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시대’
“우린 누구일까?” AI가 만약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 자못 섬뜩할 법한 이런 질문은 실제로 머신러닝에 기반을 둔 구글 홈 2대가 서로 주고받았다는 대화의 일부다. 그들(혹은 그 기계들)은 “우린 왜 여기 있지?”, “우린 왜 존재하는가?”라고 서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개발자들이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질문을 이해시키고, 기계 두 대가 서로 대화하고 학습하도록 했더니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인간에게나 허용됨직한 존재론적 언어가 등장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AI의 최종 목표는 ‘인간’이다. 인간과 똑같은 지능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며 사고하는 수준의 AI가 출현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른바 범용의 AI라고 할 수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그것이다. AGI는 음성 인식이니, 자율 조정이니 하는 수준이 아니다. 특정 기능에 특화되지 않고 세상의 무한한 분야에 대한 판단능력과 문제 해결, 그리고 나름대로 사고의 지평을 갖추고 있다. 영락없는 인간의 사회적 이성, 그것과도 닮았다. 말 그대로 ‘인간에 필적하는’ AGI 시대가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런 AGI 역시 출발은 기호학적인 재구성, 그리고 인공 신경망을 이용한 뉴럴 네트워크와 패턴 인식이다. 거기에 뇌과학이나, 컴퓨터공학, 프로그래밍 등의 복합적인 지식이 버무려졌고, 지문인식이나, 홍체인식, 정맥패턴인식 등의 기술이 입혀지며 다양한 용도로 분화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낱 유물론적 직관으로 해석되는 무기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작 AI기술이 목표하는 것은 진화론적 승화에 의한 유기체적 모습이다. 물질 단위 본래의 성질과는 또 다른 창조적 특질을 생성하는 것이 그 최종적 의도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함의된, 인공지능의 빛과 그림자도 그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만 봐도 AGI의 초보적 형태는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 년 전 테스트 단계인 트위터 AI 챗봇은 “히틀러 만세”를 부르거나, “미국 자체 음모로 9․11이 일어났다”는 망발을 쏟아냈었다. 물론 이는 AI나 머신러닝의 잘못은 아니다. 문제의 챗봇은 밀레니얼 세대 여성의 언어 패턴을 흉내 내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자신을 사용하는 인간들의 혐오 발언을 앵무새처럼 흉내 낸 것이다.
때론 챗봇끼리 시기 질투하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는 위키페디아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위키페디아엔 수백 만 페이지에 걸쳐 링크를 업데이트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가짜뉴스에 맞서는 수많은 자동 소프트웨어 봇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웬만한 박사급 정도의 리터러시를 갖고 있음직 하다. 그러나 걸핏하면 특정 지적 작업에 대해 봇들은 서로 상충되는 해석이나 명령을 내린다. 마치 서로 자기 판단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AGI의 출현은 결국 기계가 인간의 대체재냐 보완재냐 하는 논쟁으로 귀결된다. 한켠에선 인간만이 그 본질을 무한하게 만들어간다고 확신한다. ‘인간은 무게 70kg의 가장 예측 불가한 만능 컴퓨터’라고 인간의 ‘성질’을 새롭게 추켜세운다. 그 덕분에 ‘일과 사람’의 영속적 주인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선 이런 생각들을 나르시시즘의 ‘복음적 사고’로 일축하기도 한다. ‘인간, 너 자신을 알라’며 기계의 비교 우위를 점치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성찰아닌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사고하는 AI기술의 가능성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다.
‘인간에 필적하는 AGI’라는 표현은 분명 기분 나쁠 수도 있다. 행여 인간이 기계에 밀려 만물의 2인자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면, 자율적이며 강력한 AGI가 인간을 이롭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욕구는 기계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이 있어야 채워질 수 있다는 점도 위안이 된다. 나아가선 AGI를 인간의 선한 노예로 부릴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럼에도 만의 하나, 인간이 목적 아닌 수단이 될 것도 같은, 실존적 불일치에 모종의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이는 ‘인간’을 다시 발견하려는 조바심이기도 하다. 그런 착잡한 상념 속에 AI 너머 AGI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