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블룸버그, ‘한국 외환위기 우려’ 보도의 맥락은?
美 자이언트 스텝, 킹 달러로,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의 ‘원’화 폭락 대중국 적자 등 무역수지 악화도 한몫, “한국경제 둘러싼 삼각파도” 전문가들 “한국, 영국, 일본 3개국, 환율폭등 불구, 금리인상 머뭇거려” 영국․일본은 재정부채 부담, 반면에 한국은 가계부채로 서민 부담 커 “한국, 미국과 금리격차 극복하려면 금리인상 불가피…진퇴양난 고민”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블룸버그 통신’이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2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는 “아시아 각국이 환율 폭등으로 부심하는 가운데, 만약의 경우 한국과 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 가능성 여부를 떠나 ‘IT강국’으로 불리던 한국경제는 분명 위기를 맞고 있다.
ICT와 하이테크 분야의 중국 수출이 위축되고, 전체 무역적자가 누적되는데다, 달러 대비 환율은 며칠째 장중 1,430원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미 연준의 자인어트 스텝이 거듭되고 있으나, 한국은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선뜻 올리지 못해 양국 간 금리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시중에는 ‘달러 사재기’ 조짐이 보이고, 자본시장에선 ‘원화’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라고 걱정한다.
마침 한국 시간으로 26일 오후 영국 파운드화의 달러 대비 환율이 사상 최저치 5%가량이나 떨어졌다는 급보가 국내에 전해졌다. 그 바람에 “영국도 외환위기에 빠져드는게 아니냐”는 예상까지 겹치며, 국내 증시와 산업계의 위기감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블룸버그 통신은 “아시아 각국이 달러 환율을 방어하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Asia currencies struggle against greenback)”면서 특히 ‘1997년의 외환위기’가 아시아에 닥칠 수도 있다는 월가의 전망을 머릿기사로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도 촤근 며칠 동안 달러당 144엔, 중국 위안화는 7.2위안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에 영국도 26일 한때 1파운드당 1달러 수준으로까지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일부 외신에선 한국과 일본, 영국 등 3개국을 나란히 거론하며 “유난히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사례로 들기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영국은 극우에 가까운 보수라고 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1972년 이후 가장 급진적인 감세정책과 대규모 차입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고 파운드화 하락을 촉발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또 재무장관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감세 외에도)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말한 직후에는 1파운드당 1.0350달러로 사상 최저치인 5% 가까이 폭락한 뒤 1.07달러 이상으로 간신히 회복되었다.
문제는 한국의 원화는 다른 주요국들보다 빠른 속도로 달러당 환율이 오르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반복되는 자이언트 스텝으로 인한 금리 격차, 그럼에도 금리를 선뜻 올릴 수 없게 하는 가계부채, 대중국 수출 부진에 의한 무역적자의 누적 등이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보니 빠르면 다음 달엔 1,500원선을 돌파할 것이란 불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한국 원화의 두드러진 낙폭은 세계 금융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달러 지수(USDX)를 결정하는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6개국 통화는 물론, 중국 위안화, 홍콩 달러, 브라질 헤알이나 필리핀 페소, 인니 루피아, 인도 루피 등 이머징 통화에 비해서도 유독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USDX와 가장 강력히 연동(6개국 중 가장 큰 58% 반영)된 유로화의 경우도 그다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호주나 싱가폴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 그래서 “한국 특유의 요인 때문”이라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앞서 외신이 지목한 한국, 영국, 일본 등 환율 급등 3개국의 공통점은 미 연준의 속도에 맞춰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금리 격차가 생기고,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선호하는 시장 분위기로 인해 통화가치가 급락하며 달러 대비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이 금리를 선뜻 올리지 못하는 원인은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들 국가는 재정 부채, 즉 나라빚이 200% 안팎일 만큼 과중하다. 그렇다보니 금리를 올릴 경우 재정이 감당할 이자 부담이 매우 커진다.
