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큐레이터와 ‘코기토’

2020-09-20     박경만 주필
박경만 한서대 교수

디지털 기술이 인간 대신 문명의 기둥이 될 것인가. AI나 RPA로 인해 인간이 일터에서 급속히 밀려나고 대체당할 것인가. 디지털 문명이 가속화할수록 그런 예언은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잡으며 힘을 얻고 있다. 반면에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란 여유로운 전망도 아직은 유효하다. 기계와 기술의 비교 우위가 인간 존재를 추월하기보단, ‘일과 사람’의 새로운 영속적 모형이 디지털 세상의 강령이 될 것이란 주장이 그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직은 이렇다할 단언을 하기엔 이르다. 그럼에도 최근 디지털 트윈의 작동이 활발해지면서 실제 후자와 같은 낙관적 징후도 없지 않아 시선을 끈다.

애초 기술과 인간이 척을 지며 제로섬의 경지로 치닫는다는게 염세론자들의 생각이다. 그런 발상은 AI 내지 합성생물학과 디지털물리학의 기법이 ‘만물의 1인자’ 자리를 놓고 인간과 다투는 상황을 전제한다. 그러나 요즘엔 그와는 다른 풍경도 있다. AI와 머신러닝을 조수로 삼아, 인간의 빈약한 근육질적 능력을 슈퍼맨의 경지로 증강시키는게 그것이다. 금융계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는 리스킬링도 그런 조짐의 하나로 읽힐 만 하다. 자동화와 AI로 인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AI 덕분에 한층 유능해지고, 잠재된 뇌용량을 십분 발휘하며 조직의 귀한 인재로 쓰임받게 한다.

AI 기반 디지털 큐레이션도 그런 것 중 하나다. 그야말로 한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AI가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의 적성과 개성, 관심 분야, 학습 능력 등을 AI가 세밀하게 분석해서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맞춤형 콘텐츠를 수행하게 한다. IBM은 아예 이런 맥락을 시스템화한 ‘유어 러닝’ 기술도 만들었다. 왓슨의 자연어를 분류하는 기법의 앰플리파이어나, 태그 어드바이저에 의해 한 인간의 잠재능력을 100% 이상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에 의한 인간 증강 플랫폼이다.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형을 미리보기하는 것 같다.

미국의 보험업계도 아예 진상 고객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AI소프트웨어를 조수로 쓰기도 한다. 그 이름이 ‘코기토(Gogito)’라고 하니, 데카르트의 심오한 사변을 디지털화한 셈이다. 기계와 화합하면서 기계와 기술을 수단으로 부릴 인간성의 재발견이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주장은 그런 이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디지털 홍수에 프로그래밍된 우리의 뇌를 정화하고, 태고적 사유와 감정, 의식, 마음을 담금질하며, 속도보다 깊이를 앞세우고 ‘유레카’의 창발적 순간을 기대하는 것이다. 급기야 정보의 본질인 ‘정(情)’과, 통신이 함의한 ‘믿음(信)’을 신뢰하며 소통하는, 화합의 문법도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콜센터에선 그런 역발상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챗봇이나 AI 소프트웨어가 자칫 고객 안내 직원들을 실업자로 만들 것이란 예측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안내 직원이 얼른 알아낼 수 없어, 맞춤형 응대에 애를 먹는게 보통이다. 그럴 때 AI가 말 잘 듣는, 유능한 조수 노릇을 한다. 복잡한 수학적 연산에 능한 AI가 초고속의 데이터 라벨링으로 고객의 모든 것을 파악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덕분에 안내 직원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을 꿰뚫으며, 신속하고 정확히 응대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만능 상담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20년 내로 현존하는 직업의 절반이 자동화되면서 없어질 것”이라며 일자리와 노동의 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그게 현실이 될지, 기우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일과 사람의 함수는 너무나 유기적이란 점이다. 그 어떤 자연의 종속변수보다 복잡한 비선형(非線型)의 경우의 수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선 디지털화된 미래의 ‘노동총량불변의 법칙’ 또한 수정될 수도 있다. 덕분에 챗봇의 메마른 음성보다는, AI로 증강된 지혜로운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사항인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