어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측은 "가상자산 업자가 증권을 다루기도 하지만 가상자산도 다룬다"며 "이런 경우에는 이 업자들이 증권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법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걸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은 자본시장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데, 증권으로 인정된 가상자산 업자가 가상자산 보호법을 회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 적용을 배제하는 그런 커버 조항은 조심스럽다"는 것이 금융위의 입장이다.
이에 오기형 의원은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프로세스(절차)를 추가할 수 있다"며 "증권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는 증권을 규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판단을 유보하며 방치하기 때문에, 이를 명료하게 하는 절차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상자산 시장 내 불공정거래를 감독할 기관(주체)에 대해서도 입장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거래에 대한 감사를 금융감독원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금융위 측은 "현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책임 주체는 금융위로 되어있고, 금융위의 이러한 업무를 금감원장에게 위탁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감원장의 감독 권한을 별도로 조항으로 넣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윤창현 의원은 가상자산업을 일반 금융업과 같게 취급할 우려가 있으므로 금융감독원을 법 안으로 바로 들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조금이라도 금융기관과 차별화된 조치, 금융과 차별화된 걸로 정리해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자는 거다"가 그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금융위가 금감원 쪽으로 가상자산 이상거래 감사 업무를 사실상 위탁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윤창현 의원의 말처럼, "거리두기를 시켜 주자는 거지 감독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윤한홍 의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일반 금융과 분리를 시킨 범주로서의 가상자산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바로 넣는 대신 금융위원회의 위탁 형태로 규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회의 중 "처음부터 금융기관으로 인정하고 법을 만드는 거지, 금융기관이 아니라고 해 버리면 여기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에 금융위 측은 "세계에서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사는 조사공무원 등 인력과 조직이 미비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문구를 두고서도 논란이 일었다. 금융위 측은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사할 조직과 인력이 확정될 지는 미지수이기에 통상적으로는 감독원(금감원)의 위임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무부·행안부·기재부 등 조직·인력·예산이 수반돼야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한홍 의원은 "금감원에서 미리 인력 재배치를 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비판했다. 법 제정 이전에 합의를 마쳐야 하는 것이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 자체에 '미반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밖에도 ▲이용자 보호를 위해 사업자의 거래기록 보존의무를 정한 내용이 보강돼야 한다는 점 ▲가상자산 시장 내 시세조종, 부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도 밀도있게 논의됐다. 회의 중 의견이 갈리거나 근거가 불투명한 내용에 관해서는 다시 정리해 가까운 시일 내 열리는 회의에서 구체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