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컴퓨팅이 은유하는 바
“통화정책에 대한 ‘반격’이라는 적대적 코멘트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의 위세는 등등하다.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거래에 대한 분산된 참여자 모두의 공고한 믿음 때문이다. 암호화폐 말고도 그런 디파이(분산)의 미덕이 작동하는 곳이 또 있다. AI옵스로까지 진화 중인 데이터링과 클라우드 세계다. 이제 그곳에선 네트워크의 중앙에 뿌리를 둔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엣지 컴퓨팅으로의 전환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엽’과 ‘말단’이었던 엣지 컴퓨팅이 본류를 잠식한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전환이나 잠식이라기보단, ‘엣지 시대’의 개막이란 편이 자연스럽다.
이는 불과 밀리 초 단위의 레이턴시(지연)마저 참지 못하는 디지털 인류의 조급함이 작용한 탓이다. 그런 조급함은 특히 IoT와 5G가 부상하면서, 중앙시스템으로의 지루한 피드백을 용납하지 못하게 했다. 아예 로컬 프로세싱과 스토리지로 재빠르게 앱을 생성하고, IT세계의 치열한 승자가 되고픈 욕구도 한 몫을 한다. 그래서 더욱 하드웨어, 클라우드, 운영체제로부터 독립한 오픈 엣지와 오픈 네트워킹 전성기가 올 듯 싶다. 그러나 엣지 컴퓨팅의 함의는 그에 그치지 않는다. 독점적 매개자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제동이라는, 자못 기술철학적 언어도 담겨 있다. 심지어 중앙집권과 통제, 자율과 존재를 억제하는 권력행위에 대한 응당한 질문이랄까, 그런 형이상학적 도발의 그림자마저 서려있다. 클라우드 소비자들의 단순한 조급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이를 보여주듯 엣지 컴퓨팅은 제 나름으로 도시나 삶의 공간에 있는 수많은 장치들에 제각각 ‘지능’을 제공한다. 그래서 중앙 시스템과 통신하지 않고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복잡한 세상”에 맞춰 IoT와 통신, 클라우드, 엔터프라이즈 엣지 등 모든 엣지를 통합하며 신속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현안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집과 사무실, 공장, 시골병원 어디에서나 각자의 이성과 지능으로 눈앞의 현실에 슬기롭게 대처하도록 한다. 이에 맞도록 최첨단의 애플리케이션들도 중앙화된 클라우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엣지로 대체되고 있다. 그야말로 자율에 의한 자유로운 ‘기계 이성’의 발현인 것이다.
여기서 우린 새삼 ‘자율’의 언어적 역할에 주목한다. ‘코로나19’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화상회의, 원격시스템이 넘쳐나면서 네트워크 트래픽도 과잉 상태가 되고 있다. 그럴수록 중앙의 결정과 승인을 위한 매순간의 접속은 그런 과밀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고, 속도를 지연시키고 네트워크 비용을 늘려간다. 그래서 엣지 컴퓨팅은 ‘자율’에 의한 새로운 기계적 코딩이자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5G와 ‘와이파이 6’ 등과 맞물리면서 완벽한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하긴 자율주행의 본래적 이데올로기도 ‘자율’이다. 그 스스로 5G와 네트워크 센서로 자체 모니터링하는 초연결성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의 ‘자율성’은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개체들의 자율과 조정 등 디지털혁명기의 또 다른 도덕률과는 사뭇 다르다. 디지털 세상은 흔히 자율성을 가진 ‘나’는 해체되고 네트워크상의 숱한 ‘우리’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허나 엣지 컴퓨팅의 ‘자율’은 그것을 해체한다고나 할까.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엣지에서 나만의 자율로 워크로드를 실행하고, 마이크로컨트롤러 유닛을 갖춘 IoT 장치와 원격 서버, 미니 데이터센터 등 자율적 지능의 도구들을 생성한다. 이는 실존적 삶을 자율해야 하는, 그래서 주체적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미래 개인자본주의의 맥락과도 상통한다. 네트워크상의 자율적인 승인을 통해 암호화폐를 만들어내는 것과도 닮았다. 그렇다면 다시 ‘분산과 개방’으로 번역되어,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덕목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만 되면 개인의 실존적 경험이 가상 공간에서 자신만의 대본으로 다시 쓰여 향유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엣지 컴퓨팅은 그런 다행스런 조짐을 은유한 듯 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