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와 ‘랑그’

2021-03-21     박경만 주필

방대한 데이터센터가 전력 소모는 물론, 이제 기후위기의 한 요인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역으로 이는 디지털 문명의 ‘피’가 곧 데이터임을 말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의 순환과 작동의 원천이다. 그럴수록 보이되 보이지 않는 문법까지 통찰할 수 있는 밝은 눈이 필요하다. 이른바 데이터 리터러시다. 가트너는 “상황과 조건에 맞게 데이터를 읽고 쓰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문맹을 뛰어넘는 문해력을 말함이다. 그 어떤 텍스트가 되었건, 개념없는 관찰은 안 된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인과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수 년 전 암호화폐가 우리 사회의 본격적 화두로 부상했을 때 일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거래 자체를 금지한다’고 암호화폐 금족령을 내릴 뻔했다. 허나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지하면서 즉자적이고 원초적인 처사였다. 그 보단 기만적인 공유경제의 폐해나, 영악한 앱 스타들의 부의 독점과 디지털 문맹 계층의 소외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런 이해와 분석이 있을 때 암호화폐의 허와 실도 선명히 보이고, 잘못된 조작 원리도 합리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바로 블록체인과 디지털 문법에 대한 문해력의 결핍 탓이었다.

데이터와 정보에 대한 문해력이 없으면 ‘디지털화’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마치 ‘앙꼬’없는 찐빵이라고나 할까. 특히 기업이나 조직에겐 치명적이다. 아무리 ‘황금알’을 낳는 정보일지언정, 그것이 갖는 또 다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것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으면 그 또한 헛일이다. 데이터의 맥락과 가치, 그것을 내포한 서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CEO나 CIO이며 엔지니어, 개발자라고 하겠다. 비즈니스 가치를 해석하고 이종변수를 융합하며, 그 응축된 지표와 기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데이터 리터러시의 임무는 그처럼 막중하다. 다시 가트너를 언급하자면, 한 기업이나 집단의 성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로 부실한 데이터 리터러시가 꼽혔다. 물론 훌륭한 인재의 부족이나 기술력의 허약함도 문제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제대로 된 리터러시가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데이터 리터러시는 소위 집단 지성의 동력이며, 인본적 기술문명의 무기도 된다. 기계를 하수(下手)로 부리며, 인간이 그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한 인간만의 통찰력, 자연언어를 재해석해내는 생성능력인 것이다.

리터러시 보유자는 때로 배타적인 텍스트 간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간의 통념과 상식 혹은 통시적 진실로 통하는 것이라도, 새로운 디지털 재주를 요구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선 과감히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곤 다시금 복잡한 메타언어를 해독하고, 새롭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 비트코인은 7천만원 넘어섰다고 한다. 암호화폐 거래를 금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블록체인이라는 ‘데이터’에 대한 리터러시 덕분에 이제 암호화폐 정도는 통제 가능한 인식 대상이 되었다. 당시로선 획기적 메타언어였던 분산기장과 공유경제의 문법을 이제 현실과 선하게 접목하는 방식도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터 리터러시의 대상은 그저 ‘데이터’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의 원천과 구조를 이해하고, 만물에 대한 자신만의 결과값을 설명하는 능력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기계언어들로 복잡하게 짜여진 디지털 텍스트에서 늘 독소를 걸러내고, 유익한 담화를 식별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파롤’ 아닌 ‘랑그’의 문제다. 우린 매일 무한대의 난해하고 난삽한 이진법의 ‘파롤’이 난무하는 세상에 산다. 그 어지러운 파롤 가운데 나만의 ‘랑그’로 치환하는 능력은 이제 생존의 조건이다. 순간 이동 속도로 변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수 밖에 없다. 좀 비정한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