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 “파운드리 증설‧ADAS기술협업 등으로 맞서야”

美 중심 국제시장 재편 움직임…‘생산력 확충‧국제 기술변화 대응 절실’

2021-04-13     김홍기 기자

최근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국제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다. 12일엔 미 백악관이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제 반도체 기업들을 초청, 이에 관한 국제 공조방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국 중심의 반도체 시장 재편을 논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국내에서도 이를 둔 논의와 대안 모색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 최근 국제무역협회와 한국무역통상연구원이 제시한 대안은 그 구체성이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출처= ETRI 웹진)

일단 이들 기관은 “기존 생산공정을 활용하되 파운드리 증설과 자동차 자율제어장치인 ADAS, 전기파워트레인 등 유망 분야의 제품 포트폴리오, 기술로드맴 공유, 드론과 로봇, IoT 등 산업간 기술 응용 등으로 ‘반도체 전쟁’의 승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두 기관은 공동 발간한 ‘트레이드 포커스’ 12호를 통해 목전의 국제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이처럼 정교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방안’이란 제하의 조사 보고서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취약한 우리의 현실에서 크게 3가지 대원칙을 개선책으로 내놓고 있다.

차량의 전장화, 연결성 심화,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자체 생산력 강화’와 ‘산업 포트폴리오 확장’, ‘기술환경 변화 대응’을 기본적인 축으로 삼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존 12인치 웨이퍼의 생산공정을 극대화하되, 8인치 웨이퍼 등 파운드리 증설을 검토해야 한다. 또 ADAS나 전기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 텔레메틱스 등 유망 분야의 제품들을 고루 증산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AI반도체, SiC전력반도체 투자 및 R&D지원, 기술로드맵 공유와 연구개발, 드론, 로봇, IoT 등 산업 간의 기술을 응용하고 융합할 필요도 있다.

그 중에서도 자체 생산역량 강화를 위해선 현재의 12인치 웨이퍼 및 20nm 이하의 첨단 공정 위주의 국내 반도체 공정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 본래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와 30nm 이상의 제조공정을 주로 활용하므로 이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는 다소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공정을 충분히 갖춘 대만 TSMC에 세계 각국 차량용 반도체의 위탁생산 수요가 집중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IT기기용 반도체처럼 차량용 반도체도 소형화, 고성능화되고 있어 이런 첨단 공정의 활용도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게 조사 보고서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미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고성능,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구축되어있는 12인치 웨이퍼 공정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선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을 위시한 국내 팹리스와 대기업 중심의 파운드리, 그리고 자동차업계 간 공급과 수요의 가치사슬을 구축할 것으로 제안했다. 이를 통해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공동 연구개발, 생산과 국내 조달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또 파운드리 대기업은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의 위탁생산을 늘려가는 등 모빌리티 분야 확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실제로 TSMC는 세계 ‘TOP 3’ 기업(NXP‧인피니언‧르네사스)으로부터 자율주행이나 인포테인먼트, 고성능 MCU 등 28nm 이하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는 12인치 웨이퍼 55nm 공정에서 생산되는 DDI/TDDI 생산역량의 15∼20%를 차량용 MCU나 전력 반도체로 대체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현재 테슬라 자율주행용 5㎚급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산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야 한다는게 이번 무역협회 등의 보고서가 또한 강조하는 대목이다. 즉 “차량용 반도체 기업은 밸류체인의 변화 속에서 기존의 H/W 플랫폼 제공자 지위를 공고히 하되 S/W 영역에서 제품 차별화 요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ADAS와 자율주행, 전기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등 향후 S/W 부문의 성장성이 큰 부품군을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하다. 향후 E/E 아키텍처의 변화와 통합 OS의 개발 트렌드에 발맞춰 S/W 확장성을 갖춘 통합형(SoC) 차량용 반도체 개발도 주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르네사스의 경우처럼 ADAS 성능이 높아질수록 이에 맞춰 서로 다르게 구성한 H/W 솔루션 모두에 재사용할 수 있는 S/W를 탑재하거나 업데이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자율주행용 AI 반도체, 전기차용 신소재 기반 전력 반도체처럼 아직 시장에 절대강자가 없는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눈길을 끈다.

그 중 자율주행용 AI 반도체의 팹리스 설계 역량 강화가 특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AI알고리즘, 통합 OS 등을 아우르는 개발 생태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전기차 전력효율 관리에 대한 수요가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SiC나 GaN 등 신소재 기반의 전력 반도체에 대한 투자와 R&D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앞서 정부도 지난 3월 국내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 양산 전 시제품 제작 비용 지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급변하는 국제적 기술환경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중요하다. 특히 전기차나 자율주행 기술의 고도화는 차량 전체, 혹은 차량과 모바일기기 등 주변환경과의 연계와 전자적 자동제어를 위한 통합형 E/E 아키텍처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 구체적 실행 기반으로 고성능 SoC 기반의 DCU, 통합 ECU의 발전도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즉 H/W 설계 기반의 아키텍처에서 S/W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아키텍처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 경쟁과 함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시장에 진입하면서 자율주행 전기차의 기술 플랫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기술환경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 중요하다는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반도체와 전장부품, 완성차기업 간 기술로드맵을 공유하고, 공동 개발하는 등의 전략적인 협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자율주행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은 특히 눈길을 끈다.

독일 인피니언이 폭스바겐 그룹의 전략적 협력사 네트워크인 ‘FAST’에 파트너사로 참여하는 등의 실제 사례가 그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기차 플랫폼(MEB)이나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기술 발달 수준에 맞는 기술협업을 실행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 역시 덴소와 차량용 반도체 조인트밴처를 설립한 바 있고, 4개 부품기업에 출자한 별도 법인을 설립, 자율주행차 전용 통합제어 S/W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로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간 협의체가 구성된 바 있다. 미래차와 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 협력품목을 발굴하고, R&D와 후속 사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협의체엔 현대자동차(OEM), 삼성전자(IDM), 모비스(Tier1), DB하이텍(파운드리), 텔레칩스(팹리스), 넥스트칩(팹리스), 자동차산업협회, 반도체산업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무역협회 등은 “이처럼 산업 간 경계와 기술장벽이 점차 완화되고 있어, 자동차와 다른 산업 간 기술을 응용하고 융합하는게 국제적인 추세”라며 “국내에서도 특히 다른 산업용 반도체 기술을 지닌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 경우엔 R&D나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