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의 위기

2020-11-30     김상철 칼럼니스트

바이오헬스 비전

지난해 5월 정부는 바이오헬스 국가비전을 선포했다. 바이오헬스 분야 정부의 R&D 예산은 2019년 대비하여 2020년 약 18% 증가했고, 올해 7월에도 기초연구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포함해 향후 10년간 바이오의약품 분야에 약 28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연구개발 지원 정책이 발표됐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특히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 성과도 눈부시다. 2019년도 국내 의약품 생산 20개 품목에 중 상위 3품목을 포함해 8개의 바이오의약품이 포함돼 있으며, 24조원의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약 10.7%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뿐 아니라, 국내·외 제약 바이오기업의 투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쌓아온 R&D 및 생산 역량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141119일 코스닥시장 제약업종의 시가총액은 147679억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20201119, 제약업종의 시총은 48705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6년 새 34조원이나 불어난 셈이다. K-바이오에 대한 기대감이 실적과 함께 높아진 덕분이다.

 

코로나 백신 경쟁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경쟁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실적을 내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치열하게 치료제·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 치료제·백신 관련 파이프라인은 이달 기준 미국에서 628, 중국에서 100건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영국 83, 캐나다 75, 일본 70건으로 이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50건이 진행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아직 승인받지 않은 전임상과 후보물질 발굴 상태 등을 합산한 수치다. 파이프라인 갯수로만 치면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스위스보다 많다. 물론 파이프라인 갯수가 단순하게 성공 확률을 보장한다거나, 연구개발(R&D) 역량을 입증하는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 우리나라가 선진국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는 얘기다.

고품질의 의약품 및 백신 생산 능력도 갖추고 있어 해외에서 개발에 성공한 의약품을 우리나라에서 생산한다는 것도 강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코로나 백신 생산을 SK바이오사이언스에 맡기거나, GC녹십자가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으로부터 코로나 백신 5억도즈를 생산키로 합의한 것이 주요 사례다.

 

논란의 바이오기업들

그러나 눈부신 성과 한편에서는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바이오기업들이 잇따라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ㆍ메디톡스ㆍ신라젠ㆍ헬릭스미스 등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기업들이 잇따라 조작ㆍ배임ㆍ횡령 논란에 휘말리면서다. 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한 기업으로 주목을 받은 코오롱티슈진은 3년 만에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인보사 성분변경 논란때문이다.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코오롱티슈진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1년의 개선기간을 부여했지만 반전은 없었고. 위원회는 지난 42차 심의에서도 상장폐지로 의견을 모았다. 최근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국내 1호 보툴리눔 톡신 제제(일명 보톡스) ‘메디톡신의 제조사 메디톡스는 허가받지 않은 원액으로 메디톡신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시험성적서까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라젠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금 없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한때 코스닥 시총 순위 2위까지 올랐던 헬릭스미스는 주주들의 투자금을 지난 5년여간 고위험상품에 투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한올바이오파마는 임상시험 결과를 왜곡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씨엘바이오는 퓨젠바이오와의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성적서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탈이 아닌 시스템 문제

일부 기업의 일탈 행위로만 보기는 어렵다. 허술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재 제약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대부분 혁신 바이오기업으로 거듭나길 꿈꾼다.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와 바이오 붐으로 금융시장의 뭉칫돈이 바이오산업으로 흘렀고, 정부는 규제 완화로 화답했다.

당장 상장 기준부터 부실해졌다. 기술특례 상장제도 때문이다.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수익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위해 상장 기준을 완화해 주는 제도다. 숱한 바이오기업들이 이를 통해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엄밀한 평가가 진행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허술한 임상허가 절차도 문제였다. 성분이 바뀐 인보사가 손쉽게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는 임상 2상에서도 조건부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을 통과시켰다.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 거라는 장담은 어렵다.

 

K-바이오의 활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의 눈부신 실적으로 상징되는 K-바이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내 바이오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야 한다. 당장 국내 시장규모의 한계도 있다. 국내 시장은 전 세계시장의 약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자연히 전후방산업 발전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아직 기술력에서 차이도 있다. 보호하고 육성해야할 이유다. 그러나 조작과 횡령, 배임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당장 투자자금부터 조달이 어려워진다. 이미 불법 행위와 모럴해저드로 논란을 빚은 코오롱티슈진ㆍ메디톡스ㆍ신라젠ㆍ헬릭스미스에서 증발한 투자금은 186221억원에 달한다. 코오롱티슈진과 메디톡스는 4조원을 훌쩍 웃돌았던 시총이 지난 19일 각각 4896억원, 1503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신라젠 시총은 103562억원에서 8666억원으로 무려 94896억원이 불탔고, 헬릭스미스는 3조원에 달했던 시총이 8030억원으로 감소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시스템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더욱 철저한 감독이 따라야 한다. 부실한 의약품은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라 죽고사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