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공지능 전망’을 전망하며

2020-12-27     박경만 주필

연말이 되니 5년 내지 10년 후 기술 발전에 대한 온갖 전망이 난무한다. 그 중엔 물론 인공지능(AI)에 관한 것도 빠지지 않는다. 빠지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그런 예견과 전망의 중심에 서있다고 해야 정확하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IT와 디지털기술은 결국 사람과 가장 닮은 것을 사모한 나머지, 인공지능으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공지능은 그 어떤 대체재로부터의 위협이 없는 디지털 기술의 ‘끝판왕’으로 좌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생명 진화의 공정과도 흡사한, 트랜스포메이션의 아이콘으로 그 의미가 격상되고 있을 정도다.

그 ‘의미’는 마치 ‘생명’의 의미를 둔 규명과도 닮았다. 많은 현학자들은 애초 생명을 인식 가능한 부분 내지 원인들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이를 반격하며, 무생물이나 생화학적 분석으로 해명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활력의 결과물로 보는 주장도 등장했다. 나중엔 어떤 창발성과 유전자 프로그램이 합쳐진 유기체적 존재로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물리주의와 기계론, 그리고 유기체주의의 변증법적 전이라고 하겠다. 지난 반세기 가까운 인공지능의 발자취 역시 그런 상상력의 진화를 연상케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기억, 지각, 이해, 학습, 연상, 추론 등의 인간의 지성을 실현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그런 의도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꽤 지난한 진화 과정을 겪어온 것이 인공지능이다. 다만 시계열의 줄서기가 아니란 점에서 생명 진화의 그것과 다를 뿐이다. 순차적이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컴퓨팅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툴을 공급하고, 알고리즘을 생성해냈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동작원리를 이해한, 맞춤형 실용화를 위한 AI솔루션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병렬적이고 공시적(公時的)인 기술 발달로 점철되어 온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머신러닝, 컴퓨터비전, 자연어처리, 상황인지 컴퓨팅으로 세분되며, 세계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사람의 뉴런을 수학적으로 모방한 다층 퍼셉트론과 활성함수 기법으로 복잡한 로직을 연산하며 진화하고 있다. 모델링한 분석 로직과 인공신경망은 데이터 추상화와 빅데이터 기술로 고도의 기계학습을 수행하며, ‘인간지능’을 부지런히 모방하고 있다. 이런 천지개벽적 기술은 인류가 이미 아는 것들의 재확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몰랐던 질서에 대한 질문과 낯선 경험의 확장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마치 자연수 바깥에서 0을 찾고, 무리수와 허수를 발견한 것과도 같은 혁명적 결과다.

당연히 그런 상상력의 산물인 지능형 기술은 인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도 함께 있어왔다. 인간소외가 아닌, 인간이 소유해야 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는 고민도 끊이질 않는다. 나아가선 더 절실한 관심사도 있다. ‘인간과 닮기’를 목표한다곤 하나, 인간사회의 합목적적 행위를 닮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즉 공동선을 위한 언어적 기능, 관계 구축의 정서적 역할, 사유(思惟)의 능력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 선한 것들이 인공지능이 이룰 자본과 생산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도 수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아직은 상용화 초기 단계다. 여전히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가야 하고, 인간의 고용 영역을 침범할까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기술적 불안정성이 수시로 돌출하고 있다. 그럴수록 더욱 ‘선한 인공지능’에 대한 염원도 깊어간다. 그 길은 네트워크와 코드, 프로토콜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지능기술에 의한 문화적, 지적, 과학적 생산물에 누구든 손쉽게 접속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이익의 생성과 분배 역시 최적의 조합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결 느긋하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대체 넌 누구냐?”라고-. 연말이 되니 인공지능의 운명이 그렇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