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뉴딜,방향은 맞는데..
구조개혁 전략과 현실성부재
한국판 뉴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대국민 보고대회 형식으로 발표됐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처음 언급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한국판 뉴딜은 크게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며, 안전망 강화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디지털 뉴딜은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 및 역동성을 촉진하고 그린 뉴딜을 통해 경제기반의 친환경, 저탄소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사람중심의 포용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최종 목표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데이터 댐 ▲지능형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등 디지털 뉴딜 3개 과제,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국민안전 SOC 디지털▲스마트 그린산단 등 디지털‧그린 융복합 4개 과제, ▲그린 리모델링 ▲그린 뉴딜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등 3개 과제, 총 10개 대표과제를 마련했다.
정부 임기를 넘어
한국판 뉴딜에는 2025년까지 국고 114조원과 민간ㆍ지자체 투자 등 160조원이 투입되고, 이 중 현 정부 임기인 2022년까지 67조원을 쓴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89만개, 2025년까지 190만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한국판 뉴딜은 결국 현 정부보다 차기 정부에서 실행해야 할 게 더 많은 계획인 셈이다. 다음 정부까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디지털 뉴딜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미래형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과 인프라의 힘을 경험했다.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의 핵심은 데이터댐이라고 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사업 자체로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만, 모아둔 데이터는 교육, 의료, 국방, 콘텐츠, 제조업, 농·수산업 및 국가기반시설(SOC) 등 모든 연관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AI)은 더 똑똑해진다. 그래서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즉 DNA(Data, Network, AI)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뉴딜의 핵심을 데이터댐이라고 부른다. 사실이다. 데이터 수집·가공 사업만을 봐도 참여하고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이 수백 개가 넘는다. 디지털 뉴딜의 첫걸음인 3차 추경 예산도 모두 준비됐다.
부실한 사업계획
디지털 뉴딜은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사회 경제 교육 산업 등 전 분야에서 디지털 1등 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디지털 뉴딜의 핵심인 AI 경쟁력를 높이기 위해선 미⋅중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AI 산업구도를 깨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지난 2012년 딥러닝(Deep Learning)의 등장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해온 인공지능(AI) 기술 분야에서 미국, 중국 두 강대국의 승자독식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 국가들에 대한 기술 종속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계획에 포함된 사업은 분야별 빅데이터 플랫폼을 늘리고 공공데이터를 개방하며 지능형 정부를 만드는 사업 등이 눈에 띈다. 오래된 산업단지를 스마트화하고 노후 건축물들을 친환경 에너지 고효율 건물로 바꾸는 계획 등도 담겼다. 큰 의미가 있다고 하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지난달 1차 안을 발표했을 때 국회예산정책처가 “계획이 부실하다”고 지적한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의 역할
위기를 맞아 정부가 재정을 풀어 적극적으로 경기를 살리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쓰더라도 효과적으로 써야한다. 정부가 발표한 사업들 가운데 교사들의 노후 컴퓨터 교체, 만성질환자 웨어러블 기기 보급 등은 근본적인 디지털 경쟁력과는 관계가 없다. 정부가 역할을 한다고 해도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체는 역시 기업이다. 성과를 위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자발적 참여는 독려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과감한 규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기득권층의 반발도 설득해야 한다. 디지털 뉴딜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스마트 의료 인프라 구축’의 예를 들어보자. 결국은 비대면 진료 시스템의 확대가 핵심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의료계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그린뉴딜 계획 역시 핵심 요소인 ‘탄소중립 목표’ 제시부터 못하고 있다. 산업구조의 전환이 가능하려면 경제·사회구조와 노동시장도 변화된 환경에 맞춰 재편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구체적인 변화의 방향과 목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생존경쟁의 장에서
세계 각국은 지금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정작 첨단산업들은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인프라 구축과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연합은 7500억 유로를 그린 딜과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EU’ 계획을 발표했고, 일본은 인공지능(AI) 전문 인력만 4년간 100만 명을 육성할 계획이다.
정부도 AI와 소프트웨어 핵심 인재 10만 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 기반 구축과 규제 개선과 관련해서는 대안이 없다. 정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장애물들부터 치우는 일이 필요하다. 올가미 규제와 융통성 없는 노동정책이 그렇다. 디지털 신사업이지만 규제에 걸려 좌초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국내 스타트업과 벤처도 주 52시간 근로제에 묶여있다. 글로벌 벤처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규제다. 업계는 계속해서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름만 다를 뿐 과거 정부도 비슷한 노력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을 중단했다가 다른 이름을 들고나와 비슷비슷한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