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로의 ‘여행’, 메타버스

2021-05-02     박경만 주필

‘메타버스’는 본래 닐 스티븐슨의 1992년작 SF소설 ‘Snow Crash’에도 이미 등장했다. 현실세계를 모방한 가상의 두 번째 세상의 도구로 소개된 것이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과는 달리,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메타버스에 의해 그 두 번째 세상, 즉 세컨드 라이프에 접속하여, 첫 번째 삶을 재현하는 존재인 아바타로서 활동하게 된다는 얘기다. 나중에 필립 로즈데일은 이에 영감을 받아 “장난같은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는 새로운 세상과 국가”를 만들었다. 메타버스의 연원은 그처럼 다큐가 아닌, ‘소설’에서 시작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세상(UNIVERSE)의 합성어다. 즉 가상과 현실이 버무려지면서 가상도 현실도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3차원의 세상이다. 기계적으로만 보면, 인터넷공간에만 존재하던 3차원 세계를 현실에 옮겨온,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생활형 가상 세계다. 인터넷 세상이 막을 내리고, 초(超)인터넷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술적 시야엔 포착되지 않는 기호를 메타버스는 감추고 있다. 보기에 따라 메타버스를 구현해낸 eXtended Reality(XR)은 물론, DNA(Digital, Network, AI)도 모두 궁극적으론 ‘이야기를 위한 도구’다. 나름의 계산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여기서 메타버스는 마침내 존재론적 탐색과도 맞닿는다.

근원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현존재란, 그것이 인간이든 신이든 늘 누군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 속에 있다. 그러면 그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메타버스, 그러니까 ‘초월적 세상 내지 우주’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현실과는 또 다른 몇 겹의 현실을 잉태한 중층의 우주, 즉 평행우주나 멀티버스(multiverse) 이론과 겹쳐질 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 현실과 같은 또 다른 ‘우리 현실’이 우주적 홀로그램으로 투영한 시공간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그랬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일 수도 있다”고. 고차원의 ‘절대적 존재’가 저차원으로 투영되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사고방식과는 달리, 홀로그램은 이차원 평면에 들어있는 정보가 더 높은 삼차원으로 투영되면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경험과 생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내부, 즉 ‘현실’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현실’이란 것은 ‘다른 외부 세계가 우리 세계로 투영된 결과’다. 그렇다면 그 투영된 ‘눈앞의 현실’의 창이란 어떤 모양일까. 지금 등장한 메타버스 역시 그런 사유방식의 한 갈래로 나온 탐구방식이며, 나아가선 멀티버스의 한 층위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게 메타버스는 멀티버스의 각 층을 가로지르며 세컨드 라이프를 여행하고픈 본능의 재발견이다. 결국은 ‘천일야화’처럼 무한한 이야기를 만들고픈 ‘작화증(作話症)’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메타버스는 오늘날 숱한 세컨드라이프 이야기들을 양산하고 있다. 인기 그룹 위클리의 뮤직비디오 ‘애프터 스쿨’을 전 세계 3천만 명의 구독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한다.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채 학교 운동장 및 교실을 배경으로 화려한 노래와 춤도 선보인다. 제페토나 구찌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광고하기도 한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가상 플랫폼에서 제페토는 구찌 IP를 활용해 신명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알려지기론 전세계 구독자가 무려 2억을 웃돈다고 한다.

멀티버스의 원리가 그렇듯, 디지털 기술은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없앤 이야기의 중층 구조를 향해 치닫고 있다. 정색하자면, 이는 존재에 대한 탐구와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탐구하면서 ‘이야기의 비밀’을 캐내려 한다. 그 비밀이란 곧 원리와 윤리와 진리, 그리고 설리(說理)의 진화 속에 있다. 곧 자연의 원리 너머 윤리를 깨쳤고, 진리에 목말라한 나머지, 그런 진리를 새로 만들기 위한 비현실의 현실 이야기, 즉 ‘설리’에 몰두한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설리를 통해 존재의 ‘비밀’을 캐고픈 욕망의 표현이다. 동시에 멀티버스행 티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