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개발자들, 블록체인에 회의적? “게임 '본질'에 집중해야”
20일 국제 게임대회 GDC, 주최측 조사 개발자 75% “블록체인 관심없다” “게임 자체 재미 요소에 집중해야”…일부 지역선 투기 수단으로 자리매김 위메이드 등 국내 게임업계, 여전히 블록체인 생태계 강화 움직임 지속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올해는 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으며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게임업계 내부에서 감돌고 있다. 지난 코로나 대유행 시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게임파이(GameFi)'가 올해 들어 암호화폐 거래소 파산 등 악재를 거듭하며 시장 불신이 심화, 더이상 유의미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경제적 이득보단 스토리·그래픽 수준 등 자체적 재미 요소라는 결론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국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Game Developer Conference) 2023' 주최측이 행사를 앞두고 실시한 사전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번 행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0일(현지시간)부터 닷새간 열린다.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술 노하우와 업계 동향을 주고받는 자리로 국내외 게임사들에게는 서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국제 게이머들 간에 팽배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사들은 입장이 다르다. 블록체인에 대한 투자 폭을 여전히 확대해나가며 이번 GDC에서도 관련 기술이 접목된 게임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국제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런 시도가 실제로 게이머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주최측 게임 개발자 2300명 대상 설문조사
GDC 주최측은 행사를 앞두고 게임 개발자 2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게임산업 동향을 분석했다. 이들에게 "작년 암호화폐·NFT·웹3 등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게임을 지원하겠다는 주요 게임사의 발표가 있었다. 이같은 기술을 당신의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질문하자 응답자의 75%가 블록체인 기술을 게임에 채택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23%만이 어느정도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5% 정도 줄어든 수치다.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게임 프로젝트에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묻자 개발자들의 61%가 관련 기술 사용에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찬성은 14%, 중립은 25%였다. "추후 블록체인 기술이 게임에 가치있게 사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양상 일부는 지속불가능하고 심지어 약탈적이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라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지난 몇 년간 많이 알려진 기술임에도 암호화폐를 제외한 실용적인 쓰임이 없고, 이마저도 금융 사기에 이용되고 있다", "블록체인이 플레이어의 게이밍 경험에 실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지금에야말로 확인해야 한다", "P2E가 중심이 된 경제 모델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NFT 등 블록체인이 개발자들에게 기존 기술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등 부정적 여론이 우세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게임을 설계하며 관련 활용 예시를 3개월간 조사했는데, 결국 이것은 추구할 가치가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는 경험으로 배운 결론도 나왔다.
지난 수 년간 게임파이 '거품'에 대한 반성?
블록체인이 게임업계를 강타했던 지난 몇 년을 짚어보면 이같은 조사 결과는 놀라우면서도 일면 타당해 보인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지나쳐 '거품'을 형성했고, 투기 심리와 맞물리며 정작 게이머들의 경험과는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관련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채택한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는 자체 암호화폐 '위믹스'를 야심차게 발행했지만 지난해 말 국내 주요 거래소에 퇴출됐다. 이후 유통 투명성을 강화하며 일부 거래소에 재상장하는데 성공했지만 낮아진 신뢰도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의 게임 스튜디오에서 도합 25년간 일해온 피터 버그스트롬(Peter Bergstrom)은 암호화폐 매체 '코인텔레그래프(Coin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활용 게임이 왜 한계에 맞닥뜨리게 됐는지 분석했다. 그는 게임파이(GameFi) 생태계가 기존 전통적 게임이 공들여온 경쟁 요소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경쟁 요소로는 플레이어의 본질적 경험, 즉 게임 주제와 스토리 등이다. "게임파이는 주로 돈과 암호화폐를 버는 것에 몰두했고, 다른 경쟁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의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블록체인·NFT·P2E·메타버스·웹3 요소를 게임에 적용하기 전에 재밌는 게임을 먼저 만든 뒤 이같은 기술을 채택할 것을 강조했다. 무턱대고 신기술을 남용하기 보다 게임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고, 이후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도 늦지 않았다는 게임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블록체인 게임, 소득 낮은 아시아 신흥국에서 돈벌이 수단
한편 미국 온라인 매체 '옵서버(Observer)'는 블록체인 게임이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유행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적다고 예측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웹3 게임에 투자하는 홍콩의 벤처 캐피탈(VC) 기업 애니모카 브랜즈(Animoca Brands)의 공동 설립자 얏 시우(Yat Siu)는 "(아시아의) 대부분 거대 게임 기업들이 웹3과 NFT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아시아의 게이머들은 미국의 게이머보다 기꺼이 NFT와 P2E 게임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흔히 게임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상식과 달리 평균 가처분소득이 낮은 필리핀이나 중국 등 신흥국 게이머들이 웹3 게임을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매체는 블록체인 기반 게임 액시 인피니티(Axie Infinity)가 지난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동남아시아와 개발도상국, 특히 필리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집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 게임을 하게 됐다는 분석했다. 실제로 이 게임은 지난 2021년부터 8개월간 월간 활성 이용자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이 중 필리핀이 40%를 차지했다. 또 일부 게이머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벌어들였지만, NFT 선구매 정책으로 빚을 지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 게임조사 기업인 뉴주(New Zoo) 소속 분석가 톰 웨지맨(Tom Wejiman)은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웹3이 무엇인지, 또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며 "게임은 오락을 위한 것으로, 개발자들은 게임 플레이 경험 자체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게임이 소득 수준이 낮은 게이머들의 투기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글로벌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게임 자체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오락용 게임이 생계를 위한 투자 내지는 투기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대거 블록체인 게임 선봬
이같은 비판적 분위기 속에서도 국내 게임사들은 이번 GDC에서 블록체인 게임을 대거 선보이며 재도약에 나선다. 대표적으로는 위믹스 상장 폐지로 홍역을 치뤘던 위메이드다. 이 회사는 행사장 내 단독 부스를 마련해 'Life is Game; Blockchain Transformation'을 주제로 게임파이 등 블록체인 서비스를 갖춘 '위믹스 플레이'를 공개한다. 혹독했던 아픔을 딛고 온보딩 게임 수를 늘려가며 영향력 있는 위믹스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밖에도 국내 게임 기업들은 GDC에서 각 사가 구축한 블록체인 생태계를 중심으로 혁신 게임 기술을 자랑한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를 바탕으로 설계한 NFT 중심 블록체인 생태계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선보인다. 퀘스트나 사냥을 수행하면 NFT를 획득 및 거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넷마블은 실제 지적도를 바탕으로 한 '모두의마블2:메타월드'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게임은 넷마블의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마브렉스(MBX)'에 온보딩될 예정이다. 컴투스도 자사 블록체인 플랫폼 '엑스플라(XPLA)'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부터 열리는 GDC 이후에도 오는 6월 미국에서 E3, 9월 도쿄게임쇼, 11월 부산 지스타 등 대면 게임행사가 줄지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