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9] 유동환율제 첫발, 64년 단일변동환율제도 시행

2021-01-04     임규진 기자

60년대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금융면에서 많은 제도 변화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중하나가 1964년 단일변동환율제 실시다.

1964년 5월3일 고정환율제도제만 실시되다 처음으로 유동환율제가 채택된 것이다. 당시 1달러당 1백30원이던 환율은 하한선 255원으로 인상됐다.

이에 따라 처음으로 수출도 1억달러를 넘어섰지만 이후 인플레이션도 안정되기 시작하여 과거 실세환율과 공정환율의 갭으로 발생한 특혜는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변동환율제도는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의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로 조절되지 못했다.

참고로 우리나라 환율제도 변천을 보면, 1945년부터 1964년까지 고정환율제도를 실시했으며 1964년부터 1980년대까지 단일변동환율제도를 실시했다.

1964년부터 1990년까지 원화 환율위 실질적 유동화인 복수통화 바스켓제도가 실시됐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시장평균 환율제도 이후 1997년부터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지금까지 실시하고 있다.

1962년 5.10 통화개혁으로 은행창구는 돈과 인파가 몰렸다./사진=1970년 은행계

이에 앞서 1962년 최대경제 이슈는 환을 원으로 바꾼 통화개혁이다. 62년 5월10일 통화개혁이 내자동원이란 명분을 내걸고 단행됐다.

당시 환을 원으로 바꾸면서 10분1로 평가절하했다. 당시 동결된 금액만해도 무려 98억원에 달했다.

당시 국민들은 이 돈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 겁을 냈지만 한달도 채 안가 풀렸다. 따라서 본래의 내자동원이란 목적은 사실상 시ㄹ패했다. 다만 이승만 대통려의 초상을 첨성대로 바꾸어 돈을 인쇄했다.

60년대 또 하나 사건은 3분폭리다. 시멘트, 밀가루, 설탕 3분(粉)의 횡보가 63년에 말썽이 됐다. 63년도는 태풍이 전국을 휩쓸어 많은 사상자를 냈고 이재민만 해도 4만여명에 달했다.

쌀값은 갑자기 치솟아 4천원 선을 넘어 결국 당시 농림부장관이 인책사임하기가지 이르렀다. 그런데 밀가루값이 뛰고 설탕과 시멘트가 엄청난 초과이윤을 보았다.

3분업자들은 한부대에 307원의 밀가루를 1400에, 27원 설탕 한근을 150원에, 140원의 시멘트를 400원에 팔아 폭리총액은 5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또 66년 최대의 이슈는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이었다. 당시 특별수사반의 소장에 의하면 시가 약2천880만원 상당의 사카린 원료 OTSA 60톤을 한비건설자재인양으로 가장하여 반입, 매각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9월22일 국회에서는 당시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뿌린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김 의원은 의원직을 자진사퇴, 구속되었고 밀수관련자가 구속되었으며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키로 발표했다.

이 외에도 67년엔 무역자유화가 실시됐고, 외국은행이 상륙했으며, 68년엔 경부고속도로가 기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