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범죄와 디지털 양극화
약자의 설움이라고 할까. 믿을 만 한 조사에 의하면 같은 사이버 공격이라도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그 피해가 더 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고, 피부색이나 인종과 같은 사회적 장벽에 갇힌 계층일수록, 온라인 경험치가 낮고 디지털 정보 접속이 부자유스럽다. 그러니 사이버 범죄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다. 정보가 곧 돈이요 힘이며 생존무기인 4차산업혁명 사회가 노출한, 또 하나의 우울한 자화상이라고 하겠다.
하긴 사이버 범죄 뿐일까. 기술과 정보격차에 의한 다양한 차별과 소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보사회를 이끄는 엘리뜨들과 디지털 빈민들 간의 양극화는 이제 탈(脫)아날로그 사회의 수구적 메타포로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곧 ‘체험’의 양극화이기도 하다. 지금은 개개인의 삶과 체험이 곧 하나의 시장이며, 생존 공간이다. 그런 ‘체험경제’가 가속화된 접속의 시대는 늘 우리에게 심란한 질문을 던져왔다. 연결과 접속이 인간의 경험을 어떻게 조직하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과 인간, 자연이 어떤 유기적 피드백을 구사할 것인가? 그런 물음 뒤에 놓인 디지털화된 차별은 그래서 더욱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현대 접속 시장에선 ‘체험’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가 문제다. 일찍이 정보사회를 예견한 사변가들은 정보에 대한 원만한 접속, 체험이 곧 ‘자유’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변화무쌍한 디지털기술에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직도 지구촌 인구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체험과의 거리는 곧 차별로 이어지고, 다시 비접속에 의한 부자유로 작동된다. 그래서 강조되어야 할 것이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이며, 누구나 그 권리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디지털 혁명의 동기는 공존과 공유다. 접속에 의한 공존 지향의 네트워크를 만인이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종래 시장경제와 같은 적대적 단절이 아닌, 상호의존적이며 공존지향의 평화로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조, 시스템에 입각한 효용의 공유가 그래서 미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접속의 열매를 한껏 만끽하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소외 된 다수 간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사이버 범죄 역시 그런 차별의 격차의 결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고령일수록, 흑인이나 유색인종 또는 여성일수록, 그리고 못 배우고 가난할수록 그 피해는 더욱 크다. 이들 사회적 약자들은 그 어떤 아날로그 범죄보다 흉악한 적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의 또 다른 조사도 이런 부조화스런 현실을 보여준다. 자신이 ‘화이트’(백인)라고 밝힌 응답자들은 “온라인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반면, 여성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흉악범들로 인해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토로한 것이다.
사이버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공포에 쩐 그들 대부분은 디지털 빈민들이다. 지금 추세라면 ‘그들만의 축복받은 땅 엘리시움의 시민’과, 나머지 지구촌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디지털 빈민 사이의 골은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정한 네트워크 게임의 룰만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기껏 일군 디지털 혁명은 ‘배제와 소외’의 시대로 쇠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로 무장한 배타적 ‘소유’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분쟁으로 디지털 사회는 날을 지샐 판이다. 걱정되는 미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