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과제…빅테크 반(反)경쟁에 대한 규제, 어디까지 왔나
유럽 DSA, GDPR, DMA 제정, 美 플랫폼 규제 5개 법안 입법 작업 국내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기술기업들 금융업 진출 관련 규제 필요”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최근 EU가 빅테크의 불법 내지 유해 콘텐츠를 규제, 단속하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제정했다. 이를 계기로 해외 각국이 빅테크의 불공정행위나 반 사회적 콘텐츠 등에 대한 규제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도 아마존, 구글, 애플, MS, 메타 등과 같은 빅테크 뿐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의 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규제책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선진 각국에선 이들 대형 디지털 플랫폼 기업, 혹은 빅테크에 대한 어떤 형태의 규제를 가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선 자본시장연구원이 ‘자본시장 포커스’를 통해 깊이있는 분석과 함께 실태를 전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에 따르면 우선 빅테크의 불공정행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조성훈 연구원은 “양면시장인 플랫폼에서 한쪽 면의 참여자인 소비자와 빅테크 간에 나타나는 불공정행위와 소비자 피해 문제”를 먼저 꼽았다. 그 다음으로 그는 “플랫폼의 다른 한쪽 면의 참여자인 이용업체와 플랫폼의 게이트키퍼인 빅테크 간에 발생하는 불공정행위의 문제”를 지적한 연구원은 “빅테크는 이용업체들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의 운영자이면서 게이트키퍼로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이용업체와 동일한 비즈니스에서 경쟁하는 기업인 경우”를 들었다. 이는 예를 들어온라인 쇼핑 오픈마켓과 같은 플랫폼에서 ‘갑-을 관계’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얘기다.
셋째는 플랫폼 사업자 간 또는 플랫폼 사업자와 타 기업 간 경쟁에서 발생한다. 즉, “경쟁우위 요소를 활용하여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한 뒤, 타 플랫폼 사업자 또는 기업의 영역으로 지배력을 확대할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원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리나 칸 위원장의 개념 규정을 소개했다. 즉 그는 “약탈적 가격 설정(predatory pricing))과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 대표적 빅테크인 아마존의 성장 전략의 핵심”이라며, “기존의 소비자 후생과 가격 중심의 사후적 규제체계에서는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경우 시장의 획정이 어렵고, 기업의 행위가 반경쟁적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후적 규제는 불공정행위가 발생한 후 처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이미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후에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이같은 점을 고려할 때 미국, EU 등이 취하고 있는 정책 방향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이유로 사후적 규제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에 대한 대응으로 기관별(entity-based) 규제, 사전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플랫폼의 크기 등을 기준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는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적으로 정해 놓고, 해당 사업자의 의무와 금지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21년 6월 플랫폼 기업 규제를 위한 5개의 패키지 법안이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이는 FTC와 법무부(DOJ)가 월간 활성 사용자ㆍ이용업체 수, 순매출 또는 시가총액 등의 규모 기준을 충족하면서 핵심 거래 파트너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지정 플랫폼(covered platform)으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이때 지정 플랫폼 사업자는 자사 우대(self-preferencing) 성격의 차별적 행위, 이해상충을 일으킬 만한 사업의 영위, 상업적 목적으로 소비자 정보를 수집ㆍ활용ㆍ공유하는 행위 등이 금지된다.
특히 EU 집행위원회가 2020년 12월에 발표한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 DMA)에서도 특정 규모 기준을 넘어서는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키퍼’로 추정하고, 시장의 경합성(contestability)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행위에 대한 의무 및 금지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빅테크 경쟁정책 방향의 두 번째 특징은 데이터 통제(data governance)에 관한 것으로 지정 플랫폼 또는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대형 플랫폼 사업자에 의한 데이터의 독점적 사용을 막는 것이다. 즉 “데이터가 플랫폼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플랫폼 사업자가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플랫폼 간 전환비용을 높여 독점적 지위를 강화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에 플랫폼 간 데이터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보장함으로써 플랫폼 사업자를 규율하고자 하는 것이다.
EU는 이미 2015년 ‘Revised Directive on Payment Services(PSD2)’와 2018년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GDPR)’을 통하여 데이터 주체로서 이용자 개인의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 권리를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용자의 요구가 있을 때 데이터 보관 기관은 제3자에게 활용도 높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전송해야 한다. 미국의 패키지 법안 중 ‘서비스 전환 활성화를 통한 경쟁과 호환성 증진 법률’도 지정 플랫폼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자 정보를 수집ㆍ활용ㆍ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정 플랫폼에 데이터 이동성(portability)과 호환성(interoperability)을 보장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같은 빅테크에 대한 규제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위한 고려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빅테크에 대한 일반적인 공정경쟁 규제가 아닌, 금융산업 진출과 관련된 효과적인 공정경쟁 규제가 마련되고 집행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규제를 담당하는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 문제다. 해외 다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 영업행위, 건전성 등과 같은 금융산업 고유의 사항에 대한 규제는 금융 당국(금융위원회)이 담당하고, 공정경쟁 규제는 경쟁 당국(공정거래위원회)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과 관련하여 금융소비자 보호, 영업행위, 건전성에 대해서는 ‘동일기능-동일규제’의 큰 틀에서 금융 당국이 규제를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공정경쟁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EU와 같이 규제 대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는 사전적ㆍ기관별 규제 방향을 취하게 될 경우, 그 규제를 어느 기관이 담당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애초 빅테크가 금융 비즈니스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잠재력은 기존 사업에서 형성ㆍ축적된 데이터를 금융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금융회사와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빅테크에 의한 데이터의 독점적 지배를 막는 것이 미국과 EU에서 나타나고 있는 규제의 핵심 축의 하나”라면서 “우리나라도 여기에 주목하여 데이터 통제 문제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성훈 연구원은 또 “금융산업의 경우 특정 금융상품ㆍ서비스 시장에서 빅테크(플랫폼 사업자)와 금융회사 간 직접적 경쟁의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빅테크와 금융회사 간 경쟁에서 아직까지는 빅테크가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존 사업자(incumbent)가 아니라 신규 진입자의 입장”이라며 “현재의 시장지배력이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시장지배 가능성에 대한 규제라는 점에서 공정경쟁 규제가 자칫 기존의 금융산업 구도를 고착화하거나, 빅테크 또는 핀테크가 가져올 수 있는 금융 혁신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