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 ‘암호화폐’로 美․서방 제재 돌파?

“‘디지털 루블’이나 랜섬웨어 등 제재 회피 암호화폐 도구 많아” 뉴욕타임즈․로이터 등 “다크웹, 디지털화폐 통해 물밑 거래 가능”

2022-02-24     이보영 기자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암호화폐로 이를 돌파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뉴욕타임즈, 로이터 통신 등에 의하면 러시아는 북한이 한때 그러했듯이, 필요한 경우 ‘히드라’와 같은 다크웹이나 해커들까지 동원해 암호화폐 밀거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뉴욕타임즈는 23일 ‘테크(기술)’ 섹션 헤드라인을 통해 “러시아가 미국 제재의 힘을 무력화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 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루블’이나, 랜섬웨어 등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암호화폐 도구가 많다”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크림반도 침공으로 역시 미국이 러시아 은행, 석유·가스 개발업체 등과의 거래를 금지했을 때도 국제 암호화폐 시장 등에서 디지털 자산이 폭증한 바 있다. 당시에도 러시아가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대규모 암호화폐 거래에 나선 것이라는 추즉이 돌았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물밑 거래도 감수하는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거래차단하기 위해 동원한 은행 송금 등을 암호화폐를 통해 우회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제재를 외교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각국의 준비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암호화폐가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효과적인 제재를 위해선 돈의 흐름을 꿰뚫으면서, 돈세탁 방지법 등을 통해 거래를 차단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폭발적인 디지털 화폐의 증가는 이런 차단막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즈는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의 구매와 판매를 촉진하는 거래소와 다른 플랫폼들은 은행만큼 고객을 추적하는데 능숙하지 않다”면서 “지난 10월 미 재무부는 암호화폐가 미국의 제재 프로그램에 점점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판단, 이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즈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러시아는 여러 암호화폐 관련 도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달러를 건드리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디지털 루블’로 불리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개발 중이다. 이는 달러로 환산하지 않고 거래를 하려는 나라들과 직접 거래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랜섬웨어와 같은 해킹 기술은 러시아 ‘배우’(해커)들이 디지털 화폐를 훔치고 제재로 손실된 수익을 벌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또 “본래 암호화폐 거래가 기반 블록체인에 기록돼 투명하게 공개되지만, 러시아에서 개발된 새로운 도구들은 이러한 거래의 기원을 가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탐지되지 않고 러시아 기업들과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앞서 이란과 북한은 서방 제재의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디지털 화폐를 사용한 경우다.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핵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기 위해 랜섬웨어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훔쳤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아예 지난 2020년 10월, ‘반(反)달러’ 전략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중앙은행 대표들이 모스크바의 한 신문에 “새로운 ‘디지털 루블’이 미국에 덜 의존하게 하고 제재에 더 잘 저항할 것이다. 러시아 기업들이 디지털 화폐로 거래할 의향이 있는 어떤 나라와도 국제 은행 시스템 밖에서 거래를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이번에도 러시아는 이란을 포함한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는 다른 나라들 중 ‘디지털 화폐’를 개발하고 있는 국가와 거래를 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계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최대 수출입 교역국인 중국은 이미 자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출시했다. 더욱이 중국의 시진핑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두고 “(우호적인 관계의) 한계는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제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야야 파누시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은 뉴욕타임즈에게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를 직접 교환하는 시스템 개발은 새로운 위험을 야기한다. 이들 국가(제재 대상인 국가)가 글로벌 뱅킹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이런 제도는 미국의 제재 효과를 크게 감속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월 초 유엔의 독자제재 감시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자금 조달을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또 컨설팅업체 엘리틱은 지난 5월 “이란이 제재로 인한 석유 판매 능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비트코인 채굴 수익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제재를 당하게 된 러시아 기업들은 심지어 랜섬웨어 공격까지 동원해 제재를 회피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즉 “(러시아) 해커들이 컴퓨터 네트워크에 침입해 피해자가 암호화폐로 비용을 지불할 때까지 마비시키고 디지털 정보를 차단할 것”이란 얘기다.

뉴욕타임즈는 “애초 랜섬웨어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중심에는 러시아가 있다”고 단언했다. 그 근거로 이 신문은 블록체인 추적업체 체인 어낼러시스(Chainanalysis)의 최근 보고서를 들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랜섬웨어 수익의 약 74%인 4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가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와 제휴했을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에게 돌아갔다.

뉴욕타임즈는 또 ‘체인 애널리시스’를 인용하여 그 실태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2020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다크웹 ‘히드라’를 통해서도 러시아에 불법 자금이 유입됐다. 이 경우 거래자들은 특정 지역 거래소를 통해서만 암호화폐를 청산할 수 있다는 플랫폼의 규칙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체인 애널리시스’의 킴 그라우어 체인분석 연구소장은 “히드라가 동유럽 전역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역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분명 국경을 넘나들며 불법 거래를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즈에 밝혔다.

그에 따르면 ‘히드라’는 거래의 출처를 감추고 있어 러시아 사용자들이 국경을 넘어 돈을 송금할 수 있는 잠재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히드라가 러시아가 제재를 성공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필요한 거래량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러나 불법적인 거래를 은폐할 만한 크고 합법적인 구조를 통해 은밀하게 돈세탁을 하는데엔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물론 미국 정부도 방관하지만은 않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암호화폐 활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는 새로운 국가 암호화폐 집행팀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면서 “이는 연방검찰이 암호화폐 사용자들의 불법 행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라고 밝혔다. 또 재무부 등도 별도의 ‘제재 준수 매뉴얼’을 발간해 암호화폐 기업이 반드시 허가된 관할구역의 고객이 아닌 사용자들을 걸러내도록 권고했다.

이른바 ‘체인 분석학’을 통해 이런 불법적인 암호화폐 거래를 차단할 수도 있다. 제재 대상이 된 기업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를 알리는 ‘거래 정보 알기’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체인 어낼러시스’는 민간 부문 고객 수를 2배로 늘렸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컴플라이언스 툴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암호화폐에 익숙한 사용자들 중엔 이런 차단막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커나 다크웹 등은 여전히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디지털 지갑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체임 어낼러시스의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