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디지털 행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온 나라가 밤잠을 설치고 있다. 검사와 예방, 치유를 위한 온갖 진단과 처방이 동원되고 있으나 그 미증유의 돌림병이 언제 종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라고 할까.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IT와 디지털화는 이 와중에도 자못 예외다. 팬데믹의 음침한 공기 속에 위축되긴 커녕 되레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절망적 상황이 뜻하지 않게 디지털 르네상스의 찬스로 반전하며, IT기술이 비장의 방역 무기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QR코드만 해도 팬데믹 방역의 기민한 척후병 노릇을 하고 있다. 가로세로 격자무늬의 2차원 메트릭스는 코로나19 고위험시설의 전자출입명부에 쓰이거나 손끝 하나 스치지 않는 결제도구가 되고 있다. 사람간의 스킨십을 억제하는 비대면의 수단이 되며, 언택트 문명의 시그널로 자리잡고 있다. ‘퀵 리스폰스(response)’의 줄임말인 QR코드는 애초 자동차 조립공장에서 부품을 빨리 식별하고 찾아낼 목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오프라인의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훗날 스마트 기기를 통해 증강현실을 중개하고 팬데믹의 대항마로 등장할 줄 누가 알았으랴.
애플도 팬데믹에 대비해 새로운 QR코드를 읽을 수 있는 증강현실(AR) 앱 ‘고비(Gobi)’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는 감염병 상황의 가상현실과 진짜 현실을 잇는 연결고리로 QR코드를 활용하고 두루 기계 판독형 라벨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가상현실 헬멧 ‘HMD(Head-mounted display)’로 응용되며 질병으로 고통겪는 인간에게 큰 효용을 선사할 것이라고 한다. 확진 후 회복된 사람들로부터 얻어진 사용자 경험과 어우러지며 ‘코로나19’ 대응에 매우 요긴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도 한다. 그야말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다른 무엇에 빗대어 보는 방식’이라고 할까. 존재에 대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디지털 문명의 사상이 되고, 21세기 팬데믹의 무기가 된 셈이다.
‘코로나19’의 연원으로 흔히 인간의 탐욕이 지목된다. 그래선지 미국 보험업계처럼 코로나를 돈방석에 앉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경우도 많다. 한물간 여러 레거시 시스템을 시너지하고, 새로운 API로 데이터 계층을 통합하며 소비자들의 디지털 경험으로 떼돈을 버는 식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IT와 디지털을 과연 선용할 것인가. 만인의 유익함에 쓸 것인가. 잘만 되면 흰 가운의 천사들, 천하의 명의들을 뒤로 한 채 유능한 ICT기술이 팬데믹에 맞서게 될 것이다. AI, IoT와 로봇과 웨어러블 스마트기기와 컴퓨터 비전 앱들이 감염병과의 사투를 벌일 것이다. 이쯤 되면 사투라기보다, ‘팬데믹’이라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전복이다. ‘뉴노멀’이라는 이름 하에 감행된, 우주와 자연계에 대한 인간세의 발칙한 전복이자 반항이라고 하겠다.
지금 인류는 팬데믹의 성채에 갇힌 수인들이다. 또한 그 성채를 탈출하려 하는 반항아들이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알베르 까뮈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인류는 이제 질병과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에 대한 반항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 ‘반항’의 도구로 AI와 머신러닝과 로봇기술을 꺼내들었고 이진법적 사고체계와 접속하고 있다. 이는 나아가서 윤리적인 선택도 된다. ‘영생의 기쁨이 질병의 고통을 보상해준다’는 영적 발원도 ‘코로나는 죄악에 대한 징벌’이라는 초월적 태도도 뛰어넘는 윤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고발이다. 그런 고발의 수단으로 ICT기술과 인공지능과 같은 형이하학적 이성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낙관은 금물이다. 팬데믹 세계대전에서 디지털 무기가 승리할 것인지 장담할 수만은 없다. 무릇 식자들이 ‘트랜스휴머니즘’ 세상을 걱정하듯이 디지털 미래의 무자비함마저 긍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무조건 ‘긍정의 힘’은 힘이 아닌, 행복에 대한 조바심일 뿐이다. 그럼에도 눈앞의 현실은 분명하다. 지금 팬데믹에 맞선 디지털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충실한 인간 조건의 보루다. 거창하게는 인간 존재에 대한 최선의 복무이며 21세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첨단의 증언이다. ‘인간’과 IT기술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