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VR 전쟁···‘무게·배터리·가격’이 관건
AR·VR 기기, 게임에서 산업용으로도 진출 예상···2026년 시장규모 167억달러 삼성, '갤럭시 글래스' 상표 출원하며 XR 시장 출사표 애플, 올해 6월 MR 헤드셋 출시···팀 쿡 강한 의지 반영 메타·삼성·애플, 무게·배터리·가격 문제 해결해야 시장 주도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달 국내 특허청에 '갤럭시 글래스(Galaxy Glasses)'와 '갤럭시 링(Galaxy Ring)' 상표를 출원하며 확장현실(XR) 기기 시장 진입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상표 출원이 제품 출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XR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쟁사인 애플도 올해 6월 WWDC 혹은 9월 아이폰 출시 행사에서 MR(혼합현실) 헤드셋 '리얼리티 프로(Reality Pro)'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VR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메타(Meta), 삼성, 애플 등이 치열한 접전을 펼칠 전망이다.
VR·AR 시장에 대한 관심이 팬데믹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며 시장 성장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져왔지만, 세계 IT 기기 트렌드를 쥐락펴락하는 삼성·애플·메타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IT 시장분석 기관인 한국IDC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AR·VR 기술 지출은 연평균 성장률 42.4%를 기록하며 오는 2026년에는 167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IDC 소속 연구원 릴리 판(Lily Phan)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고객·지원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몰입형 경험에 대한 조직의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관련 기술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용도 수준인 현재에서 나아가 산업용으로도 진출, AR·VR 기기가 노트북·스마트폰을 잇는 혁신 IT 제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현재 출시된 VR 기기들이 오래 사용하기엔 무겁고, 배터리가 빨리 닳고, 가격이 비싸다는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하는 업체가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퀼컴·구글과 협력하는 삼성전자···'XR 폼팩터'로 승부
삼성전자는 지난달 '갤럭시 글래스' 상표권을 출원하며 XR 기기 출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제품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안경 형태의 XR 기기로 예상된다. 갤럭시 스마트폰 등과도 연결돼 갤럭시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다. 앞서 삼성은 차세대 XR 사업을 위해 퀼컴, 구글과 삼각편대를 구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퀼컴의 칩셋,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XR 폼팩터를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퀼컴이 스냅드래곤 XR2 2세대 프로세서를 출시할 것으로 전해지며 이것이 삼성의 XR 기기에 장착될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앞서 삼성은 지난 2014년 지금은 메타에 인수된 VR 기업 오큘러스와 협력해 제작한 가상현실 체험 기기 '삼성 기어 VR'를 출시한 바 있지만 이후 해당 기기 앱 지원을 차츰 중단하는 등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올해는 퀼컴·구글의 역량을 결집하며 XR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각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삼성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7년 숙원, 애플, MR헤드셋, 팀 쿡 CEO 주도로 6월 공개
애플이 연내 MR 헤드셋을 내놓는 결단에는 현재 애플 CEO인 팀 쿡의 입김이 셌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괴적 혁신'으로 현재의 애플을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처럼,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디바이스를 내놓기 위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플의 산업디자인 팀은 기술 미숙을 이유로 MR 헤드셋 출시를 수년간 반대해왔다. '충분히' 얇고 가벼운 헤드셋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다. 출시가 기한 없이 연기되자 팀 쿡은 제품의 조기 출시를 압박하며 내부 분쟁을 불식시켰다.
팀 쿡이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회사의 MR 헤드셋 개발이 벌써 7년째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이 메타는 VR 헤드셋 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한 이래 다양한 VR 기기를 출시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워왔다. MR 기기를 '제2의 아이폰'으로 낙점한 애플로서는 출시가 무기한 연기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 오는 6월 공개될 애플의 MR 헤드셋은 애플의 혁신적 이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가격은 3000달러 수준으로 회사는 출시 첫 해 판매량을 100만대로 예상했다. 회사의 MR 헤드셋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면 이 기기는 AR과 VR 기능 모두 갖췄으며 ▲고해상도 4K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 ▲10개 이상의 카메라 ▲빠르게 그래픽을 처리하는 M2 프로세서 ▲가상과 현실 배경을 모두 보여주는 패스스루(PassThrough) 기능을 탑재했다.
무게·배터리·가격이 관건···승자는 누구?
메타, 애플에 이어 삼성도 VR 시장에 뛰어들며 누가 승기를 잡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출시하는 기기가 기존보다 가볍고 착용하기 편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배터리 수명과 합리적인 가격 설정도 사업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예컨대 메타가 지난해 10월 야심차게 출시한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 프로'는 여태 나온 회사의 VR 기기 중 최고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무게가 772g에 달한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장시간 착용 시 사용자에게 신체적 부담을 준다면 대중화되기 어렵다. 현재 대중이 감당할 수 있는 기기 무게는 500g 이하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 역량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지난달 MWC에서 공개된 샤오미의 무선 AR 글래스는 가볍고 뛰어난 기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출시 일정을 정해두지 않은 프로토타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글래스를 회사 허락 아래 비공개로 독점 사용해본 한 IT 전문가는 XDA 커뮤니티를 통해 "기술적으로 잘 작동되는 이 제품이 왜 프로토타입인지를 굳이 추측하자면, 배터리 수명과 비용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AR 글래스를 30분 사용하자 배터리를 다시 충전해야 했다.
일반 소비자가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점도 VR 기기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앞서 메타가 공개한 퀘스트 프로 제품은 1499달러로 무게와 함께 비싼 가격이 줄곧 지적됐다. 이달 초 메타가 999달러까지 낮추는 강수를 뒀음에도,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이같은 기술·가격 장벽이 단단한 현실에서 삼성과 애플이 개선된 성능, 긴 배터리 수명, 합리적인 가격 조건을 충족한 혁신 VR 기기를 선보일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