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자체가 배타적 권리 가진 ‘발명자’”

호주연방법원 ‘인정’, 한국, EU, 미국 등 각국 특허청은 ‘NO!’ 호주 AI 이용 개발자 소송, 남아공은 행정결정 통해 ‘인정’

2021-08-19     김홍기 기자
사진은 2021국제인공지능대전의 전시장 모습.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AI(인공지능) 자체가 특허법상의 인격체인 ‘발명자’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호주 연방법원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시스템도 발명자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남아공 특허청도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인정해 새삼 이 문제가 AI시대의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앞서 지난해부터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AI도 인간처럼 배타적 권리를 가진 ‘발명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특허당국을 대상으로 잇달아 제기되었다.

한국지능정보화진흥원은 ‘인공지능법제 브리프’를 통해 이런 AI 특허권자 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례를 소개하고, 특히 ‘AI=발명자’를 인정한 호주연방법원의 법리적 의미를 자세하게 분석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진흥원이 소개한 ‘AI 발명자’ 소송의 주인공은 인공지능 시스템인 DABUS(Device for the Autonomous Bootstrapping of Unified Sentience)를 발명자로 내세워 특허출원을 제기한 호주의 탈러 박사라는 인물이다.

그는 DABUS가 프랙탈(fractal) 구조를 이용한 음식용기와, 높은 주의를 끄는 장치 및 방법을 ‘발명’했다면서 이같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세계 특허 제도 사상 인간이 아닌 기계를 ‘발명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탈러는 호주 특허청으로부터 “자연인만 발명자 지위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특허출원을 거부당하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했다. 또 한국과 영국, EU, 미국, 남아공 등에도 ‘DABUS’를 발명자로 기재하고, 특허출원을 하였으나 남아공만 제외하곤, 모두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되었다.

그 중 우리나라 특허청은 “DABUS를 발명자로 하는 특허출원에 대한 1차 심사 결과 자연인만이 발명자에 해당하므로 발명자를 수정하도록 요구했다”고 거부했다. 반면에 남아공 특허청은 DABUS가 발명한 것에 대해 DABUS에게 발명자 지위를 부여하고, 최근 자국 특허 공보에 이 사실을 게재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아공의 특허법은 발명자의 개념을 따로 정의하지 않고 있고, 실질적인 특허심사절차가 없기 때문에 DABUS를 발명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탈러 박사는 또 영국 특허청이 거부하자 이에 불복하여, 영국 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는 등 본격적인 소송전을 이어갔다. 영국 고등법원은 그러나 “영국 및 특허청의 관행상 기업의 발명자의 자격(inventorship)을 인정하지 않고, 자연인만을 발명자로 인정해 왔다”면서 “인공지능 시스템 자체가 재산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소유권을 자연인이나 기업에게 양도할 수도 없다”는 등의 이유로 특허출원 불가를 결정했다.

이처럼 ‘AI=발명자’ 소송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다소 엇갈리면서 이를 둔 법적 쟁점과 그 의미가 새삼 ‘AI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특히 이번 호주연방법원의 결정에 대해 법리적 해석과 함께 그것이 AI시대에 던지는 함의를 분석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진흥원은 “호주 연방법원의 판결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의 발명자 지위를 인정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남아프리카 특허청이 DABUS에게 발명자 지위를 인정한 것은 행정결정일 뿐”이라며 “호주의 판결이 법리 해석을 통해 인공지능의 발명자 자격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판결에 해당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기술의 발전을 고려한 유연한 발명자의 개념 정의, 발명자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의 분리 해석 등 특허법 해석틀 및 접근법 자체로도 유의미한 결정”이라고 보았다. 굳이 인간뿐 아니라, 기계도 얼마든지 준인격체적인 발명자로 분리 해석될 수 있는 계기라는 뜻이다.

진흥원이 소개한 호주연방법원 판결의 주요내용에서도 그런 변화와 유연성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해당 법원은 DABUS가 발명한 것이 과연 신규성, 진보성, 이용가능성 등 창작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먼저 따졌다. 이 대목에선 특허청 또한 창작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문제는 과연 인격체에 준하는 ‘발명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진흥원은 “호주 법원은 인공지능 발전을 고려할 때 좁은 관점으로 발명자 개념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준인격체임을 부정하는 등) 좁은 관점을 적용하는 경우 컴퓨터 공학 뿐 아니라 인공지능시스템의 결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그 외 다른 과학분야에서의 혁신을 저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법원은 인공지능의 기술현황, DABUS의 특징, 의약분야에서의 현황을 전반적으로 검토 한 후에 ‘인공지능의 발전을 고려할 때 발명자의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은 바람하지 않다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되었다. 법원은 또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발명자 지위를 부여하지 않으면, 발명이 특허를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영업비밀로 사용되어 논리적 오류 및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발명 과정에서의 인간 ‘자연인’의 자격과 지위다. 진흥원의 해석에 따르면 호주 법원은 “인공지능 시스템의 발명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을 ‘발견’한 자연인은 독창적인 발명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도 발명자의 지위가 부여되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발명자로 인정하는 경우 거짓 없는 현실의 반영, 확실성 등의 이점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호주 법원은 또 ‘발명자로서의 인공지능’의 요건을 적시했다. 현재 호주 특허법상엔 ‘인공지능 시스템이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발명자(inventor)란 단어 말미의 ‘or’ 및 ‘er’는 ‘agent’를 의미하는 접미사인데, ‘agent’에는 사람 또는 사물이 모두 포함되므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발명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진흥원 분석에 따르면 특히 호주법원은 장차 기술문명의 실체를 매우 진보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 하다. 즉 “기계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고, 인공지능 기계가 발명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합리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발명자’의 통상적 의미에 기계가 포함된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하였다”는 호주 특허청의 인식을 뒤집은 것이다.

‘AI=발명자’라는 판결을 내린 법관은 호주 특허청의 종래 접근법에 대해 “‘발명자’에 관한 수천 년에 이른 용례(사전상 정의)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자신에게 요구된다”고 하면서 “생각을 표현한 글은 사용된 상황 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므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수준 및 어의(語義)를 고려하여 발명자의 ‘자’(agent)의 범위를 유연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진흥원은 이런 호주법원의 판결에 대해 “인간이 사실상 창작한 것이라는 논란이 있긴 하나, 이미 그림, 음악,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창작 또는 그에 준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음이 입증된 사례”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의 창작에 대해, 인공지능의 주체성 결여로 인한 창작자로서의 지위 인정여부, 창작물 보호의 범위 및 수준, 창작물에 대한 권리자의 권리 보호 등에 관한 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호주 법원의 유연한 법 해석과 적용은 향후 인공지능에 의한 창작물 보호 관련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