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와 ‘분산’의 소확행
에스토니아는 작지만 알토란 같은 나라다. 유럽 변방의 140만 인구가 화려하지도, 크게 기뻐할 것도 없는 ‘소확행’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나라의 국가적 데이터 공유 기반 ‘X-tee’에 시선이 간다. 원어는 ‘Data exchange layer’다. 어떤 기관이나 조직이든 방방곡곡에 흩어진 공공 데이터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돌아가며 열람할 수 있다. 모든 프로세스의 걸림돌인, 그 흔한 사일로(칸막이)를 원천 말소시킨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마냥 투명한 행정을 실현하면서, ‘데이터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선사한 셈이다. 그 이로움은 결국 시민들 몫이다보니, 이 역시 ‘소확행’의 조건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게 바로 ‘탈중앙화’다. 중개자 없이 회원들끼리 직접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회원 기관은 누구 허락받을 것도 없이, X-tee의 모든 데이터 서비스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정녕 ‘분산’(Defy)의 미덕이 고스란히 민주적 가치로 꽃피운 셈이다. 하기사 요즘은 분산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노파심이랄까, 애정에 가까운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DAO(분산자율조직)의 취약성을 두고 말이 많고, 클라우드 시대가 되다보니, 중앙서버에서 이탈한 엣지 보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클라우드 보안 기술이 나날이 첨단으로 치닫고 있다. 예를 들어 ‘보안 서비스 엣지’(SSE)도 그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애초 클라우드 원격 비대면 환경에서 사내망과 인터넷의 경계에 철조망을 치는 ‘경계 보안’은 외부에 뚫리기 쉬웠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SASE 내지 SSE다. 중앙서버가 아닌 사용자 근처의 클라우드 엣지에서 네트워크에 접속해 보안을 유지하는 ‘보안 엑세스 서비스 엣지’가 전자다. 요즘엔 한 발 더 나아가서 아예 네트워크 서비스를 생략하고, 바로 웹이나 클라우드나, 사내망의 보안을 유지하는 후자의 기술, 즉 SSE가 대세다. 그 때문에 이는 클라우드 비대면 시대, 최고의 보안관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렇다면, DAO에 대해 분명 말할 수 있다. 이는 다자간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합의된 선험적 구속력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이다. 공식적이고 투명한 모두의 지성 세계를 조화롭게 조합하는, 소위 ‘지적 화평’에 의해 각자의 노력과 자원을 조정하는 조직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이보다 더 이상적인 프로토 타입이 있을까. 이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비롯해 일상적 공간에서 오가는 온갖 계약이나 프로토콜, 정치와 경제․사회적 배분의 정의, 의사 결정 과정 등을 아우른다.
이 또한 분산의 미덕이다. 다시 반복하면 ‘분산학 개론’은 은행과 같은 독점적 매개자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제동이다. 중앙집권이나, 타율에 의한 과잉통제, 자율과 존재를 억제하는 권력행위에 대한 응당한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데이터 기밀이나 무결성에 대한 회의를 표하며, 우려하는 혹자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분산의 가치를 포기할 순 없다. 중앙에 독점된 진리는 살아있는 진리가 아니다. 권력으로 기획된 데이터는 자칫 진리 비슷한 단어들을 조잡하게, 혹은 우연하게 조합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엣지와 사용자의 자유보다는 모종의 권력행위에 의한 독단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분산의 기술적 완성도가 마냥 허술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컨대 SSE의 보안 무기인 ‘ZTNA’는 예외없이 모든 것을 의심부터 한다. 제로 트러스트의 자세로 네트워크의 모든 지점에서 명시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모든 것에게 암구호를 들이댄다. 세상 모든 걸 아예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철통 보안’이다. 앞서 에스토니아의 ‘X-tee’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회원 기관들에게 공개되는 만큼, 처음부터 철저한 데이터 기밀성을 보장하고 있다. 모든 네트워크 접속자들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높다.
물론 인간사가 그렇듯이, 호사다마격의 이탈도 있을 것이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보듯, 애초 취지와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정색하고 보면, ‘분산’은 표준화로 정화하기보단, 비균질적 삶들이 공존해야 한다는 ‘기특한’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존재하는 원리들에 대한 계몽된 의심을 바탕으로 관용과 개방을 허용한 것이다. 잘만 하면 에스토니아처럼 분산된 신뢰에 바탕을 둔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주의 전조일 수도 있다. 그 뿐이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