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사태의 두 가지 함의…코인 부활, 실리콘밸리의 ‘부도덕’

미 연준 금리인상 행진 ‘멈칫’, “덕분에 암호화폐 시장 활기” “금리 인상으로 그간 침체 국면”, 그러나 “좀더 두고봐야” 신중론도 테크 스타트업들, SVB를 ‘개인금고’ 취급, SVB도 부실대출 남발

2023-03-15     전윤미 기자
(사진=뉴욕타임즈)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SVB(실리콘밸리은행) 폐쇄로 암호화폐 시장이 오히려 되살아날 것인가. SVB 뱅크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 일각에선 이런 기대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SVB를 그 동안 마치 개인금고처럼 여겨온 현지 스타트업과 VC(벤처캐피털)업계의 도덕적 해이도 새삼 부각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SVB붕괴에 따라 미 연방준비위원회(연준)가 본래 예정되었더 빅 스텝 수준의 금리 인상 방침을 유보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투자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연준은 지난 1년 동안 빅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거듭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긴축 정책을 펼쳐왔다. 그 바람에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보다는 예금 등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선호하는 경향이 날로 심해졌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위험자산의 매력이 떨어지고, 암화화폐 시장은 침체될 수 밖에 없었다.

진작부터 현지의 코인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정책이 암호화폐 시장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곤 했다.

“SVB사태, 암호화폐 시장 기사회생의 ‘약’”

암호화폐 업체인 코인쉐어즈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결국엔 뭔가 큰 (금융)사고가 터질 것으로 예상해왔다”면서 “그런 불길한 예감이 이번 SVB사태로 불거졌고, 그게 오히려 암화화폐 시장엔 기사회생의 ‘약’이 된 셈”이라고 디크립트에 밝히기도 했다.

결국 지난번 실버게이트에 이어 이번 SVB사태가 터지면서 연준은 현재 수준의 금리인 4.50~4.75%에서 선뜻 ‘나아갈’ 의향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즈, WSJ를 비롯한 현지 크고 작은 외신들도 “은행권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지금, 연준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낮아졌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연준의 금리정책을 실시간 점검하는 ‘CME FedWatch 툴’에 따르면 연준이 다음 주 회의에서 금리를 0.5% 인상할 가능성은 지난 주의 40%에서 14일 현재 0%로 떨어졌다. 대신에 연준이 금리 인상을 보류할 확률은 0%에서 34%로 치솟았다. 사실상 당분간은 금리 인상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연준이 향후 금리 인상 기조를 완화할 것이란 기대감 덕분에 한때 추락했던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월요일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에 13일 코인제코 자료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13.5% 급등한 2만4280달러, 이더리움은 8.1% 상승한 1680달러를 약간 넘어섰다. 다른 암호화폐들도 대체로 상승 기조를 이어갔다.

(사진=셔터스톡)

일부 ‘금리인상 또 이어질 것’ 의견도

그러나 반대되는 시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지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려 “그러나 인플레이션 수치가 예상보다 높아질 경우 연준이 다음 주 정책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2%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금리가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신호를 이날 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리인상 속도가 늦춰지거나, 심지어는 인하의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제임스 나이틀리 ING은행 수석국제경제학자는 “연준의 입장이 신중하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 금융계의 악화된 상황에 금리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 판단되면, 연준은 매우 빠르게 입장과 관점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아마도 현재이 금리 수준이 (더 이상 인상이 없이) 잠재적으로 정점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연준이 경기 긴축보다 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통화 기조 변화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본다. 연준과 정부가 SVB붕괴에 따른 충격파를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연준을 비롯한 금융정책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것이 오히려 암호화폐 시장에는 매우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은행 시스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날로 커지면서, 암호화폐 시장이 그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사진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 이미지. (사진=디크립트)

