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래된 미래 기술 ‘메타버스’

2021-11-10     박경만 주필

알고 보면 메타버스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아는 것들에 대한 재확인과 익숙한 경험의 재발견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확장된 경험일 뿐이다. 허공에 떠도는 소리를 원판에 붙들어매었던 에디슨이나 베를리너도 그랬고, 지구 반대편의 일과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했던 인터넷 또한 그렇다. 모두가 기존 질서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구성한 결과라고 하겠다. 메타버스 역시 모듈화된 현존의 기술을 재결합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메타버스의 ‘메타(Meta)’는 원래 ‘숨어있는 것’을 말함이다. 메타포나 메타언어 등이 그렇듯이 현상 너머(초월)의 숨어있거나, 심어져있는 말과 기의에 주목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초월적 우주’라기보단, ‘숨어있는 우주’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도 같다. 하긴 인간의 ‘기술’과 문명 자체가 자연(自然), 곧 ‘스스로 그러함’에 숨어있던 것을 애써 발굴한 결과 아니던가. 모든 기술은 그렇게 추체험의 기억들을 토대로 진화하고, 전승되었고, 디지털혁명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는 가상도 현실도 아닌 메타버스 기술을 낳았다.

그 바탕이 된 증강현실부터가 이미 구면이다. ‘현실’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로 등장한지 오래다. 라이프 로깅 역시 기왕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IoT기술의 결합 덕분에 가능해졌다. 현실의 일상적인 경험이나 정보를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면서 메타버스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미러링’은 이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수단으로 익숙해진 기술이다. 메타버스의 또 다른 네이밍이라 할 ‘세컨드라이프’ 기술도 오래되었다. 그런 것들이 엮이고 짜여져 경계를 허물며, 숨어있는 또 하나의 우주를 기획한 것이다.

애초 메타버스란 개념은 1990년대 등장했다가 2020년대에 다시 떠올랐다. 과거와는 달리, 몰입감과 실재감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XR기술과 결합하면서 차원을 높여갔다. 그 재료가 된 VR, AR, MR은 그 보다 앞서 이미지와 비디오 콘텐츠만 가능했던 2D미디어 환경의 결핍을 벗어나고자 생겨난 것이다. 기존 디바이스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도 촉매 역할을 했다. 수많은 컨텐츠나 플랫폼이 모바일UI와 UX에 맞춰 리(Re)디자인되었고,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로 전환하지 못한 PC기반 소셜 플랫폼들은 사라져갔다. 그러자 이번엔 3D가상 공간에 대중의 욕망이 투사되었다. 온라인게임 플랫폼이나 아바타 기반의 소셜 플랫폼들이 뜨면서, 모바일 SNS플랫폼을 제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메타버스가 등장하게 된 오랜 연혁들이다.

흥미로운건 새로 ‘메타 플랫폼’으로 이름 바꾼 페이스북의 비전도 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메타버스 책임자 맥신 윌리엄즈는 “(메타버스라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부터 배운 교훈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기왕의 정책과 비즈니스 전략, 시장과의 파트너십을 개발하면서 배운 경험들에 의존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피드백을 다짐한 것이다.

물론 ‘메타 세계’를 착안한 것은 가히 개벽적 사고임엔 분명하다. 마치 자연수 바깥에서 0을 찾고, 무리수와 허수를 발견한 것과도 같다. 숨어있었을 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착안하고 발견한 인간의 영민함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는 결코 기술 발달사에 있어 ‘돌연변이’가 아니라, 선험적 기억과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경험을 만든 결과다. 아랫돌을 딛고 작은 계단을 하나 올라선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