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아닌 '창조기술' 시대가 온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은 인간 본성의 주된 권능”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론 실재(實在)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변형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21세기는 감각과 지각에 의한 실재를 인간이 내키는대로 무한 재생하거나, 가상과 현실을 뒤섞은 대체물을 형성하는 수준에는 도달했다. VR․AR․MR을 융합한 XR과 메타버스가 실용화되고, 인공지능 없이는 그 어떤 첨단의 인공도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가상인지 현실인지 알쏭달쏭한 디지털 트윈의 경험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그것이 블록체인의 마술과 결합되어 기왕의 우주 원형(Archetypes)을 복사한 가상의 우주(Metaverse)를 만들어낸다. AI, 클라우드, CG 기술이 더해지며, ‘제2의 인류’로 빗대어질 만한 디지털 휴먼이 가상 공간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NFT처럼 아예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며, ‘오픈씨’ 같은 등록 사이트가 폭발 직전에 이를 정도로 과열 현상을 빚기도 한다. 이처럼 실재를 초월한 듯한 경험 창조의 기술은 레저와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의료 등을 가리지 않고 디지털 문명을 풍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앞으로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현재로선 그 끝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련의 철학적 담론들로부터 일종의 실마리를 찾아봄직도 하다. 즉 ‘상상’과, 그것의 질료라고 할 ‘실재’(實在)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사변가들의 논쟁이 그것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묘사하는 모든 이미지를 ‘감각 실재에 대한 단순한 대체물’로 보되, 상상력이란 감각된 실재를 ‘재생하는 능력’으로 파악했다. 체험된 실재의 추억들과, 지각된 실재의 단편들을 결합시키는 것이 상상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오늘의 찬란한 디지털 문명은 감각된 실재를 그저 ‘재생’한 결과일 뿐 창조와는 거리가 있다. 지도학습이나 비지도학습에 의해 가공된 머신러닝, AI, 알고리즘, 그리고 VR과 XR, 메타버스, 하물며 자율조정이나 사물인터넷 따위는 모두 인간 현실, 즉 실재를 재생하고 재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지금의 실재를 재료로 삼아 한층 개량된 실재를 욕망하는 수준일 뿐이다. 그저 실재의 버전(version)을 높여가며,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앞서 바슐라르나 그의 제자 질베르 뒤랑은 인간의 ‘상상력’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만약 상상력이 단순한 실재의 재생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영원히 그 실재의 틀 속에 갇힐 수 밖에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상상력은 실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을 초월해서 그것을 아예 창조적으로 변형하는 능력이다. ‘초인간성’의 능력이되, 인간 조건을 넘어서게 하는 경향들을 총체화하는 능력인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낸 바슐라르 등을 오늘의 디지털 시대에 소환한다면 어떨까. 한 마디로 ‘재생의 상상력’이 아닌 ‘창조적 상상력’의 소유자로 인간을 승격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나물에 그 밥’의 상상 지평에 머물러선 안 되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일탈’은 그래서 눈에 띈다. 그의 ‘뉴럴 링크’는 인간의 뇌에다가 초소형 AI 칩을 이식해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며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영생’도 가능하게 된다. 제프 베이조스는 30분에 300억원 하는 우주여행상품 판매에 나섰고, 머스크와 ‘화성 진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둘 다 윤리적 비판과 논란의 소지는 클지언정, 그 상상력의 발칙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아직 ‘창조’의 경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창조적’ 경계에 다가간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근대 이래 상상력은 과학과 이성의 틀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분석과 환원을 무기로 한 과학 그 너머의 직관적 세계에 다시 주목하면서 인류는 이제 초월적 이성과 비과학적 과학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소박한 비유를 들자면, 환생이나 영혼, 영생, 신비한 자연현상과의 화해, 시간여행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는 실재보다 앞선(先在하는) 또 하나의 원형적 질서이며, 디지털 기술이 장차 시도해야 할 새로운 경험 체계라고 하겠다. 물론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소치’라며 욕먹을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창조주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