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칼럼) 머스크의 ‘성공원칙’에 던지는 질문

2021-09-12     박경만 주필

 

좀은 얄밉다고나 할까. 도지코인 띄우기, 휴머노이드 테슬라봇, 그리고 저궤도 우주비행까지, 일론 머스크의 행각은 약삭빠른 배팅의 달인같은 느낌이다. 치고 빠지기나 돈되는 것이면 앞뒤 가리지 않는 수법들도 그렇다.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누가 뭐라해도 그는 21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가이자 혁신가란 사실이다. 그가 자랑스레 내세운 ‘4가지 성공원칙’이란 것도 그걸 말해준다. 국내 한 대기업 연구소에선 이를 주제로 장문의 브리프까지 펴낼 정도로 공감을 얻고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소위 ‘제1원칙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다. 즉, 현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터리의 기본원리나 구조를 새삼 천착하며, 파격적인 가격으로 고성능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즉 ‘기본’에 충실하자는 얘기다. 두 번째 역시 첫 번째와 비슷하지만 시점(視點)이 좀 다르다. 다시 말해 ‘백지상태에서 다시 생각하기’(From scratch thinking)다. 기본으로 돌아가되, 원점에서 시작해 현상을 타파한 새로운 ‘제네시스’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증유의 기술혁신을 도모하는게 목표다.

세 번째는 ‘틀에서 벗어나기’(Out of the box thinking)다. 생산적 ‘일탈’이라고 할까. 현재 통용되는 진리나 상식을 깨고,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 차원이 다른 생산 결과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마차에서 우주선 시대로 일거에 비약하듯 하는게 네 번째인 ‘문샷씽킹’(Moon shot thinking)이다. 곧 점진적 성장에 만족하지 않는, 원샷의 ‘치밀한 한탕주의’다. 전기차에서 자율주행기술, 그리고 모빌리티 왕국을 겨냥하며, 우주통신과 우주개발까지 욕심내는 머스크의 행적이 바로 그 모습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4가지 모두가 새삼스런 것들이 아니다. 이미 인류 태고적 이래 숱한 선각자와 현학자들이 궁리해온 만유의 법칙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기본’이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애초 중세 데카르트나 갈릴레오가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것들도 결국은 ‘기본’을 발굴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들은 광학, 해부학, 수학의 기본을 ‘창시’한게 아니라 ‘발견’해냈고, 창세 원리의 기본을 몰각한 세상에 대해 ‘운동하는 것은 곧 정지한 것’이라며, 제네시스의 ‘원점’으로 돌아간 바람에 목숨까지 잃을 뻔 했다.

라이프니츠 역시 사물의 원리를 이진법적 기본과 원점에서 궁리했다. 그래서 오늘의 디지털혁명도 멀리는 그에게 기원을 두며,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 덕분에 로크처럼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규정하거나, 버클리나 흄처럼 인성(人性)의 원론부터 다시 획정하며 ‘백지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는’ 선구자들이 줄을 이었다. 훗날 4차원 세계를 형상화시킬 만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과 같은 이들이 그 행렬을 잇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머스크가 감히 문명 창조와 재발견자들 대열에 끼일 것이라곤 말 할 수 없다. 다만 그도 기본적인 원리를 밝혀내며 배터리 기술혁신을 이뤘고, ‘백지상태’의 원점에서 공장 설계방식을 재설계하며, 초대형 알루미늄 캐스팅 기법으로 전기차의 파격적 변신을 꾀하고는 있다. ‘틀을 깨는 사고’로 아예 배터리셀과 차체를 통합해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식으로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파격적으로 늘리기도 한다. 전기차에서 우주개발 프로젝트까지 4차산업혁명의 알파와 오메가를 가로지르는 성취를 통해 ‘문샷씽킹’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응용과 실무’ 차원의 신화는 만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일탈’에 앞장서며, 점진이 아닌 혁명적 전복을 서슴지 않고, 세상과 우주에 원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팀 쿡이나 제프 베조스, 래리 페이지,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 현상 이면의 본질, 관념이 아닌 경험의 새벽종을 울린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이들 기술주의자들이 이전 문명과는 단절된, 새로운 인류의 시작까지 알리며 미래를 선점할 수 있을까? 그 정도 질문은 머스크의 ‘4원칙’ 앞에서 가능할 것도 같다. 그들에게 좀 과분한 기대라고 여겨지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