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6년
재검토가 필요하다
최대규모의 과징금
방송통신위원회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에 부과한 512억원의 과징금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된 2014년 10월 이후 역대 최대규모였다.
이전까지 단통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은 방통위가 2018년 1월 이통 3사에 부과한 506억3900만원이 최대였다. 이전 단통법 징계에서는 이통사가 특정 채널을 통해 과도하게 높은 지원금을 제공한 게 문제였다.
5G 상용화 경쟁에서는 평균 초과 지급액은 24만원대로, 과거에 비해 높지 않다. 다만 광범위한 영업망에 투입된 점이 과징금을 높인 원인이다.
이통사가 5G 상용화 직후 초반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 유통망에 광범위한 불법지원금을 투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번호이동보다 기기변경에 약 60% 불법지원금을 투입하며 기존 가입자를 5G로 전환시키는데 주력했다.
이통사들의 자율규제발표
이통사들은 앞으로는 과도한 지원금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며 리베이트 이력추적 시스템등 자율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방통위 제재에 앞서 공동으로 판매 장려금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이통사의 관리에서 벗어난 유통망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도 막겠다는 조치다. 통신사 공동 재발 방지책과 함께 개별적으로 마련한 방지책도 있다. 예컨대 KT는 11개 지역본부의 내부 경쟁에 따른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예산 삭감과 개별 인사와 같은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LG유플러스는 온라인 매집의 불법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이통3사는 또 이번 시정조치 의결과정에서 유통점에 대한 운영자금, 생존자금, 중소협력업체 경영펀드, 네트워크 장비 조기투자 등을 위해 총 71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시장에 등장한 ‘차비폰’
정부의 제재, 업계의 자율개선 발표, 많이 본 장면이다. 과연 효과는 얼마나 갈까. 시장에는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이 크게 늘면서 ‘공짜폰’을 넘어선 ‘차비폰’도 등장하고 있다.
40만원대 고액 차비(페이백)까지 쥐어준다고 해서 ‘차비폰’이다. 일부 온·오프라인 휴대폰 유통채널에서는 작년 하반기 모델 삼성전자 갤럭시A90 5G부터 최신작 갤럭시A31·51, LG전자 Q51·61 등 보급형 스마트폰에 보조금을 풀고 있다. 공짜폰을 넘어 마이너스폰이 수두룩하다.
특히 갤럭시A90의 경우 30~40만원대까지 페이백이 형성돼 있다. 갤럭시A90만큼은 아니지만 갤럭시A51이나 LG Q51 등도 5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대까지 페이백이 지급되고 있다. 갤럭시S10 5G 등 구형 프리미엄폰도 5~10만원 사이로 차비를 주는 곳이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재고 소진을 위해 올해 초 출고가가 인하된 데다 공시지원금도 상향되면서 대대적으로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 물론 페이백을 받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적게는 8만원대부터 많게는 10만원이 넘는 고가 요금제를 가입해야 한다.
또는 통신사별로 구독형 상품이나 부가서비스 가입을 권하기도 한다. 일부 판매자들은 일정 기간 이용 후 요금제나 서비스를 해지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페이백 약속마저 어기는 경우가 많다.
악순환의 반복
통신사들도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지만 실효성은 높지 않다. 통신3사가 주도하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지난 19일 ‘온라인 자율정화 협의체’를 구성하고 온라인상에서의 초과 지원금 지급과 허위과장광고 등 불·편법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강제력은 크게 없다.
방통위의 제재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제재해도 불법 보조금이 사라질 것도 아닌데다 취지대로 이용자 차별을 없애거나 편익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불법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소비자가 있고, 보조금을 몰래 살포해 조금이라도 더 팔려는 사업자와 일부 유통망이 있으며, 여기에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을 위반하지 말라며 이를 단속하는 정부가 있다.
여전히 시장상황은 불법보조금 살포-구매-단속이라는 고리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단속의 칼을 들면 잠시 시장은 주춤한다. 통신업계뿐 아니라 단말 제조사, 유통망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장은 단속전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단통법의 효과
단통법은 부당한 차별적 지원금을 금지해 휴대폰 보조금과 유통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단통법은 단말기를 싸게 팔지 못하도록 한 가격 규제의 일종이다.
취지는 불법 보조금으로 누구는 단말기를 싸게 누구는 비싸게 사는 이용자 차별을 막는데 있다. 과도한 마케팅비를 줄이면 요금인하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단통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났지만 불법 보조금 근절이나 이용자 편익이 늘었다는 평가보다는 단말기 가격은 오르고 소비자 선택권만 위축시킨 반 시장적 규제라는 오명만 썼다. 불법보조금과 관련한 정보 비대칭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착하게 제값주고 사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듯 하다. 빠르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일부 이용자만 혜택을 누린다.
음성화되는 불법보조금 굴레는 단순히 무인매장이 설치된다고 해서, 과징금 액수를 키운다 해서, 이통사들이 자율규제를 강화한다고 선언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년간 단통법을 실행했지만 불법보조금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용자 불만도 잠재우지 못했고, 사업자 경쟁 활성화도 이루지 못했다.
쉽지않은 해법찾기방
통위가 개정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 협의회’도 제자리걸음이다. 이 협의회는 통신3사, 유통망 관계자, 시민단체들, 변호사‧교수 등으로 구성됐는데,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이슈도 아닌 공시기간만 해도 현재 7일로 정해진 지원금 공시 기간을 시민단체에서는 3일, 유통망에서는 15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주요 현안인 완전자급제와 분리공시까지 합의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단통법을 아예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전국적인 불법보조금 사태가 줄어들고 선택약정 할인을 통한 소비자 혜택을 강화했다는 긍정적인 측면까지 매도할 수는 없다.
전면 재검토가 필요
결국 단통법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지난 20대 국회 때 단통법 개정안만 20여개에 달할 정도로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단통법 개정은 21대 국회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제도의 취지나 규제 효과를 다시 고민해야한다.
시장 상황도 살펴야 한다. 이 정부 들어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약정할인)이 25%로 상향되면서 당초 우려대로 단통법상 지원금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25% 요금할인에 결합 할인, 카드 할인 등을 받으면 신형 단말기는 공짜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다. 선택약정할인으로 요금제에 신형 단말기를 끼워 파는 시장에서 같은 수준을 불법 보조금으로 줬다고 이용자 차별로 규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통사들이 편법 지원금 경쟁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부담은 같지만 약정할인 대신 지원금을 쓰면 제조사와 분담할 수 있다. 매출을 방어하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단통법이 오히려 요금경쟁을 막고 요금할인 대신 지원금을 선택한 이용자 사이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양상이다. 규제 실효성은 없고 단통법 시행후 요금은 계속 떨어지는데 단말기 출고가는 요지부동이다. 이통사가 비싼 단말기 가격을 요금할인으로 보전해 주는 꼴이다.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완전자급제나 분리공시제 등 대안도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이통사가 지불하는 과징금도 제대로 쓰여야 한다. 지금은 일반회계로 편입돼 통신산업과 이용자를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
단통법 이후 이통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1400억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모두 일반회계로 편입돼 사용처가 불분명하다. 장기적으로 과징금이 통신생태계를 위해 보다 많이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정책개선 논의가 필요하다.