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3.0’과 분산의 미학

2021-12-29     박경만 주필

‘분산’(Defy)은 디지털 시대가 갖는 중요한 미덕 중 하나다. 이른바 디지털 문명은 ‘표준화’로 정화하기보단, 비균질적 삶들의 공존과, 건강한 의심을 바탕으로 한 분산과 개방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한해가 저무는 이 즈음 분산의 미학을 웹 세상에서 새삼 발굴해낼 수도 있다. 분산형 파일시스템으로 데이터의 탈중앙화를 도모하는 웹 프로토콜(IPFS)이 그것이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이는 ‘웹 3.0’의 신호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PFS는 기존 ‘https’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후자는 모든 파일과 정보가 중앙서버에 저장된다. 어떤 자료를 찾거나 웹에 접속할 때 해당 자료나 웹이 어디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만약 위치 주소를 잊어버리거나, 주소가 닫혀버리면 접속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중앙서버가 고장나버리면 답이 없다. 인터넷 접속은 물론, 온갖 사이버 공간의 행위가 정지되어 버린다. 게다가 트래픽이 몰리기라도 하면 속도도 느려지고, 해킹 위험도 크고, 그 탓에 보안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비용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탈(脫)중앙 내지 분산 개념의 웹 프로토콜 IPFS다. 이는 중앙서버가 없다. 파일을 하나의 서버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네트워크에 분산하여 보관한다. 파일을 찾을 때는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는 저장소에서 각기 조각난 개체를 가져와서 모으는 것이다. 이른바 자료 기반의 주소 지정 방식이다. 즉 자료가 보관된 주소를 굳이 알지 못해도 필요한 자료만 정확히 알면 찾을 수 있다. ‘https’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IPFS는 사용자 만능의 도구다. 찾고자 하는 자료만 알면 되고, 모든 파일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해시값만 네트워크에 요청하면 된다. 그러면 IPFS네트워크에서 동일한 해시값을 제공하게 되고, 사용자는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특성을 갖고 있어, 별도의 보안 대책이나 비용이 필요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애초 중앙서버가 없고 네트워크에 분산되어 있다보니, 외부 공격자가 모든 노드를 해킹하거나, 파일의 고유 해시값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시값은 한번 저장되면 변하지 않으며, 그래도 변경하고 싶으면 아예 버전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IPFS의 가장 상징적인 함의는 분산의 미덕이다. 이는 모든 독점적 지배와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어떤 중앙의 권력이 정보와 소통을 차단하려면, 수많은 노드와 네트워크를 모조리 통제해야만 하는데,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 은행과 같은 독점적 매개자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 수도 있고, 중앙집권이나, 과잉통제, 자율과 존재를 억제하는 권력행위에 저항하거나 응당한 질문도 가능하게 한다. ‘오징어 게임’의 시청을 막기 위해 아예 중앙서버를 통제해버리는 중국정부의 모습과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어쩌면 이는 웹2.0의 ‘www’(world wide web) 너머, ‘wwl’(world wide ledger)의 문법을 도입한 블록체인에서부터 그 전조를 볼 수 있었다. 지구촌 개개인의 컴퓨터마다 거래원장을 분산, 저장하고 있으면서, 블록체인에 참여한 만인이 실시간으로 분산된 원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런 경우는 애초 속일 수도 없고 해킹도 불가능하다. 그 덕분에 매개자 없이 참여자 모두가 분산된 거래원장을 공유하며, 감시와 승인 하에 안전한 거래를 이어가는 암호화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디파이, 곧 분산화는 날로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그리고 분산된 웹 프로토콜을 통해 탈권위와 탈중앙집권, 개방과 공존의 가치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는 보편의 개방형 웹 규약으로 표출되었고, ‘웹 3.0’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2022년을 새롭게 구상할 수도 있겠다. 곧 내년 임인년이야말로 분산된 신뢰에 바탕을 둔 ‘웹 3.0’ 전성기의 첫 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민주주의에 한발 더 다가가면 바랄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