그러나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과)는 “이들 국가는 정 안되면 금리를 올린 다음, 세금을 거둬서 (이자를) 갚아나가면 된다”며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는 심각하다”고 했다. 한국은 재정부채는 GDP대비 5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제는 가계부채가 심하다는게 문제다. 즉 “정부 대신 가계가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격”이라는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과거에도 언론 매체 인터뷰를 통해서 “훗날 큰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계가 아니라 정부가 빚을 지는게 안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가계 빚 대부분은 ‘코로나19’ 3년 간 크게 늘어난 것이므로, 애당초 정부가 서민과 소상공인들에게 충분한 재난지원금과 보조금을 지원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은 막대한 재정을 풀어서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획재정부 등 보수적인 관료와 보수정당, 언론 등에 의해 ‘재정적자’ 우려만 강조되었다”면서 “결국 주요국 중에서 재정부채는 가장 적은 반면, 기업과 국민이 대신 거액의 빚을 짊어지게 된 셈”이 된 것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그 때문에 선뜻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 때문이다.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경우 은행 대출로 집을 사거나, 전세를 든 사람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너무나 크게 되고, 자칫 대규모 연체와 기업 부도 사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미 연준이 연말까지 두 차례나 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져있다. 결국 금리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달러에 비해 통화 수익률도 떨어지고, 가치도 하락할 수 밖에 없으며, 투기자본들은 달러로 빠져나가고 있다.
반면에 미 연준의 빅스텝 행보 이후 최대한 버텨왔던 유럽중앙은행도 지난 7월 말 이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6개 USDX 연동 국가 중에서도 가장 적은, 달러 대비 1%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반해 원화는 같은 기간, 즉 두 달 사이에 무려 약 6% 이상 떨어졌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도 앞서 최 교수와 비슷한 시각의 우려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25일까지 엔화가 달러 대비 약 25% 하락했고, 유로화가 약 17%, 원화가 약 20% 하락했다. 주요 선진국 통화들과 비교한 달러가치 지수는 2021년 중반 이후 상승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원화 가치가 가장 크게 떨어지는 것은 치솟는 인플레에 대응해 미 연방준비제도가 급속하게 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사실상 궁지에 몰린 한국의 사정을 걱정하는 맥락도 들어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이 꼽는 중요한 원인은 4개월째 이어지는 큰 폭의 무역적자다. 이에 대해선 여러 원인 분석이 나오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대중국 수출의 둔화와, 이로 인한 사상 초유의 대중국 무역적자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 그리고 전체 무역흑자의 70% 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 차지한다. 그러나 무역협회와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의하면 최근 연속으로 중국과의 수교 이후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 적자가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석유가격이나 원자재값과는 또 다른 성격의 적자”라는 해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5월 이후부터 중국에 대한 수출이 급감하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4월 달까지는 대중국 무역 흑자가 65억 달러였다. 그러나 5월 들어서부터 수출이 빠르게 감소하다가, 8월 달에는 대중 무역수지가 33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100대 수출품목들의 수출이 40%나 급감하면서, 이같은 결과를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미국과 한국의 밀착을 경계한 중국의 의도적인 수입 중단 조치가 아니냐는 의심이다. 물론, 중국이 그 동안 자국산에 의한 수입 대체효과를 위한 노력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나 급격히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어떤 (정책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민연금과의 ‘스왑’을 결정한데 대해서도 불안한 시각을 보내는 전문가들이 적지않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에 쓰이는 달러를 한국은행 보유고로 대체한다는 얘기다. 대규모 해외 투자를 해온 국민연금이 이에 쓰이는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구입할 경우, 다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이에 한국은행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제공하여 해외 투자를 하게 함으로써 원화 가치를 안정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심지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연금은 주로 해외 장기 투자에 주력해온 만큼, 한은 보유 달러가 장기간 묶일 수 밖에 없다. 눈앞의 환율 1,400선을 방어하느라 결국 한국은행의 달러가 그만큼 해외로 장기간 유출되는 셈이다. 그래서 “윗돌 빼내어 아랫돌 괴는 식”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 자체가 위급할 때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에 비춰, 정책적 효과가 없는 조치”라는 지적도 따른다. 외환보유고의 현금화 속도만 떨어뜨린다는 비판이다.
그런 가운데 블룸버그 TV는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시안 페너의 말을 빌려 “아시아 전역의 통화가 압박을 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다시금 우려했다. 월가의 이른바 ‘공포 게이지’인 Cboe 변동성 지수도 금요일에 3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블룸버그는 “이들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특히 과거 한 차례 IMF위기를 겪었던 한국의 앞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여의도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는 의외로 많지 않고, 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문제없다’는 발언만 반복하고 있어 25년 전 ‘IMF 외환위기 전야’ 당시를 기억하게 한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