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아닌 ‘인간’에 의한 네트워크
온 사회가 AI에 기반한 인프라와 생활환경으로 도배될 즈음엔 어떤 모양일까. 이 즈음 한 국책연구기관이 ‘완전한 AI사회’에 대해 그린 조감도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걱정스럽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꽤 멀리까지 연구 지평을 넓혀 2045년의 디지털 세상 이모저모를 그려보였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문화가 주는 온갖 편리함과 이로움도 크다. 그러나 정작 더 큰 기회비용이랄까, 심각한 문제가 있다. AI오작동이나, 류머티스 질환에서처럼 AI가 AI면역체계를 공격할 때 벌어지는 일이 그것이다. 대재앙이 따로 없다.
‘AI사회’는 교통, 통신, 전기 등 세상의 온갖 작동과 소통 원리가 AI로 점철되어있다. 모든 것이 자동화・무인화・원격화되어있고, 이진법적 사고 체계의 기계에 인간이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을 것이다. 연결과 접속 만능의 세상이다. 그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에서 오작동이나 오류로 인한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앞서 연구기관의 결론도 근심에 가득차있다. “그 피해가 순식간에 확산되지만 AI기술을 활용한 공격을 사람이 모니터링하고 방어하는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당 연구는 자칫 사이버 세계뿐 아니라, 물리적 세상의 모든 것이 뒤엉키고 마비되면서 카오스적 양상이 펼쳐진다고 했다. 하긴 카오스는 또 다른 궁극의 무한질서로 수렴되기라도 하지만, 미래 네트워크 파괴는 그것과도 다르다. 아예 인간세상의 작동원리가 망가지고, 디지털 문명의 존립 자체까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국가차원의 AI기반 공격・방어 기술이나, 재난 대응 지침, 혹은 AI 보안 전문가 육성과 비상 대응 훈련 따위의 대안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 긴가민가싶다.
정작 본질은 AI에 의한 재난이 아니다. 20여 년 후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야 할 ‘디지털 시티즌’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네 삶의 방식부터가 문제다. AI재난을 걱정하기 앞서, 우리를 허약한 AI면역체계의 하나로 파편화시키는 과잉접속사회의 모순을 더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유불급’의 상식 따윈 아랑곳없는 접속의 홍수, 누군가와 쉴새 없이 접속하면서도 실체로서 ‘타인’과는 늘 단절되고 차단되는 세상. 그런 괴이한 삶의 태도들은 어느 순간, 접속 네트워크가 파괴될 때 처절하게 파괴될 수 밖에 없다. 공동체를 그 기반에서부터 허물어뜨릴게 분명하다.
네트워크 파괴의 위험을 걱정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디지털 세상은 갈수록 인스턴트한 메시지로 채워지고 있다. 의미있는 소통 대신 정보과잉 속에서 오히려 정보와 지식을 소화시킬 위장은 날로 허약해지고 있다. 비대면의 낯모르는 디지털 군중 속의 외로움은 깊어가면서도, 네트워크상의 얼굴없는 타자들과 끊임없이 접속하고 있다. 진정한 고독을 느낄 겨를도 없고, 인문적 사유따윈 그저 사치스러울 뿐이다. 과잉접속으로 영혼없는 수다와 물질만능의 지껄임만 소비될뿐, 낯선 경험과 경청할 만한 ‘타자’는 철저하게 차단된다. ‘코로나19’는 그런 요상한 생활방식을 아예 만인 공통의 것으로 일상화시켰다.
물론 AI와 네트워크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물리적, 기술적 노력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디지털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하드웨어일 뿐이다. 좀 비약하자면 디지털과 ‘인간’의 결합, 곧 아날로그가 더해진 ‘디질로그’의 소통과 경험이야말로 더욱 강력한 소프트웨어라고 하겠다. 타자의 낯섦과 나만의 익숙함이 부딪쳐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모두의 것으로 공유될 때 삭막한 네트워크 종속시대를 뛰어넘을 것이다. 즉 ‘인간’에 의한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 방식, 그거야말로 가장 확실한 AI재해 대책이라 하겠다. “온전한 AI자동화 시스템보다 (인간과) AI와의 협업”을 강조한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결론도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