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수탁 ‘디지털은행’시대 본격 개막
美 전국 디지털 은행 최초 승인 中 디지털 위안화 허용 직전 국내서도 가상자산 수탁 금융 현실화
새해 들어 암호화폐 등을 수탁, 취급하는 디지털 은행이 각국에서 공식 허용되는 등 가상자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해지고 있으며 중국도 디지털 위안화의 공식화 등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지난 1월 초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을 미 연준 산하 통화감독청(OCC)이 전격적으로 허용한데 이어 13일에는 최초로 앵커리지 신탁이 전국 단위의 디지털 은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국내에서도 NH 농협,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 수탁 사업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마침내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은행 시대가 열린 것이다.
JP모건 가상자산거래소 계좌 개설 등 지난해부터 가속화
이미 이런 조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지난해 5월 미국 주요 은행 가운데 최초로 JP모건이 가상자산 거래소가 계좌를 개설하도록 허용했고 7월에는 OCC가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수탁 사업 진출을 공식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9월에는 가상자산 거래소인 크라켄이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디지털 은행 허가를 받는 등 사실상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러다 해가 바뀌면서 지난 4일부터 OCC는 모든 시중은행들이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격 허용했다. 그 후 앵커리지 신탁의 전국 단위 ‘앵커리지 디지털 은행’으로의 전환도 승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에서 디지털 은행에 의한 가상자산 거래가 법정화폐와 똑같이 합법화, 공식화된 것이다. 이번에 디지털 은행으로의 전환을 승인받은 앵커리지 디지털 은행은 이제 전국을 커버하며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비롯해 법정 화폐 수탁, 검증자 노드 운영, 스테이킹(Staking) 서비스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는 금융기관이 암호화키를 통해 고객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을 대신 보관하거나 관리해주는 것이다. 스테이킹은 개인이 소유한 가상자산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맡기는 것이다. 앵커리지 디지털 은행은 이제 각 주별로 일일이 은행업 허가를 받을 필요없이 연방 승인에 의해 미국 전역에서 영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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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리지’, 세계 디지털 금융시스템 선진화 견인
물론 이 은행은 OCC에 의해 가상자산 관리 부문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받고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 다만 디지털 자산을 다룬다는 점이 기존 은행과 다른 점이다. 이번 앵커리지 디지털 은행의 전국 영업은 세계 디지털 금융 시스템의 선진화를 견인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이는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제도 개선과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공식 편입시키려는 미 정부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은 2021년 벽두부터 ‘디지털 금융’의 가속화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을 시중은행들이 취급할 수 있게 한 것도 중대한 의미로 주목받고 있다. 즉 퍼블릭 블록체인의 독립 노드 검증 네트워크에 시중 은행들이 참여해 거래를 검증하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결제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은 세계 최초로 시중 은행과 금융시장에서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합법적인 법인 결제수단으로 허용한 첫번째 국가가 된 것이다. 이번 앵커리지 디지털 은행을 필두로 앞으로 디지털 자산 관련 은행업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전국에서 영업하는 가상자산 은행이 속속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 연방 규모 디지털 은행 잇따라 등장할 전망
실제로 이미 블록체인 결제 서비스 제공 업체 비트페이(BitPay), 스테이블 코인 ‘PAX’를 발행하는 팍소스(Paxos)도 OCC에 연방 디지털 은행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와이오밍주에 한해 디지털 은행으로 허가받았던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 그리고 아반티도 전국 영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잘 알려져있다시피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인 페이팔은 이미 가상자산 매매·결제 사업에 본격 진출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가상자산 수탁 회사 빗고(Bitgo)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가상자산 수탁 사업 진출을 위해 정보제공요청서(RFI)를 관련 업계에 발송하는 등 디지털 자산 금융 사업에 뛰어들 태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미국의 급속한 디지털 금융 합법화와 확산은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금융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오히려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정부 주도의 금융 시스템 통제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디지털 금융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특히 이번 앵커리지 신탁의 전국 단위 디지털 은행으로의 전환은 가상자산을 투기 위험성을 지닌 통화가 아닌, 어엿한 별도 자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상자산을 금융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우호 정책을 바탕으로 미국 주요 시중은행은 앞으로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 등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금융 사업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 등도 디지털 금융 본격 진출
이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에서도 가장 먼저 디지털 자산 수탁 사업 검토에 나선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이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미 지난해 6월 법무법인 태평양, 블록체인 기술업체 헥슬란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가상자산 플랫폼을 구축해 본격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KB국민은행도 블랙체인 기술회사인 해치랩스, 블록체인 투자업체인 해시드 등과 함께 디지털 자산 합작 법인을 세운 바 있다.
이를 통해 양측은 디지털자산의 보관·관리, 관련 규제 변화 공동 대응,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신규사업 발굴, 블록체인과 금융과의 연관 생태계 조성 등에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인 코빗·블로코·페어스퀘어랩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한국디지털자산수탁에 투자하고 연내 디지털 자산 관련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가상자산 은행에 대한 180도 정책 변화는 이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전체가 디지털 금융 시대로 본격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