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3.0과 ‘자유’

2022-08-30     박경만 주필

웹(Web)3.0은 ‘중앙’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특정된 권위라고 할까. 규정된 존재나 가치로부터 탈피하여, ‘파편화된 개인’을 한껏 향유할 수 있는 자유의 조건이라 해도 좋다. 그래서 한 세대 앞선 웹2.0과는 선명한 획을 긋는다. 웹2.0에선 인터넷 상에 고정된 콘텐츠 위치를 알려주는 URI가 필수다. 그 속의 URL을 찾아 검색하고, 작동하는게 웹2.0의 기본이다. 허나 웹3.0은 그런 구태의연한 20세기 버전을 비웃기나 하듯, 네트워크의 이곳저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정보와 콘텐츠를 저장한다. 중앙 서버따윈 필요없다.

중앙 서버 없이 데이터가 전달되는 탈중앙화 구조는 URI의 테두리에서 안도해온 웹2.0의 상식으론 언뜻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웹3.0은 제2의 디지털시대를 촉진하는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혹자는 아직 그 정체가 아리송하다고 의심하지만, 그저 의심일 뿐이다. 이미 웹3.0은 20세기 전자시대의 2.0 버전인 인터넷을 유물로 만들면서, 3.0 버전의 ‘포스트인터넷’을 여는 문명의 이기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이 품고 있는 가치는 심상치않다. 곧 ‘개인’과 ‘자유’의 확장에 방점을 찌고 있어, 그 파괴력은 자못 미래를 선점하거나 독점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이 즈음 ‘자유’라는 단어가 이 정권의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유독 많이 소비되고 있다. 자유는 ‘개인’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끼칠 때 사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게 존 스튜어트 밀의 근원적 자유 개념이다. 그러나 이를 오독(誤讀)하면 오히려 부(不)자유를 초래하고 만다. 제러미 밴담의 말을 옮기면 ‘사전에 합당한 구성 요건을 갖춘 증거(preappointed evidence)’가 자유의 조건이다. 공평한 분배의 정의나, 타인에게 설득당할 수 있는 자유, 물질이나 가치를 타인과 공의롭게 향유하기 위해 나의 자유를 그와 공유할 자유가 곧 ‘사전에 합의된 합당한 증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량하는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자유 또한 그 ‘구성 요건을 갖춘 증거’라고 하겠다.

‘웹3.0의 자유’ 역시 그런 ‘증거’들을 괄호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웹3.0 치하에선 자칫 ‘증거’가 없는 부자유가 한껏 발호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스스로 토큰을 발행하는 ‘토큰 이코노미’가 가능해서, 사용자들로부터 자유롭게 재원을 마련해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는 또한 토큰으로 서비스를 살 수 있어, 양측 모두가 구애받지 않고 한껏 효용과 수익을 만끽할 수도 있다. 여기서 문제는 자유의 구성 요건이다. 기업이나 개인의 행동이 공공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거나, 그럴 위험성이 분명할 때는 도덕이나 법률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한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 자유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타인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해치는 경우를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곧 밴담이 말한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다행한 것은 웹3.0은 절대 권위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사용자의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은 더 이상 소수의 독점 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며, 사용자가 자신의 소유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또한 URI가 아닌, 분산식별자를 이용하여 인증기관의 개입 없이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에 자기주권인증을 실행할 수 있다. 덕분에 지금처럼 알고리듬과 앱 프로그래밍, 플랫폼을 독점한 소수의 기업이나 슈퍼스타에 사용자 정보가 종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긴 미래 디지털혁명의 수준높은 키워드는 ‘큰 자유’다. 접속의 굴레, 곧 디스커넥토피아의 성벽을 탈출하여,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큰 자유’가 그것이다. 이는 ‘불공정한 공정’을 내건 자유지상주의나, 능력껏 승부를 가리자는 매몰찬 능력주의와는 다르다. 자기주권인증이나, 분산식별자가 그런 위선적 도그마로부터 디지털 대중을 해방시킬 작은 불씨라도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그렇다면 ‘토큰 이코노미’가 되었든, 탈중앙화가 되었든 웹3.0이 수행해야 할 목표는 분명하다. 네트워크와 코드, 프로토콜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공유되며, 문화적, 지적, 과학적 작업과 정보망에 누구든 손쉽게 접속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의 언어적 도구나, 관계 구축의 정서적 도구, 사유의 도구가 자본과 생산의 원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중은 우매한 대중이 아닌, 집단지성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인간소외가 아닌, 500여 년을 격한 제2의 계몽시대의 개막이다. 과연 웹3.0은 그 모티브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디지털 계몽시대를 여는 자유의 증거가 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