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오프’

2022-09-28     박경만 주필

영화 ‘페이스오프’는 한물 간 버전의 스토리라고나 할까. 적어도 기술적으로 보면 그렇다. 물론 명배우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명연기만은 여전히 선굵은 서스펜스로 기억된다. 선과 악을 뒤집고픈 욕망에, 얼굴을 떼어내 뒤바꾸는 시나리오는 제법 신선했다. 허나 이제 와선 아날로그식 플롯으로 추억할 법하다. 지금은 물리적 성형술을 뛰어넘는,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며 혼재하는 합성영상의 시대다. 가상과 실제를 헷갈리게 하는 딥페이크와 페이스 스왑의 세상이 된 것이다.

합성영상 기술은 허상 아닌 가상이 실존을 대체하며, 시․공간을 어지럽게 합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치 나노기술과 유전공학이 접목된 합성생물학이 부품 갈아끼우듯,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는 것과도 같다. 아예 인간의 시선이 닿는 모든 피사체를 새롭게 조작하는 경지가 되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아나운서를 출연시키는 정도는 그저 애교 수준이다. 사진 속의 인물을 3D형상의 실물에 가깝게 재연하는 것도 예사다. 거꾸로 3D 입체 동영상의 인물을 평면의 이미지로 환원시키는 기술도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소위 ‘디퍼렌셔블 렌더러’(Differentiable Renderer’)니, ‘인버스 렌더링’(Inverse Rendering)이니 하는 것들이다.

아무튼 놀랍다. ‘Differentiable Renderer’를 활용한 3차원 얼굴 모형인 3DMM의 파라미터를 추정하는 기술은 특히 그러하다. 어떤 불투명한 대상이든 선과 면이 구성해내는 미세한 흔적과 음영을 미분(微分)하여 투명한 실체로 만들어내곤 한다. 역으로 3D실체로부터 2D이미지로 환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오프라인의 관성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3차원의 세계에선 컴퓨터 화면에 그림과 영상으로 온갖 스릴과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들, 기계 전원을 끄는 순간 당연히 스러져버리는 허망한 잔상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합성영상은 어제까지의 그런 진실을 뒤집어버렸다. 잔상을 뚜렷한 실상으로 구현하며, 3차원의 진실 아닌, ‘3플러스 알파’ 차원의 진리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과 사물을 영상으로 재가공하는 기법은 그 뿐 아니다. 머신러닝과 GAN 기반의 기술도 있고, 신경망 기술을 활용한 NeRF(Neural Radiance Fields)도 많이 쓰인다. 더욱이 ‘NeRF’는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다수의 영상, 즉 멀티뷰(Multiview)로부터 기하학적 정보와 텍스처 정보를 복원하여 재가공하는게 특기다. 그 과정에서 화가와 조각가가 힘을 합친 듯한 재주를 부린다. 딥러닝으로 3D공간의 색과 밀도를 스스로 학습하고, 그로부터 2D 이미지를 그려낸 다음, 다시 새로운 가상의 3D공간을 복원해내는 것이다. 물체의 색상이나 각도에 따른 음영과 빛의 굴절, 반사를 미세하게 분석해낸다. 그리곤 실물과 흡사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가히 실재를 가상으로 고스란히 옮겨오는, 마법이자 미학이다.

이 정도면 트랜스휴머니즘이 따로 없다. 실물과 가상의 합성을 통해, 기계와 인간성이 합성된 또 하나의 거대한 테크니컬 아우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를 범죄에 악용하는 부류도 창궐하며, 실시간으로 수많은 범죄용 생성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페이스 스왑을 비롯해 페이스 쉬프터나, 뉴럴 텍스춰, 페이스투페이스 등등 오만가지 수법이 동원된다. 그래서 이에 맞선 포렌식 기술이나, 그들 수법의 허를 찌르는 기법도 발달하고 있다. 그렇게 ‘뛰는 놈’과 ‘나는 놈’ 간의 엎치락뒤치락은 합성영상 세계에서도 가열차다. 그런 합성영상 기술은 앞으로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마침내는 현실의 유한함을 뛰어넘어 ‘영원한 실재’를 꿈꾸는 ‘호모데우스’의 경지까지 넘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럴수록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있다. 제 아무리 빼어난 재주로 딥페이킹할지언정, 대상이 된 실체는 변치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페이스오프’는 선과 악의 ‘두 얼굴’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인간 이중성에 대한 시니컬한 묘사가 무게감있게 전해진다. 변치않아야 할 실체에 대한 소박한 규명이라고 할까. 그 속엔 허상이 아닌,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실존의 메타포가 숨어있음직 하다. 그러면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합성영상 기술은 무엇을 좇을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