‘암호화폐 겨울’ 해빙 여부, 두고봐야 할 듯

물론 가상자산 산업 전반에 걸친 규제 역풍을 고려할 때 ‘암호화폐 겨울’이 ‘해빙’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미국에선 지난주 뉴욕 검찰이 암호화폐 거래소 쿠코인을 대상으로 한 수사를 진행하는 등 규제의 끈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게다가 역시 암호화폐 시장 전문인 실버게이트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등이 차례로 붕괴되면서,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금융계와 기업들의 의구심이 커진 것도 악재라면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더욱이 다음 주 이후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현상이 이어진다면, 연준이 다시 금리인상 카드를 내밀 수 있어, 향후 시장 상황은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테크 스타트업, VC에 ‘따가운 시선’

SVB붕괴 이후 실리콘밸리의 테크 스타트업들과 VC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많은 기술 스타트업들이 실리콘 밸리 은행과 거래를 했는데, 그 이유는 실리콘 밸리 은행이 ‘위험한 창업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미국의 모든 벤처 지원 기술이나, 생명 과학기업의 거의 절반에게 대출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2,500개 이상의 벤처 캐피털 회사와도 주거래 은행으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많은 테크 스타트업들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지난 10일자 뉴욕타임즈는 현지 벤처기업 전문가를 인용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약 절반이 실리콘밸리 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또 SVB 등 은행으로부터 오로지 자금을 융통할 목적의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곤 했다. ‘재보다 잿밥’인 격이다.

SVB의 영업 행태도 매우 자의적이란 비판이다. 테크 스타트업의 임원들에게 SVB는 무분별한 대출을 일삼았다. 적잖은 VC나 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일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나 SVB만큼은 이들에게 넉넉한 자금을 공급했다. 심지어는 일부 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창업자금 명목으로 파격적인 저금리 대출로 확보한 자금으로 수백만 달러짜리 주택을 사들이곤 했다.

창업자금으로 고급 주택 구입도 다수

실제로 뉴욕타임즈는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 업체인 ‘벤드르’의 투자자이자 부사장인 오스틴 피터 스미스는 지난주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해준 실리콘밸리 은행에 ‘감사의 뜻’을 트위터에 올렸다.”며 실명을 거론하며 이런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스미스는 “SVB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오늘 이 집에 산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라며 “고맙게도 SVB가 (대출 신청한지) 1주일도 안 돼 승인했다”고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또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는 SVB가 자신의 샌프란시스코 자택을 위해 무려 2.2%의 파격적인 저금리로 400만 달러의 대출을 해주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반면에 “다른 은행들은 3% 이상의 금리를 제시하더라”고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출받은 창업자금을 투자는커녕, 은행 적금을 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부동산 소프트웨어 회사 캐노피 애널리틱스(Canopy Analytics)의 설립자인 서니 주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결코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창업 자금을 SVB의 당좌 계좌에 보관했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 주말에 잠깐 인출이 중단되면서, 이런 편법으로 SVB에 돈을 맡긴 기업과 자금주들이 특히 곤욕을 치른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도’ 미 정부가 모든 예금을 보장해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캐노피 애널리틱스는 수백만 달러의 당좌계좌의 돈을 회수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주들, 여전히 자신을 ‘월급쟁이’로 착각

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나 종사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SVB와 거래를 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은 창업 후 자리를 잡은 다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신생 기업으로 인식하며, 각종 규제나 제도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 SVB 뱅크런 국면에서 잠시 예금 인출이 중단되면서 보여준 일부 스타크업 경영자들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인출 중단으로 적잖은 스타트업 창업주들은 자신이 기업주가 아니라, 여전히 월급을 떼일까봐 무서워하는 ‘종업원’과 같은 태도를 보이며, ‘우는 소리’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쇄도하면서, 지금껏 묻혀있던 ‘실리콘밸리 신화’의 어두운 이면이 노출되었다는 평가다. 그 때문에 테크 스타트업은 물론, 빅테크들까지 아우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향후 자신들의 운명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After Bank Debacle, Silicon Valley Reckons With Its Image”(은행 붕괴 후, 실리콘 밸리는 이미지 관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라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