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2022-08-03     김건주 전 서울신문 제작국장·현 서강출판포럼 회장

구름개는 ‘구름무늬의 개가 낀다’는 말에서 유래한 경기도 양평의 조그만 마을 이름이다. 운포(雲浦)라고도 불린다. 구름개 앞에는 샛강이 있었고 샛강 건너엔 꽤나 큰 섬이 있다. 유년엔 그저 ‘섬’ 혹은 ‘섬말’이라고 불렀는데 성인이 되어서야 그 섬 이름이 ‘대하섬’이라는 걸 알았다.

섬을 가로질러 섬의 북쪽 강변은 물살도 세고 강폭도 넓어 갈수기라도 나룻배가 아니면 건널 수 없었다. 그곳 나루터의 이름이 한여울 나루터다. 마을 이름도 한여울이다. 어릴 적 학교가는 길은 그랬다. 집 → 구름개(雲浦) →(나룻배, 혹은 돌다리)→섬마을 → 한여울→(나룻배)→ 중학교….

팔당댐을 완공하기 전 중학교 1년간, 학교가는 길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집으로 가는 길도 역순으로 이곳을 지나야만 했다. 매일같이 통학하는데 왕복 너덧시간이 걸렸다. 실제 거리는 20여리 못 미쳤는데 나룻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삼십분은 걸렸던 것 같다. 앳(어린아이)티를 미처 벗어나지 못한 동급생들은 매일같이 이곳을 오고 갔다.

구름개와 섬을 끼고 휘~휘도는 샛강은 갈수기엔 돌다리로 건너 다녔다. 돌다리 아래엔 언제나 내가 흐르고 잉어, 피라지, 불거지 등 물고기와 칼조개, 피조개, 대합, 다슬기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모래톱 사이를 비집고 무수히 올라온 삘기(갈대순)와 지천으로 깔린 수초도 곤궁했던 시절의 배를 채워주는 식량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섬의 풍경은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섬말엔 땅콩농사 등 밭농사를 많이 지었고 섬을 가로지르는 신작로엔 달걀만한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다. 울창한 아름드리 숲도 곳곳에 펼쳐져 있고, 백모래로 이뤄진 지반위에서 자라는 초록풀밭도 깨끗하고 쾌적하여 소풍이나 놀이의 단골 공간이었다. 타원형의 섬 둘레를 에워싸고 백사장과 몽돌이 유유히 흘렀던 강물과 어울리니 물리(水理)에 익숙한 또래 아이들은 돌고래쇼를 하듯이 물놀이를 즐겼다, 다이빙으로 잠수를 해서 손으로 물고기며 조개를 잡아올리던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룻배를 건너야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은 당시에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도서벽지도 아닌 육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단발머리와 상구머리의 앳된 중1 아이들이 총총거리며 오갔던 다시 못 올 소중한 추억이다. 이젠 진갑을 넘겼으니 50년 전의 추억이다.

섬마을 수몰되고

나룻길 지워지고

구름갠 뻘도없네

천상의 선물처럼

오직 추억만이 생생하네

학교가는 길, 매일매일 지나야했던 구름개→섬마을→한여울로 이어지는 통학길은 중학교 1학년을 마치면서 막을 내렸다.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자 팔당댐이 완공된 것이다. 제법 컸던 섬은 댐을 막아 물이 차오르니 작은 섬이 되었고 섬을 둘러싼 수려한 풍광들도 모두 수몰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처구니 없게도, 아름답고 가슴설레던 일상이 물에 잠겨버렸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후 한 번도 못 가본 섬이다. 아니 수몰되어 작아진 이 섬은 어느 사이엔가 이름만 대면 누구든 알 수 있는 유명 연예인의 사유화된 섬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주인의 허가없이는 발을 디딜 수가 없다.

매타버스(metaverse) 열풍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도 분명 새로운 눈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현실세계에서의 안착을 벗어나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를 지향하는 세계가 아니던가. 인간은 추억하는 동물이다. 1년이란 짧은 추억, 그러나 너무도 선명하게 가슴 저리도록 생생한 “구름개→섬마을→한여울”의 아름다운 시절을 재현할 메타버스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