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아메리칸’의 부활

2022-08-17     박경만 주필

미국은 역시 세계 최강의 독불장군인가. 미 의회가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CHIPS(Chips for America Act) 법’을 통과시키면서, 세계 각국이 주판알을 굴리느라 여념이 없다. 자국 내 기업과, 국경 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미국 정부가 지원이란 명분으로 ‘돈보따리’를 안긴다는 내용에, 우리 기업들도 일희일비하는 모양새다. 생각지도 않은 횡재수가 있을 것 같아 설레는가 하면, 행여 악재가 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전자가 주로 배터리3사라면, 후자는 아직은 내연기관 중심인 현대차인 듯 싶다.

한마디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의 부활이다. 수많은 조항들이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만 보자. 우선 배터리는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채굴되거나, 가공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 또 북미에서 생산되거나 조립된 부품이 50%를 넘어야 한다. 그런 기업과 제품에 대해서만 거액의 세금공제혜택을 준다. 반면에 ‘중국’의 흔적이 스며든 것들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법대로 하면 중국산 전기차나 배터리 등은 앞으로 미국땅엔 얼씬도 할 수 없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이제 미국에서 추방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공장을 둔 국내 기업들도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지 않는 한 혜택에서 제외된다. 그야말로 미국 중심의 ‘편먹기’인 셈이다.

뿐만 아니다. 반도체 제조업에도 천문학적 규모의 지원을 할 참이다. 장려금과 연구 투자비로 52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자국내 반도체 제조업체에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준다. 그야말로 미국 반도체 업계로선 ‘축복’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미국반도체협회(SIA)가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 공급망이 수십 년 동안 강화될 것”이라며 바이든과 의회 지도자들을 극찬했을까. 워싱턴 정가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이 단체는 “그 동안 아시아 등 경쟁국 정부들이 자국 기업들에게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주는 바람에 우리가 경쟁에 뒤처지게 된 것”이라고 남탓을 했다. 

그러나 SIA의 논리대로라면, 경쟁국을 압도하는 미국 정부의 지원과 보조금 역시 ‘반칙’이다. 따지고 보면 두 법안은 WTO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처사다. 물론 중국도 잘못한게 많다. ‘반도체 굴기’ 운운하며, 패권적 행태를 보인 것이 그렇고, 거만하게 ‘G2’를 호명하며 약탈적, 폭력적인 행보로 국제무역 생태계를 어지럽힌 점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미국의 극단적 자국중심주의가 정당화될 순 없다. 그 동안 WTO를 만들고,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심판관인양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곤 했던게 미국 아니던가. 그러다가 이번엔 스스로가 이를 깨버린 것이다. 

‘부정직’이 ‘정직’을 구축한다고 할까. 그레샴의 법칙을 좀 돌려서 말하면 그렇다. 부정직하고 불공정한 거래질서가, 정직하며 공평한 ‘룰’을 구축해버린 것이다. 무릇 건강한 시장경제는 인적, 물적 자본을 비롯한 모든 자원을 경쟁자와 동일 조건으로 준비하고, 축적하여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일방적인 외부경제 효과로 자국 기업을 유리하게 한다면, 경쟁이 아니라 강자의 ‘갑질’ 이상 이하도 아니다.

데이비드 리카도 이래 국제무역의 기본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넘치는 것을 나눠갖는 것이었다. 이번 미국의 결정은 그런 무역질서의 근본을 부정한 것이다. 하긴 봉건적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중국의 불공정한 처사는 그 동안 악명이 높았다. 그렇다고 같은 농도의 불공정으로 이에 맞선 미국 역시 온당치 않다. 우리 공정거래법에서도 자기 이외의 다른 거래처와의 거래를 막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아무리 국제관계에선 몰상식이 통한다고 하지만, 미․중 양국의 불공정 게임은 그 도를 넘고 있다. 그야말로 조폭이 자릿세 거두는 장터에서나 봄직한 ‘톨게이트 경제’의 풍경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영락없는 하도급 거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 내에 공장을 두지 않은 우리네 전기차나 반도체는 현지에서 팔아먹기 어렵게 생겼다. 그 바람에 국내에 공장을 둔 현대차와 배터리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는 기업만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자칫 나라 경제 전체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통째로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그에 정부와 업계도 뒤늦게 ‘뒷북’을 치고 나섰다. 미 하원에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혜택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의견서를 전달했고, 한․미 FTA를 꺼내들며 ‘예외’를 호소했다. 그게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참으로 강대국의 갑질에 속수무책인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